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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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大晟旌閭 |
영어음역 | Choe Daeseong Jeongnyeo |
영어의미역 | Memorial Gate for Choe Daeseong |
이칭/별칭 | 忠臣募義將軍贈通政大夫刑曹參議禦侮將軍行訓練院正崔大晟之閭(충신모의장군증통정대부형조참의어모장군행훈련원정최대성지려)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노재경 |
성격 | 정려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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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익공|맞배|겹처마 |
건립시기/일시 | 1752년(영조 28) |
관련인물 | 최대성 |
정면칸수 | 2칸 |
측면칸수 | 1칸 |
높이 | 400㎝ |
층수 | 1층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의병장 최대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건립경위]
1752년(영조 28) 최대성(崔大晟)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세운 공로를 인정하여 “충신모의장군 증통정대부형조참의어모장군행훈련원정최대성지려(忠信募義將軍 贈通政大夫刑曹參議禦侮將軍行訓練院正崔大晟之閭)”를 내리면서 건립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안간지구대 옆에 동향하여 있다.
[변천]
1999년 최씨 문중에서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단층 정려각으로 진주~합천간 지방도로변에 동향으로 배치되었다.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익공이고 지붕은 맞배 형식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정려각 안에는 정려기문과 정려현판이 있다.
[금석문]
기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최대성은 보성군 사람으로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수천 명의 의병을 모아 순천과 흥양 사이에서 2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였다. 일찍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막하에 들어가 한산도에서 대첩을 거두었고, 또 흥양 망저포(望渚浦) 첨산(尖山) 전투에서 창의사 송대립 무인 김덕방 등과 함께 승세를 타고 적을 추격하여 백여 급을 베어 크게 적세를 꺾었다. 정유년 6월 보성 동안치(東鴈峙) 아래 전투에서 공은 분신살적(奮身殺賊)하여 거의 적장을 잡으려는 순간 날아온 탄환을 맞고 운명하였다. 그러나 눈을 부릅뜬 채 늠연(凜然)한 모습으로 있어 사람들이 모두 장하게 여겼다. 공이 운명한 지 156년 후인 1752년(영조 28)에 정려를 내렸다. 기문은 한림(翰林) 이의철(李宜哲)이 짓고 보성군수 이규서(李奎書)가 썼다.
[현황]
붉은 벽돌담을 쌓아 정려를 보호하고 있으며, 정려 옆에는 고려대사성문정공농은최선생제단비(高麗大司成文正公農隱崔先生祭壇碑)가 웅장한 규모로 서있고, 정려 앞에는 중수기념 석물이 있다.
[의의와 평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국난을 당하여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던 선조들의 넋을 느끼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