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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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Sangchon-ri Yujeok Chulto Boseup |
영어의미역 | Plowshare Excavated from the Archaeological Site in Sangchon-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김기민 |
성격 | 석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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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시기/일시 | 신석기시대 |
제작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
재질 | 화강암 |
길이 | 113.3㎝|8.6㎝|7.8㎝ |
폭 | 110.8㎝|6.8㎝|6.3㎝ |
두께 | 11.5㎝|1.0㎝|1.7㎝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상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
[개설]
보습은 땅파는 도구[굴지구(堀地具)]의 한 종류로써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보습의 출현과 농경의 시작을 유사하게 보아도 좋을 만큼 보습은 농경시작의 표식적인 유물이다.
보습은 굴지구로서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괭이와 구별이 용이하지 않는데, 땅을 파는 작업 형태에서 그 특성을 구분할 수 있다. 괭이의 경우 자루 부분과 결합할 때 ‘ㄱ’자 형태로 결합되어 작업자의 몸 쪽으로 끌어당기는 형태로 작업이 진행되고, 보습의 경우 자루부분과 ‘ㅡ’자형으로 결합되어 작업자의 몸 바깥쪽으로 밀어내어 흙을 파내는 형태로 작업이 진행된다.
크기는 장축의 크기로 볼 때 25~60㎝가량의 대형과 15~20㎝ 사이의 소형 보습이 존재한다. 25㎝ 이상의 대형 보습은 굴지구 중에서 가장 큰 대형에 해당하는데, 이는 밭의 이랑 등을 만들기 위한 형태상의 특징으로 해석된다.
상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갈돌과 갈판, 숫돌, 돌도끼, 긁개, 화살촉 등 석기 중에서 보습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어 이 시기 농경문화의 확산을 시사하고 있다.
[형태]
상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보습은 대부분 반화강암제의 석재를 이용하여 제작되었으며, 그리드(Grid)와 주거지 북쪽의 어깨선 부분과 중앙 바닥면에서 출토되었다. 그리드(Grid)에서 출토된 보습은 석재를 모양떼기한 후 사용한 것으로 가장자리는 굴토시 생긴 마찰로 인해 표면이 닿거나 탈락된 사용흔이 네 면에 있다. 길이는 13.3㎝, 폭은 10.8㎝, 두께는 1.5㎝이다.
주거지 북쪽 어깨선 부분에서 출토된 것은 1/2 정도가 결실되어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으나, 소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기의 가장자리는 양면을 가격하여 날을 세우려 한 부분과 지표와의 마찰로 인한 사용흔이 나타나는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길이는 8.6㎝, 폭은 6.8㎝, 두께는 1.0㎝이다.
주거지 중앙 바닥면에서 출토된 것은 윗면은 평평하게, 뒷면은 한 번 각이 지게 가공하였으나 타격 후 마연하지 않았다. 한 면은 양쪽에서 가격을 하여 날을 세웠으나 사용으로 인해 무디어졌다. 길이는 7.8㎝, 폭은 6.3㎝, 두께는 1.7㎝이다.
[특징]
우리나라에서 확인되는 보습의 형태는 대체적으로 긴 타원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중국 산서성, 내몽고 등 동북지방에서 확인되는 보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긴 타원형의 형태를 가지는 것은 이들 지역의 토질이 거칠고 단단함에 따라 굴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기능상의 특징으로 보인다.
상촌리 출토품은 전체적으로 고타를 통하여 아래쪽으로 가늘어지게 만든 편평하고 납작한 석기로, 아래쪽을 위쪽보다 뾰족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보습은 농경에 필수요소인 굴지구 중에서 밭유구 등과 같은 경작지를 조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며, 보습의 존재를 통하여 농경의 시작과 주 재배작물 당시의 노동력의 효율성 등 과거 경제사적 측면에서의 사회복원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유물로서 그 가치를 가진다.
상촌리 유적에서 신석기시대 다량의 보습이 확인됨으로써 당시 진주 지역에 대규모의 경작지 조성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다수의 작물재배가 가능하였을 것이다. 이는 경제규모의 확대로 이어져 당시 선사시대의 삶의 질의 향상과 사회변화의 동인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