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말기 남원 출신 김성열의 시문집. 김성열(金成烈)[1846~1906]은 1846년에 전라북도 남원군 송동면 두동에서 김인경(金仁鏡)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원중(源仲), 호는 겸산(兼山)으로 본관이 경주이다. 『겸산집(兼山集)』은 1934년에 저자의 손자인 김종가(金種嘉)가 자신의 발문에 민병승(閔丙承)의 서문을 받아 간행하였다. 6권 2책의 목활자본이다. 권1...
-
1961년에 간행된 일제강점기의 문인 김교준의 유고 시문집. 김교준(金敎俊)[1883~1944]은 송병선(宋秉璿)과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학문적 재능이 뛰어나 많은 학문적 업적을 이루었다. 『경암집(敬菴集)』은 저자가 죽고 20여 년 뒤인 1961년에 제자인 황갑주(黃甲周)와 오구영(吳龜泳) 등이 계(稧)를 만들어 자금을 마련하여 비석도 세우고 문집도 간행...
-
조선 후기 남원 출신 오상귀의 시문집. 오상귀(吳相龜)[1791~1857]는 전라북도 남원군 아영면 아곡리에서 살았다. 자는 태숙(台淑), 호는 계거(溪居)이고,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학행으로 알려졌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서문에 이윤덕이 행장을 짓고,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1846~1916]이 묘갈명을 지어 간행하였다...
-
조선 말기 남원 출신 이계두의 시문집. 이계두(李啓斗)[1882~1939]는 전라북도 남원 출신으로 1882년에 이능간(李凌幹)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덕일(德一), 호는 국사(菊史)이며 본관은 거녕(居寧)이다. 이계두는 성품이 강직하고 고상하였으며 말이 적고 어눌하였다. 술을 즐겼으나 몸가짐은 언제나 반듯하였다. 『국사선생시집(菊史先生詩集)』은 이곤수(李...
-
조선 전기 남원에 은거한 오계종의 시문집. 오계종(吳繼宗)[1407~1459]은 자가 백종(伯宗), 호는 귀은(歸隱)인데 본관은 동복(同福)이다. 1658년에 한양 명례방(明禮坊)에서 났으나, 1455년 단종(端宗)의 손위 소식을 듣자 마침내 방장산의 북쪽 운봉산 덕지리에 조그만 정자를 짓고 귀은(歸隱)이란 편액을 걸고 지냈다. 『귀은집(歸隱集)』은 오계종의...
-
조선 후기 남원 출신 김규하의 시문집. 김규하(金圭夏)[1740~1821]는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목동에서 김익복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내협(乃協), 또는 여초(汝初)이고, 호는 귀재(歸齋)이며 본관은 부녕(扶寧)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장령(掌令)을 비롯한 여러 관직을 지냈다. 『귀재유고(歸齋遺稿)』는 족손 김량식의 서문을 붙여 1902년에 처음 석판본으로 간행되...
-
조선 후기 남원 출신 이최환의 시문집. 이최환(李最煥)[1775~1815]은 전라북도 남원에서 춘성정 이담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자는 사번(士蕃), 호는 근사재(近思齋)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효성과 우애로 가정을 다스렸으며 학업을 닦는데 독실하였다. 『근사재유고(近思齋遺稿)』는 이유승(李裕承)의 서문과 증손인 이정우(李珵宇)의 발문을 붙여서 1876년에 목판본으로...
-
조선 후기 남원에서 활동한 신득구의 시문집. 신득구(申得求)[1850~1900]는 원래 고흥(高興)에서 부친인 병호(屛湖) 신청모(申淸模)[1815~1873]와 어머니 여산송씨(礪山宋氏) 사이에서 3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러나 부친이 남원으로 이주한 뒤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거생활을 함에 따라 신득구도 역시 남원에서 기거하였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신득구의...
-
조선 중기 남원 출신 이상길의 시문집. 이상길(李尙吉)[1556~1637]은 원래 한양에서 출생하였으나 2세 때 외가를 따라 전라북도 남원부에 내려와 성장하였다. 자는 사우(士佑)이고, 호는 동천(東川) 또는 만사(晩沙)이고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기도 하였다. 병자호란 때에 호종하여 강화에 들...
-
일제강점기 남원 출신 이수홍의 시문집. 이수홍(李壽烘)[1887~1967]은 전라북도 남원군 아영면 아곡리 출신으로 자는 윤오(允五),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운봉향교의 전교로 있으면서 유교 진흥에 노력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도 우리 개국 연호만을 쓸 정도로 배일사상이 강하였다. 아직 출판되지는 않았으나, 1940년에 쓴 김동섭의 서와 1960년에 쓴...
