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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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院西里 |
영어공식명칭 | Wonse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기혁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원서리(院西里)는 산내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 삼양리, 남명리와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가인리와 이웃하고 있다. 남쪽으로 실혜산을 경계로 단장면과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 청도군 운문면과 금천면을 사이에 두고 도 경계가 지난다. 원당과 서촌 2곳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명칭 유래]
‘원서리’ 지명은 원당(院堂)과 서촌(西村)의 합성에서 비롯되었다. 원당의 원래 표기는 ‘원당(願堂)’이었다고 한다. 원당에 있던 불당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석단이 지금도 남아 있다. 서촌은 일명 석촌으로 부른다. ‘석촌’은 석골사(石骨寺) 아래 있어 비롯된 이름이며, 후에 ‘서촌’으로 변음이 되었다. 지금 마을 이름은 ‘석골’로 표기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와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1832]에 ‘원당리’ 지명이 수록되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군 천화산내면 원서리로 개설되었다. 1918년 천화산내면이 산내면으로 개칭되어 밀양군 산내면 원서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밀양군과 밀양시 통합에 따라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가 되었다.
원서리의 취락은 원서천과 원당천 유역에 형성되어 있다. 중심 마을인 원당은 남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후기 일직손씨와 남양방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이룬 곳이다. 원서리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인 밀양 혜남정(密陽惠南亭)이 있다. 혜남정 이름은 실혜산 기슭에 있어 붙여진 것이다. 서촌은 위쪽의 석골사로 이어지는 곳에 있으며, 사하촌(寺下村)으로 형성되었다. 석골마을로도 부른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주둔하여 왜군과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 전한다. 조선 후기에 청도김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이루었으며 재실인 원모재(遠慕齋)가 있다.
[자연환경]
원서리의 중앙을 흐르는 동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쪽은 억산[954m]과 삼지봉[904m]을 잇는 산줄기가 에워싸고 있으며 서쪽으로 사자봉과 수리봉으로 이어진 산지는 서쪽 경계를 이룬다. 동쪽은 운문산에서 함화산으로 이어지는 줄기가 경계를 이룬다. 남쪽에는 실혜산[828.3m]과 정승봉 줄기가 단장면과의 경계를 이룬다. 석골사 일대에서 발원한 계류천이 지방하천인 원서천을 이루어 동천으로 합류하고 남쪽에는 소하천으로 원당천이 흐른다. 원서천 상류에는 석골폭포가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159세대, 292명[남자 145명, 여자 14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원서리는 동천 유역에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사과 재배를 중심으로 밭 농사가 이루어진다. 이곳의 석골사는 신라 때의 사찰로 원래 석굴사로 불렀다. 나말여초에 비허선사(備虛禪師)가 수도한 곳이라고 한다. 석골사의 폭포에 이르는 계곡은 풍광이 뛰어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고, 계곡 입구의 동천가에는 캠핑장이 있다. 북쪽의 산지는 운문산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원서리 중앙으로 국도 제24호선이 동천과 나란히 지나고 있어 외지로부터의 접근이 용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