-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강세황의 신도비. 강세황[1712~1791]은 1772년(영조 48) 61세의 나이로 영릉참봉이 되었고, 그 뒤 한성부판관·남양부사·병조판서 등의 관직을 거쳐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천추부사로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정헌대부에 올랐다. 강세황은 79세인 1791년(정조 15)...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에 있는 경주정씨의 위패를 모신 사당. 경모사(景募祠)는 경주정씨 정방광(鄭邦絖)과 그 증손 정봉남(鄭鳳男)·정황남(鄭凰男)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정봉남·정황남 형제는 임진왜란 때 모친을 해치려는 왜병을 물리쳐 위기에서 구했다. 특히 정봉남은 부모님의 병환이 위급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연명하게 하고 변을 맛보아...
-
삼덕리 상덕마을은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흉년을 모르고 풍년만을 일구며 의식 걱정을 하지 않고 넉넉한 삶을 이루어 온 곳이다. 또한 언제나, 누구에게나 인심이 후덕하여 마을을 찾는 길손에게는 조반석식을 넉넉히 대접하고, 잠자리도 따스하고 편안하게 대접해서 인심 좋은 마을, 살기 좋은 마을로 널리 소문이 났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마을 앞을 지나는 길손이나 마을을 찾아오는...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남연년의 신도비. 남연년[1653~1728]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박천군수 등을 역임하였는데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영장(淸州營將)으로 반란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 일로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으며, 1729년(영조 5)에 숭선군(崇善君)으로 추봉되고...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잡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 신잡(申磼)은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전사한 신립(申砬) 장군의 형이다. 1583년(선조 16) 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正言)을 거쳐 의정부우참찬(議政府右參贊), 한성부윤(漢城府尹),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거쳐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 2등에 평천부원군(平川府院君)으로 봉해...
-
진천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은 특히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진천읍에서 증평으로 가는 길 옆에 펼쳐진 덕문이들은 경지정리가 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맛과 빛깔이 일품이고 생산량도 많아 진천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덕문이들에 자리 잡고 있는 상덕마을에는 현재 45가구 약 9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농사도 짓고 공장에 가서 일도 하면서 한 가...
-
삼덕리는 1구 하덕마을, 2구 옹암마을, 3구 상덕마을, 이렇게 세 개의 자연마을을 통칭하는 행정구역상의 이름이다. 여기서 하덕과 상덕을 지칭하는 덕문이란 이름은, 항상 덕을 쌓고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글을 배우고 익히면서 사는 마을이란 뜻이다. 큰 덕(德)자에 글월 문(文)자를 쓰는 덕문이는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이 “아, 이 동네는 글 읽는 소리가 끊이...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산. 어떤 사람이 제비 명당에다 묘를 써서 집안에 8명의 정승이 나왔는데, 8명이 정승 벼슬을 했어도 산소에 석물을 1개도 세우지 않았다. 하루는 이곳을 지나가던 한 지관(地官)이 산소 자리는 제비 명당이므로 장군석, 촛대석, 비석 따위의 석물을 두어야 제비가 날아가지 않고 계속 정승이 나올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집안사람들이 지관...
-
삼덕리 2구 옹암마을은 독바위마을로도 불린다. 군도 7호선이 마을의 남북을 관통하여 광덕사 부근에서 국도 21호선과 만나고 있다. 이 옹암마을 입구에 집채만 한 바위가 있다. 그 바위 모양이 항아리처럼 생긴 까닭에 ‘독바위’라 부르고, 마을 이름 또한 ‘독바위[옹암]’라고 지었다고 전해 온다. 우리는 옹암마을에 사는 김춘자 할머니와 김복남 할머니께 독바위와 관련하여 전...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 괴산군 도안면, 증평군에 걸쳐 있는 산. 단군(檀君)이 팽우(彭虞)에게 높은 산과 냇물 등 산천을 다스리게 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려 온 산천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자 팽우가 이 산으로 피해 머물게 되었다. 이때 산꼭대기가 섬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고 하여 머리 ‘두(頭)’자와 섬 ‘타(陀)’자를 써서 두타산(頭陀山)이라...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강당마을에 있는 조감의 위패를 모신 사당.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인 조감(趙瑊)은 만노성에서 유창국(柳昌國)과 더불어 통솔자가 없어 방황하는 수천 명의 피난민을 이끌고 만노성에 침입한 외적을 물리친 공을 세웠다. 조감은 사후에 예조판서(禮曹判書)에 올랐다. 만뢰사(萬賴祠)에 조감의 위패를 모셔 놓고 그 공적을 후손이 기리도록 하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와 진천읍 연곡리 경계에 있는 산. 만뢰산(萬賴山)[611.7m]은 만노산(萬弩山)·금노산(今奴山)·금노산(今弩山)·금물노산(今勿奴山)으로도 불리는데, 고구려시대의 지명을 따서 그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 온다. 본래 고구려 땅이었던 진천 지역이 신라 땅이 된 뒤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만노태수로 부임하였는데 북...
