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0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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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演 |
이칭/별칭 | 윤보(潤甫),규봉(圭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오정윤 |
[정의]
『인천부 읍지(仁川府 邑誌)』 인물 조에 등장하는 열녀 이씨의 남편이자 조선 후기에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송(靑松)이며, 자는 윤보(潤甫), 호는 규봉(圭峰)이다. 아버지는 심대형(沈大亨), 할아버지는 심암(沈岩), 증조할아버지는 심의겸(沈義謙)이며, 외할아버지는 한중겸(韓重謙)이다.
[활동 사항]
심연(沈演)[1587~1646]은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한 후,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유관(儒冠)[벼슬하지 않은 선비]으로 인조를 공주로 호종하여 내시교관에 임명되었다. 1626년 헌릉(獻陵) 참봉(參奉)에 임명되고, 가을에 정시(庭試)에서 장원을 하였으나 참시관(參試官)의 문제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도 어가(御駕)를 강도(江都)[강화도]로 호종하여 조지서(造紙署) 별제(別提)와 의금부(義禁府) 도사(都事)에 임명되었다. 이해 9월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섬시(司贍寺) 직장(直長)에 임명되었다. 그 뒤 외직으로 경상도(慶尙道) 도사(都事)·시재어사(試才御史)·전라도(全羅道) 경차관(敬差官), 내직으로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형조(刑曹) 좌랑(佐郞)·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1633년에는 정묘호란의 전화를 입은 창덕궁 수선을 총괄하는 도청(都廳)이 되었고, 그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되었다.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1635년 병자호란 때는 경상 좌·우도의 군사를 이끌고 경기도 이천을 경유하여 남한산성을 향해 진격하려 하였으나 경기도 광주의 쌍령(雙嶺)에서 전투에 패하였다. 청과의 화의가 성립되고, 각 도의 방백(方伯)들에게 패전의 책임을 물을 때 전라도 임피(臨陂)로 유배당하였다. 1638년 사면되어 제주 목사로 부임하였고, 1640년에 교체되어 비변사(備邊司) 당상(堂上)이 되었다. 이어 한성부 판윤·승지·대사간 등의 내직을 역임하고, 황해도·평안도 순찰사, 평안도·경기도 관찰사를 역임한 뒤 1644년(인조 22)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하였으나 1646년 재임 중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