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175 |
---|---|
한자 | 高亭里 |
영어공식명칭 | Goj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고정리(高亭里)는 상동면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도곡리가 있고, 서쪽으로 구릉성 산지를 사이에 두고 금산리와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 가곡리가 있다. 북쪽으로는 동창천 유로를 사이에 두고 청도군과 마주 보고 있어 밀양시의 북쪽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 고답마을과 모정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고정(高亭)’은 ‘고답(高踏)’과 ‘모정(茅亭)’의 합성 지명으로 생겨난 것이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있지 않으나, 『경상도읍지』[1832]에 ‘고답리’와 ‘모정리’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고답마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 마을이라 하여, 모정은 임진왜란 이전에 서쪽 강가 바위 위에 있었던 모옥(茅屋)[띠집]으로 인하여 비롯된 이름이다. 후에 ‘모정(慕亭)’으로 표기가 바뀌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고정리와 청도군 하남면 용운동(龍雲洞)을 합쳐 경상남도 밀양군 상동면 고정리가 되었다. 당시 편입된 용운동은 지금의 등유천[들마을]에 해당한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의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면 소재지가 있었으며, 1930년에 옥산리가 면 소재지가 되었다.
고정리의 취락은 보두산 북쪽 산록의 완사면에 형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생겨난 고답마을은 배붓들(裵富者坪)과 신쌍묘(申雙墓) 지명이 있어 임진왜란 전에 배씨와 신씨가 입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진왜란 직후에는 달성서씨가 입촌하여 세거를 하였다. 모정마을은 한때 담양이씨가 입촌하였으며 이후 광주김씨가 정착하여 세거지를 이루었다. 1914년 청도군에서 편입된 마을은 약 250년 전에 김녕김씨가 마을을 이룬 곳으로 당시 면 소재지가 있었다.
[자연환경]
고정리의 동쪽과 남쪽, 서쪽은 각각 소천봉[631.9m], 낙화산[625.7m]과 보두산[562m], 봉수대[266.0m]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다. 동창천이 흐르는 북쪽을 제외하고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산록 완사면의 말단부 일대에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 산록에서 가곡천이 발원하여 모정마을 앞을 지나며, 보두산 북서쪽 산록에서는 골안천이 고답마을을 지나 동창천으로 유입한다. 가곡천과 골안천 사이로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창천과 밀양강이 합류하는 북서쪽 일대는 저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274가구, 413명[남자 203명, 여자 21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고정리의 농지는 대부분 경지 정리가 되어 있으나 산록에는 아직 계단식 논이 남아 있다.
고정리 서쪽으로 국도 제58호선이 지나며, 북쪽의 동창천 연안을 따라 지방도로가 있고, 가운데로 대구부산고속도로가 지난다.
고답마을에는 1907년 신교육을 위하여 세워졌던 사설 고명학교(高明學校) 터가 있다. 동창천 강변은 풍광이 뛰어나며, 1599년(선조 32)에 김태허(金太虛)[1555~1620]가 세운 밀양 박연정(密陽博淵亭)[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이 있다. 또한, 밀양 고정리 느티나무[수령 260년]가 1982년 11월 10일 밀양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고유번호 12-13-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