-
생거진천쌀은 맑은 물과 기름진 점질의 황토 흙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하여, 이 쌀로 밥을 지으면 윤기와 찰기가 있어 밥맛이 일품이다. 진천군의 여러 마을 중에서도 쌀이 더욱 좋다는 삼덕리 하덕마을에 가서 쌀이 좋은 이유에 대해 들어 보았다. “삼덕리에서 나오는 쌀은 다른 쌀과 뭐가 다른가요?”라는 물음에 마을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우리는 밥만 먹어 봐도 알 수 있어...
-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월과 6월에 식량이 모자라 굶주리며 힘들어 했던 옛날 선조들이 초근목피(草根木皮)[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뜻으로, 맛이나 영양 가치가 없는 거친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배고픔을 달래던 때를 말한다. 때에 따라 춘궁기[굶주린 봄 시기], 맥령기[보리가 익는 시기]라고도 했다. 우리나라...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방송(放送)은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公衆)에게 전기통신 설비를 이용하여 송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26년 11월에 처음 방송국이 설치되었다. 체신국 청사 방을 빌려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을 조직한 것이 그 시초이며 이듬해인 1927년 2월 16...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원서원의 터. 백원서원 터에는 현재 사적비가 세워져 있는데, 사적비에 따르면 조선 후기 문신 신잡(申磼)의 주도로 진천에서 학문과 효행이 높았던 인재(麟齋) 이종학(李鐘學), 모암(慕庵) 김덕숭(金德崇), 행원(杏園) 이부(李阜), 송애(松厓) 이여(李畬)의 4위를 모시는 서원을 건립하여 1699년(숙종 25)...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유창국의 위패를 모신 사당. 벽오사(碧梧祠)는 병자호란 당시 만노성에서 통솔자 없이 방황하는 난민들을 통솔하여 적군을 막아낸 유창국(柳昌國)의 공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진천군 진천읍에서 백곡저수지 방면으로 2㎞ 정도 가면 중리 장수마을을 가리키는 바위가 도로 왼쪽에 나타난다. 그 바위 쪽으로 좌회전하여 300...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이공승의 영정을 모신 영당. 사양영당(思陽影堂)은 고려 후기 명종 때의 문신인 이공승(李公升)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이공승은 청주 출생으로 첫째가 나랏일이고, 둘째가 개인의 일이라는 신념으로 공과 사를 분명히 가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의종 때에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받은 크고 작은 선물을 모두 물리칠 만큼...
-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鎮川 死居龍仁)’이란 말이 있다.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어서는 용인으로 가라는 말인데, 그만큼 진천군은 예부터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진천 지역에서도 특히 진천읍 삼덕리는 진천군 쌀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 마을이다. 우리는 삼덕리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시는 이상일 할아버지와 지숙현 할머니에게 ‘생거진천...
-
생거진천쌀은 맛이 좋고 품질이 우수하여 전국적으로도 유명하다. 생거진천쌀이 이렇게 유명해진 데는 진천군 진천읍이 벼농사에 적합한 자연 환경을 제대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차령산맥에 둘러싸인 중부 내륙의 분지에 위치해 햇볕이 좋고, 밤낮의 일교차가 커서 더욱 품질을 높여 주고 있다. 또한 진천 지역의 50% 정도가 해발 200m 이하의 구릉지로서 자연 재해가 드물다는 점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에 걸쳐 있는 산. 서운산(瑞雲山)[547m]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과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에 걸쳐 있으며, 남서쪽으로는 충청남도 천안시와 경계를 이룬다. 산세가 그리 가파르지 않고 바위도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4월 초에는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서운산...