-
1977년에 간행된 일제강점기의 학자인 이연회의 유고 시문집. 이연회(李淵會)[1867~1939]의 자는 내실, 호는 물재(勿齋)이다. 남원 출신으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77년 권용현(權龍鉉)의 서(序)를 붙여 석판본 5권 1책으로 간행되었다. 전북대학교 도서관과 원광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본서의 저본은 석판본으로 간...
-
1905년에 간행된 화순최씨(和順崔氏) 7인의 시문집. 『오성세고(烏城世稿)』는 남원군 대산면(大山面) 죽곡(竹谷)에 살았던 최상문(崔象汶), 최항(崔迒), 최봉의(崔鳳儀), 최현(崔玹), 최강(崔綱), 최식(崔湜), 최경(崔逕) 등 화순최씨 일가 7인의 시문을 합철한 책이다. 기우만(奇宇萬)의 서(序)와 후손 최익호(崔翼浩), 최중섭(崔重燮)의 발(跋)을 붙...
-
1899년에 간행된 죽산박씨(竹山朴氏) 5인의 전기(傳記)를 모은 책. 『오충전(五忠傳)』은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의 죽산박씨 문중에서 충(忠)으로 명성을 떨친 박문수(朴門壽)·박계성(朴繼成)·박신룡(朴信龍)·박성룡(朴成龍)·박명룡(朴命龍) 등 다섯 사람의 전기를 모은 책이다. 김병창(金炳昌)의 서(序)와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발(跋)을 붙여 1899년에...
-
조선 후기 남원 출신 최일하의 시문집. 최일하(崔一河)[1762~1840]는 전라북도 남원군 대산면 죽곡 출신으로 죽곡 최상문의 후손이다. 자는 천우(千遇), 호는 월암(月巖)으로 본관은 화순(和順)이다. 학행으로 알려졌다. 서와 발문이 없는 채 간행되어 구체적인 편찬사항과 발간경위를 파악할 수가 없다. 3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문집의 내용은 시(詩)·서(書)·서(序)...
-
조선 말기 남원 출신 김기종의 시문집. 김기종은 생몰년이 미상이나 자는 중미(仲尾), 호는 은고(隱皐)이고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저자의 증손인 김영무(金英武)의 서를 붙여 1939년에 간행하였다. 상하로 된 2권 1책의 연활자본이다. 문집의 내용은 시(詩)에는 「남유록(南遊錄)」·「서유록(西遊錄)」·「중주록(中州錄)」·「행로음(行路吟)」이 있고, 문(文)은 표(表)·...
-
조선 후기 남원 출신 최곤의 시문집. 최곤(崔崑)[1736~1806]은 전라북도 남원군 대산면 죽곡 출신으로 최상문의 후손이다. 자는 종숙(宗叔), 호는 의송헌(倚松軒)이고, 본관은 화순(和順)이다. 저자의 5세손인 최중섭(崔重燮)의 발문을 붙여 1919년에 전라북도 남원에서 간행하였다.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유고의 내용은 시(詩)·소(疏)·행장(行狀)·제문(祭文)...
-
조선 중기 남원 출신 김유경의 시문집. 김유경(金裕卿)[1646~1713]은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목동 출신이다. 자는 덕여(德餘), 호는 정와(靜窩)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문하에 출입하였고, 학행으로 알려졌다. 생원 이병은(李炳殷)·노익원의 서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발문을 붙여 1...
-
조선 후기 남원 출신 이종봉의 시문집. 이종봉(李鍾鳳)[1836~1903]은 전라북도 남원군 산동면 목동리 출신이다. 자는 덕서(德瑞), 호는 졸헌(拙軒)이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기존의 필사본을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1893~?]와 족제 이종원(李鍾元)의 서문에다 종손(從孫) 이상록(李相祿)의 발문을 붙여 1940년에 전라북도 남원에서 간행하였다. 5권 2...
-
조선 중기 남원 출신 이상형의 시문집. 이상형(李尙馨)[1585~1645]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이다. 자는 덕선(德先), 호는 천묵재(天默齋)이고, 본관은 전주(全州)로 효령대군(孝寧大君)[1396~1486]의 후손이다. 1625년(인조 3)에 별시 문과에 합격하여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의 문하에 들어가 정주학(程朱學)을 공부하였다. 병자호란 때...
-
조선 중기 남원 출신 진극순의 시문집. 진극순(陳克淳)[1620~1657]은 전라북도 남원군 대산면 죽곡 출신이다. 자는 사수(士粹), 호는 환성암(喚醒庵)이고,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효행과 우애가 극진하였다. 유고는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1759~1838]의 서와 9세손 진봉섭(陳鳳燮)의 발문을 붙여 1923년에 전라북도 남원에서 간행되었다. 3권 1책의 연...
