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효자. 김불수(金不受)[?~?]는 밀양 출신으로, 평소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 부모가 사망하자 부모의 묘소 옆에 여막을 지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지내며 6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시묘살이를 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와 함께 찰방 벼슬이 제수되었다....
조선 전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열녀. 난비는 정병(正兵) 김순강(金順江)의 아내였다. 뒤에 버림을 받아 부모가 재혼을 시키려 하자 난비가 이르기를 “한 몸으로 두 남편을 섬기는 일은 죽더라도 감히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곧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1532년(중종 18)에 정려하였다....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남전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효자 정려비. 밀양 오현(五賢) 중 한 사람인 계은(溪隐) 이신(李申)은 고려 공민왕 때 경기도 개성에서 내려와 경상남도 밀양시 상남면 조음리에 정착한 사재령(司宰令) 이일선(李日善)의 장남으로 공민왕 때 효렴(孝廉)으로 뽑혀 입신한 후 도만호(都萬戶)를 지냈다. 사헌부 지평에 재임할 때 간관 김진양(金震陽), 강회백(姜淮伯) 등과...
조선 전기 밀양 출신의 효자. 박심(朴尋)[?~?]은 밀양부 내에 살았는데, 진사시에 합격하여 남해현령을 지냈다고 한다. 부모가 사망하자 산소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단 하루도 여막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서 정려가 내렸고, 박심의 효행은 「박심여묘(朴尋廬墓)」라는 제목으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효자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