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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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忠公浩亭河崙先生胎地 |
영어의미역 | Birthplace of Ha R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명화 |
성격 | 태지(胎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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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조선 전기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
소유자 | 경상남도 진주시 |
[정의]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하륜(河崙)[1347~1416]이 태어난 곳.
[개설]
하륜의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이다. 이방원(李芳遠)을 적극 지지하여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이 되었고,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다. 이후 영의정부사·좌정승·좌의정을 역임하였다. 사후 태종의 묘정(廟庭)에 봉안되었다. 후대에 그를 한나라의 장자방(張子房), 송나라의 치규(稚圭)라 일컫기도 하였다.
[위치]
이 태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지 영남포정사 옆에 있다.
[현황]
현재 문충공 호정 하륜선생 태지(胎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곳은 진주가 낳은, 태종 임금 때 영의정을 지낸 문충공(文忠公) 호정(浩亭) 하륜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선생은 고려충절신(高麗忠節臣) 문하시랑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1347년 정해(丁亥)에 태어나 1416년 병신(丙申)에 70세로 세상을 떠나셨고, 묘는 진양군 미천면(美川面) 오방동(梧坊洞)에 위치한다. 19세에 과거시험에 급제하여 이목은(李牧隱) 선생을 스승으로 섬겼고, 그 타고난 재주며 슬기와 남보다 훨씬 나은 학문과 세상에 보기 드문 큰 뜻을 품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의 이모저모에 따른 그의 계획은 마침내 조선조의 기틀을 정하고 세웠으니 글을 짓거나 쓰는 일에 관계되는 모든 정사는 말할 것도 없고, 법령과 제도의 완성, 토지제도를 새로 고침, 나라에 필요한 경비를 모으고 관리하고 이용하는 일의 운영, 명나라에 대한 외교와 인재를 뽑아 쓰는 일에 최대의 정성과 노력을 쏟아 나라 다스림을 가꾼 자리에 있었던 정치가로 그 충의와 정성은 일월을 꿰뚫었다. 그러므로 나라에서는 진산부원군을 봉하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내려 태종사당에 공신으로서의 신주를 모시었고 후세의 역사가는 그 낌새나 눈치를 밝게 살핀 그의 슬기로운 꾀를 장자방(張子房)에 비교하였고, 혜택을 베풀고 도학을 제창한 공을 한창려(韓昌黎)에게 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