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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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秉鉉善政碑 |
영어음역 | Jo Byeonghyeon Seonjeong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Jo Byeonghyeon |
이칭/별칭 | 순상국조공병현거사비(巡相國趙公秉鉉去思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부락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노재경 |
성격 | 선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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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839년 |
관련인물 | 조병현 |
높이 | 140㎝ |
비좌너비 | 62㎝ |
비좌두께 | 37㎝ |
비좌높이 | 20㎝ |
비좌재질 | 백색 화강암 |
너비 | 39㎝ |
비신두께 | 14㎝ |
높이 | 120㎝ |
비신재질 | 백색 화강암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부락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병현(趙秉鉉)의 선정을 기리는 비.
[건립경위]
경상도관찰사 조병현이 임기(1834~1836)를 마치고 떠난 뒤 3년 후인 1839년(헌종 5)에 조병현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마을 북서쪽 어귀 도로변에 남향으로 있다. 1980년 진주~합천간 도로를 확·포장할 때 원래 있던 자리에서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형태]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20㎝, 폭 39㎝, 두께 14㎝의 몸돌을 세웠는데, 머릿돌은 없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머리를 도난당했다고 한다. 비문은 풍화로 약간 마모되긴 하였으나 글자는 어느 정도 알아 볼 수 있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巡相國趙公秉鉉去思碑(순상국조공병현거사비)”로 비명을 지은 사람과 글을 쓴 사람, 글을 새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비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恩革民瘼 惠及殘郵 五百緡錢 十載輕收 雲霓之望 雨露之和 令名攸著 德政可歌(은혁민막 혜급잔우 오백면전 십재경수 운예지망 우로지화 영명유저 덕정가가: 백성의 아픔을 고쳐 그 은혜가 스러진 역참에까지 미쳤으니, 많은 세금 징수를 십년이나 가볍게 하였네. 구름과 무지개의 대망이요, 비와 이슬의 화합이니, 빛나는 이름은 드러나고 후덕한 정치는 노래할 만하네). 끝에 “己亥 四月 日 安磵里 立(기해 사월 일 안간리 입)”이라 하여 건립연대(1839년)와 건립주체(안간역 주민)를 밝히고 있다.
[현황]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인실마을 북서쪽 어귀에 진주~합천간 도로를 확·포장할 때 옮겨온 비석들과 함께 서 있다.
[의의와 평가]
‘이기의 선정비’, ‘정기선 선정비’, ‘황정주 선정비’ 등과 함께 안간리의 역사와 선정을 베푼 관리들의 면면을 엿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