-
널따란 덕문이들을 상덕마을, 하덕마을과 함께 옹암마을이 둘러싸듯 하고 있는 삼덕리는 마을 안이나 바깥으로 높은 산이 없다. 마을 안에서 옹암마을 뒤편으로 작은 산 모양을 하나 볼 수 있으나, 다른 지역의 동산보다도 높이나 규모가 작아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아랫집너머’ 혹은 ‘윗집너머’ 등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덕문이들 바깥쪽으로 나 있는 2차선 도로에서 옹암마을 쪽을 바라보...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회죽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해주오씨 문중의 사당. 중국 송나라 때 대학사(大學士)인 오인유(吳仁裕)는 984년(성종 3) 고려에 들어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하였는데, 오인유가 해주(海州)에 정착하여 살았으므로 그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本貫)으로 삼았다. 수양사(首陽祠)는 오인유를 비롯한 해주오씨 25위를 봉안한 사당이다....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위패를 모신 사당.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었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국도 21호선을 타고 진천교를 지나 성석사거리, 신성사거리를 거...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신척리에 있는 김상을 배향한 사당. 숭모사(崇慕祠)는 경주김씨 계림군의 후손이며 조선 인조 때 육부승지(六部承旨)와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강원도관찰사와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상(金尙)과 선조인 예조참의(禮曹參議) 신잡(申磼)의 위패를 모셔 놓고 매년 춘분일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진천군청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광혜원...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뉴스, 정보, 오락, 광고 등을 제공하는 정기 간행물. 신문은 통상적으로는 신문사라 불리는 전문 기업이 일간 또는 주간으로 뉴스 보도를 중심으로 하여 발행하는 일반지(一般紙)를 가리키며, 매스커뮤니케이션 미디어[媒體]의 일종이다. 그러나 신문은 일반지 외에도 기사의 내용과 그 신문이 대상으로 삼는 독자 또는 발행 형태에 따라 여러 종류의 신문으로...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있는 안동김씨 일가의 충의를 기린 정려각. 안동김씨 사충문은 1728년(영조 4)에 김천주·김천장 형제와 그의 아들, 조카인 김성추·김성옥이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맞서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서 의병을 일으킨 뜻을 기린 충신문으로 안동김씨 문중의 충의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진천 길상사(吉祥祠)...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은탄리·사양리에 걸쳐 있는 산. 양천산(凉泉山)은 ‘찬물이 솟는 샘이 있는 산’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양천을 양천(良泉)으로 보아, 산 정상에 좋은 샘이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양을 양씨(梁氏)의 양으로 보아, 양씨 성을 가진 사람 1,000명이 피난한 곳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양천(養千)으로 보아, 임진...
-
풍년은 곡식이 잘 자라고 잘 여물어 평년보다 수확이 많은 해로 쌀을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농촌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선물과도 같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농촌은 풍년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풍악을 울리며 좋아하지 않는다. 쌀값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더 내려가기 때문이다. 삼덕리 하덕마을 이장 조래윤 씨는 논농사를 70마지기 정도 짓는다. 요즘은 농촌에 일...
-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인 1997년쯤의 어느 봄날이었다. 가뜩이나 건조하고 바람이 많은 봄 날씨였는데, 그날따라 평소와 다르게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다. 마을의 바쁜 오전이 지나고 평화로운 오후가 찾아올 12시에서 1시 사이쯤 소의 머리 형상에 해당하는 독바위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바위 쪽에서 불이 난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삼덕리 옹암마을 사는 김춘...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에 있는 산. 약 200년 전 도하리에 마음씨 착하고 인정 많은 삼천석꾼 유 부자가 살고 있었다. 유 부자는 집에 오는 손님들을 잘 대접하였으므로 항상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유 부자의 자손이 장성하여 며느리를 본 뒤로는 더욱 손님을 잘 대접하여 이웃 마을 사람은 물론 인근에 사는 사람들까지 밤낮으로 찾아들었다. 며느리는 몇 달이 지나도...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의 유교의 연원과 전개 현황. 유교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증자(曾子) 등 유가(儒家)의 정치사상과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현세적 사상이자 종교이다. 또한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언순의 정려 유언순은 7세 때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는데,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른과 같고 슬퍼함이 지나쳐 병을 얻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모 조씨(趙氏)에게도 효성으로 최선을 다했으며, 16세 때 아버지가 병이 나자 직접 약을 달여 드리고, 아버지의 신체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유희원(柳希源)의 정려각. 유희원(柳希源)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남달라 부모의 뜻을 거역한 적이 없고, 부모가 노환으로 병석이 눕자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뒷바라지를 하였다. 또한 엄동설한에도 앙천기도(仰天祈禱)하여 잉어를 구해 봉양하였다. 하지만 유희원(柳希源)을 모함하는 자들이 그가 불효막심하다고 관청에...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은진송씨의 정려. 은진송씨 열녀문(恩津宋氏 烈女門)은 조선 후기 호조참판이었던 임대철의 처인 은진송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은진송씨는 1845년(헌종 11) 남편이 죽자 장례를 치르기 전날 밤에 남편을 따르기 위해 30세의 나이로 죽음을 택하였다. 암행어사인 이승수(李昇洙)가 은진송씨의 열행을 듣고...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에 있는 효자 이교영의 효자비. 이교영[1890~1976]은 어머니 달성서씨가 친가에 갔다가 병이 나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 극진히 간병하였으나 효험이 없었다. 다급해 왼쪽 장지를 끊어 어머니께 수혈하니 나았다. 그러나 그해 5월 다시 어머니가 병이 재발하자 왼쪽 무명지를 끊어 수혈하였으나 끝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전...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성문 부부의 정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반란 때 의병으로 참가했던 이성문이 죽은 후 아내 정씨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시신을 찾았다. 그러나 운구할 길이 없어 울면서 목을 베어 치마에 싸서 귀향한 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묻었다. 삼년상이 끝난 후에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자결하여 남편을 뒤를 따라갔다...