-
조선 중기 남원에서 활동하던 방두천의 시문집. 방두천(房斗天)[1655~1704]은 전라북도 남원군 지당리 출생으로 방응현의 후손이다. 자는 대여(大汝), 호는 희암(希庵)이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유동연·이문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학행으로 알려졌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서문과 족종손 방준기(房濬箕)의 발을 붙여 192...
-
1919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일어난 범군민 항일 독립만세 운동. 1919년 4월 3일에 이석기(李奭器) 덕과면장의 주도로 전라북도 남원 군민이 궐기한 항일 독립 만세운동이다. 전라북도 남원에서도 거족적인 민족 운동에 동참하여 일제의 강점을 거부하고 자주독립을 찾고자 하였다. 1919년 3월 2일 서울에서 전달된 독립선언서는 오수에 사는 천도교 전도사 이기동(李期東)에 의...
-
1945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박주영 등이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사건. 1945년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금융조합에 근무하던 박주영 등이 금서 교환과 유인물 배포, 징병 기피 등을 통해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5월 13일 체포 구금된 사건이다. 일본이 대륙 침략을 수행하면서 전쟁의 명분을 내세워 인적·물적 자원의 조달에 총력을 기울이던 일제 말기, 조선총독...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판소리 명창. 강도근의 호적명은 강맹근(姜孟根)이며, 아버지 강원종과 어머니 이판녀 사이의 9남매 중 넷째로, 1918년 지금의 남원시 향교동에서 태어났다. 강도근은 동편제 판소리 「흥보가」의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지킨 판소리 소리꾼이었다. 통성 위주의 목으로 소리 끝을 짧게 끊어내며, 대마디대장단을 충실하게 구사하는 강도...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대금의 명인. 강백천은 1898년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장안리에서 출생하였다. 강백천은 17살 때부터 박준필, 전추산, 박종기 등에게 배운 뒤, 시나위 더늠 대금산조를 개척하였다. 따라서 강백천의 대금산조에는 「육자배기」나 「흥타령」과 같은 계면조 가락이 많다. 강백천의 대금산조는 박종기 계통의 판소리 더늠 대금산조와 더...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강석리에 있는 서당. 1905년에 이태암이 대강면 강석리의 강석굴 마을에 있는 자신의 가숙(家塾)에서 학동을 훈학시키는 형태로 서당을 운영하였다. 강석서당은 이후 1925년까지 운영되면서 70여 명의 제자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민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민주 인사 강은기는 1942년 2월 16일 남원시 쌍교동에서 아버지 강용갑과 어머니 진차정 슬하에서 태어났다. 남원초등학교를 거쳐 남원중학교에 진학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3학년 때 중퇴하고 인쇄소에 취직했다. 이것이 출판물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나선 계기가 되었다. 요천변의 노천에서 옹기...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좌도 농악의 명인. 1902년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출생하였다. 강태문은 류한준과 함께 진안 출신의 전문 농악인인 전판이에게 농악의 기예를 전수받아 ‘독우물굿’을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1946년에 열린 제1회 전국농악경연대회에 류한준과 함께 전라북도 대표로 참가하여 1등을 할 때 부쇠를 맡았다. 이후 류한준 패의 부쇠로 포장...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 마을에 있었던 서당. 1920년에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생암리 광암 마을에 사는 장석균이 자신의 가숙에 김병택을 훈장으로 초빙하여 학동을 대상으로 훈학을 실시케 하였다고 전해진다. 장석균은 광암 마을 유지들과 함께 서당을 운영하였다. 당시 제자들이 봄, 가을 연중 2회에 걸쳐 곡성 도림사에 가서 현장 강학을 하기도 하였다. 훈장...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내인리 바람실 마을에 있는 서당. 1960년에 동복오가 자신의 재실을 서당으로 꾸며 학동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87년까지 많은 학동들을 가르쳤는데, 배출한 제자들은 근 100여 명에 달하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함양사람 오정식 훈장의 공로가 매우 컸다고 전해진다. 구사재 서당은 현재 마을 공동 소유로 관리 및 보존되고 있으며,...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권포리 본동 마을에 있는 서당. 1910년에 본동 마을에 사는 정송규와 마을 유지들이 정씨 종중의 서재에 서당을 열어 학동들을 훈학하였다. 초대 훈장은 경상도 함양인이었던 정행록이었다. 권포서당은 1930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서당은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서당 터만 남아 있다....
