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501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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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國 |
영어음역 | Heo Guk |
이칭/별칭 | 국이(國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진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정호 |
[정의]
조선 중기 진도에 유배된 문신.
[가계]
자는 국이(國耳). 할아버지는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을 지낸 허진(許震)이다.
[활동사항]
생원으로 성균관에 들어간 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 정택뢰(鄭澤雷) 등 19인과 함께 이원익(李元翼)의 무죄를 호소하는 연명 상소에 참여하였다.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 여론이 나돌자, 대북파의 이이첨(李爾瞻) 등에게 “대비를 폐하면 인심을 잃을 것이니 대비를 구원하여 인심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국문(鞠問, 왕이나 왕의 대행을 받은 관원이 신문을 함)을 당하였으나 일단 풀려났다. 그러나 1619년(광해 11) 인목대비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자 다시 진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가두는 것)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