-
옛날, 덕문이 방죽에 임꺽정이 살았다는 이야기는 삼덕리 1구 하덕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설이다. 또한 고려시대 임연 장군의 집터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 이 전설에 대해 물어 보기 전 문헌에는 어떻게 소개되어 있는지 사전 조사를 한 후, 우리는 하덕버스정류장을 지나 하덕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삼덕리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임수전·임현 부자의 정려. 임수전(林秀荃)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출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아들 임현(林賢)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죽산(竹山) 봉성(鳳城)에서 격전을 벌이다 전사하였다. 아들 임현은 만주의 부차성 전투에서 명의 원군으로 나가 싸우다 전사하였다. 임수전 부자 충신문은 임수전 부자가 나...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상산임씨 문중의 사당. 장렬사(將烈祠)는 고려 무신 집권기의 권신 임연(林衍)을 비롯한 상산임씨의 시조인 임희(林曦), 조선시대 호조참의(戶曹參議) 임구(林球)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상산임씨의 고려 무신 정권기 활동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유적이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상산로를 따라 농다리 방향으로 약...
-
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경의 위패를 모신 사우. 정간사(貞簡祠)는 조선 선조의 4녀인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혼인한 홍우경(洪友敬)[1590~1625]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홍우경은 1603년(선조 36) 정인옹주와 혼인한 뒤 순의대부당원위(順義大夫唐原尉)에 봉해졌으며, 봉헌대부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1618년(광해군 10)에...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부 정선전씨의 정려각. 정선전씨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잘 지킨 인물로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고 가정의 화목에 최선을 다하여 주변에 모범이 되었다. 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정선전씨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효성으로 부모가 장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효성을 기려 지방 유림들의 추천으로 1666...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지산서원의 터. 최석정(崔錫鼎)은 1671년(현종 12) 문과에 급제한 후 부제학·한성부판윤·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697년(숙종 23) 우의정이 되어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 후 좌의정·영돈녕부사를 거쳐 1701년(숙종 27) 영의정에 올랐다. 만년에는 향리인 진천 초평면 금곡으로 물러나 태극...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덕숭의 정려. 조선 세종 때 한산군수를 지낸 김덕숭은 효심이 대단했다. 엄동설한에 병환으로 고생하던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어 해서 지금의 백곡저수지 아래 여계소(女溪沼)에 내려가 얼음 위에 무릎을 꿇고 며칠간 기도를 올렸는데, 무릎 자리가 녹아 생긴 구멍으로 잉어 2마리가 나와 1마리는 살려주고 다른 1...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진천매일신문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역 주간 신문. 2008년 1월 23일, 2015년 진천시 승격과 대학 및 대기업 유치 등 생거진천의 발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창간하였다. 전체 면을 지방 자치 및 지역 경제, 자치 사회, 향토 문화, 평생 교육, 생활 체육으로 구성하고 있다. 각각의 하위 항목에 건강, 웰빙, 오늘의 행사, 알림마당...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진천시사신문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역 주간 신문. 2003년 11월 28일 지방 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진천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교육, 시사에 대한 내용을 군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김광래가 창간하였다. 판형은 타블로이드 배판[가로 393㎜, 세로 545㎜]이다. 매주 8면을 발행하고 있으며, 가로쓰기를 채택하고 있는데, 본문의...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진천신문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역 주간 신문. 1993년 말 지방 자치의 역할과 책임이 강조되는 가운데 지역 내의 각종 소식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박양규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창간을 준비하여 1994년 3월 19일자로 첫 소식지를 발행하였다. 1994년 1월 26일 정기간행물[등록번호 충북 다01039]로 등록...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주)진천자치신문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역 주간 신문. 1996년 10월에 창간해 1998년 12월에 폐간한 『상산신문』을 모태로, 2008년 6월 18일 ‘정론 직필, 민의 대변, 공정 보도’라는 언론 이념과 ‘진천 사랑’이란 대의 앞에 정의와 진실이 살아 있고 국가와 지역 사회의 진정한 길잡이로서의 등불을 밝히는 지역정론지로서의 소...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서 발행하는 지역 주간 신문. 진천을 풍요롭게 활기찬 군으로 만들고, 진천군의 다양한 군정 소식뿐만 아니라 문화·교육·시사에 대한 내용을 진천군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1997년 12월 12일 『진천군민신문』을 창간하였다. 진천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치·경제·생활·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시사 관련 내용을...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채경언의 정려. 채경언은 아버지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먹여 살아나게 하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연못가에서 사흘간 빌어 잉어를 구해 어머니께 드려 병을 낫게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시자 각각 3년씩 총 6년간 시묘하여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인조 대에 정려(旌閭)를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채수복의 묘소 및 사적비. 채수복[1910~1945]은 1930년 서울의 협성실업학교 재학 중에 학생들을 동원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며 가두시위를 전개한 것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는데, 출옥 후에도 서울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청주한씨의 정려각. 한정준(韓庭儁)의 딸인 청주한씨는 독송재(獨松齋) 신잡(申磼)의 9세손 신의양(申義養)과 혼인하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청주한씨가 26세 되던 해에 남편인 신의양이 죽자 장례를 마친 뒤 자신도 남편의 허리띠로 목을 매어 따라 죽었다. 이에 1834년(순조 34) 9월 청주한씨의 열행...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최유경·최사흥 부자의 정려각. 전주 출신인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공민왕 대에 사헌장령(司憲掌令), 우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郞)·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등을 거쳐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에는 원종공신(原從功臣), 경기·충청도의 도체찰사를 거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使...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산. 태령산(胎靈山)[421m]은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만노태수 김서현(金舒玄)과 아내 만명(萬明)의 아들인 김유신의 태(胎)를 산정에 매장하였다고 하여 붙은 명칭이다. 또한 길상사(吉祥寺)가 있었기에 길상산(吉祥山)이라고도 한다. 태령산 주위를 태령산성(胎靈山城)이 둘러싸고 있다. 태령산성은 둘레 216m...
-
진천읍 삼덕리 덕문이들 한가운데에는 삼덕정이 있다. 삼덕리 사람들은 삼덕정을 ‘육각정’ 혹은 ‘팔각정’이라 부르고도 있으나, 직접 찾아가서 현판을 확인해 보니 ‘삼덕정’이란 이름으로 세워진 정자였다. 넓은 덕문이들 한가운데 작은 동산처럼 자리한 삼덕정은 수풀이 자라는 봄여름에 찾아가면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 그 모습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삼덕리의 옹암마을과 상덕마...
-
삼덕리 상덕마을 대동계 날, 우리는 상덕노인회관에서 마을 어른들을 만나 상덕마을의 이모저모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6·25전쟁 당시 다리를 다쳐 지금까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가고 있는 최인환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 조금년 할머니를 가리키며 삼덕리의 자랑거리라고 말하였다. 둘 다 삼덕리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올해 결혼한 지 60주년이 되...
-
진천은 원래 침수 피해가 없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병술년[1946년]에는 무슨 일인지 장마가 심하게 져서 진천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무척 심했다. 특히 진천읍 삼덕리 주변은 다른 지역에 비해 큰 피해를 입어서 마을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를 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진천읍 중성리와 오감리, 삼덕리 하덕마을의 경우 “물을 퍼부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많은 비가 왔다....
-
삼덕리 하덕마을에는 유난히 조씨가 많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논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할머니에게 이곳이 혹시 조씨 집성촌은 아닌지 물어 보았다. “내가 조씨요. 그렇지 여기가 함안조씨들이 많이 살고 있지.” 우리는 자신을 함안조씨라고 소개한 조숙자 할머니의 집으로 가서 하덕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조숙자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하덕마을은 원래 방죽이 있...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에 있는 산. 환희산(歡喜山)[402m]은 한자 뜻대로라면 ‘기쁨을 안겨주는 산’이라는 뜻이지만, 한편으로 하늘산이 한으산을 거쳐 환희산으로 변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역에 따라 지명의 선행 요소 ‘환희’가 ‘하느〈하늘’ 또는 ‘하누’와 대응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하늘산은 ‘높은 산’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