-
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라북도 남원시의 역사.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는 남원의 역사는 민족사의 고난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땅은 전라도의 남원과 구례, 경상도의 성주와 진주 등인데, 논에 볍씨 한 말을 심어서 최상은 140두를 수확한다.”라는 『택리지(擇里志)』의 기록은 남원이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농업 생산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는 사...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목기 장인. 김광열의 부친과 그 또래들은 일제강점기 때 인월 산내국민학교를 마친 후 기술중학교 목공과에서 기계식으로 나무를 깎는 기술을 익혔다. 이러한 경험은 깎여진 목기를 칠하는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고, 그 기술은 현재에도 쓰이고 있다. 29살에 부인 정정순과 결혼해서 1남 4녀를 둔 김광열은 최근 대학을 졸업한 외아들 김태훈이 전수자로...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성재는 농사일에 종사하는 독실한 천도교인이었다. 1919년 3월 2일 천도교 남원교구장이었던 유태홍으로부터 독립 선언서를 넘겨받아 남원 요소요소에 게시하였다. 유석, 최병현과 함께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게시판과 사람이 많이 읽을 수 있는 곳에 부착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 해 4월 8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보안법 위...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옻칠 장인. 김영돌은 옻칠을 한 후 연마하거나 광택을 내지 않고 자연미를 살려 마감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그가 보유하고 있는 목심무문칠기 제작 기법과 기술은 1988년 경상남도 의창군 다호리 목관묘에서 발견된 기원전 1세기경의 목심칠기 유물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행했던 기법이다. 전통적인...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판소리 명창. 김영운의 호적명은 김기순으로, 명창 김정문의 조카이다. 판소리사에 크게 남은 명창은 아니지만, 김정문 사후 강도근 등장 이전까지의 공백기에 남원국악원에서 남원의 판소리를 지켰다. 김영운은 김정문의 형 김정식의 아들로 뒤늦게 자신의 작은아버지인 김정문으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김영운은 남원과 운봉에서는 상당히 이...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옻칠 장인. 플라스틱 그릇이 한창 성했던 무렵, 목기를 만들던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하나둘 떠날 때에도 목기 만드는 일을 자신의 평생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김을생은 이 일을 버리지 않았다. 직접 지리산에 올라가 나무를 져다가 만든 바루를 등에 지고 전국의 사찰을 돌기도 했다. 그때 짊어지고 다녔던 보자기는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어렸을...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동한 동편제 판소리 명창. 김정문은 송만갑의 제자로 동편제 판소리를 이은 사람이다. 김정문은 서편제 판소리를 접하고 난 뒤 동편제 판소리의 남성적인 맛에 서편제 판소리의 아기자기한 여성적 특성을 가미하였다. 이로 인해 김정문의 소리는 대중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찍부터 협률사에 참여하였으며, 상경하여 창극에도 관여하였다. 김정문은...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 열사. 김주열은 마산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되어 4·19혁명의 영원하고 유일한 상징 인물이 된 열사이다. 김주열은 1944년 10월 7일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재계(金在桂)와 어머니 권찬주(權燦珠) 사이의 둘째 아들이었다. 위로는 누이가 둘 있고 아래로 동생이 있었다. 할아버지 김태종(金泰鐘)은 해방...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 운동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에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이 헌병 검문소에 도착하여 만세 시위를 벌이자 일제는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
1927년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군·면 단위 청년회가 통합하여 결성한 사회운동 단체. 남원청년동맹은 1927년 8월 12일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5~6개 면 단위 청년회가 효율적인 사회운동의 전개를 위해 하나의 조직으로 결성한 단체이다.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봉건사상 퇴치와 정치·경제적 각성, 민중의 해방운동을 목표로 남원 지역의 각 청년회가 결속하고, 조직적...
-
1926년을 전후하여 전라북도 남원에서 주민 계몽을 위해 결성된 군·면 단위의 여러 청년 단체. 남원 청년회는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문맹 퇴치와 지역민들의 의식 개선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0년대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조직된 청년회는 남원청년회를 비롯하여 5~6개로 알려지고 있다. 문헌에서 확인된 것은 남원청년회, 금지청년회(1926. 6. 10 창립), 사매용북청년회...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내동리에 있었던 서당. 1908년에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내동리에 사는 순흥안씨와 남원양씨 문중이 서로 합의하여 마을 앞 연당의 서재에서 학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안골서당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김사헌, 김사문 등이 초기 훈장으로 부임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으며, 해방 후 1949년까지 운영되었다. 현재 서재는 남아 있지 않고 터만 남아...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목기 장인. 노동식은 1939년 남원에서 태어나 ‘남원목기공예사’를 설립하여 전통 목기의 맥을 잇고자 노력하고 있다. 15살 때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목기를 만지기 시작한 노동식는 유춘근 밑에서 실력을 연마하여 오늘날까지 약 45년 동안 목기와 함께 살아왔다. 현재 남원 시내에만 약 90여 곳의 목기 업체가 목기의 전통을 잇고 있다....
-
1920년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 대동단 남원지부는 1920년 7월 중순 강경진과 한태현의 주도로 남원 지역에 조직된 비밀독립 단체이다. 대동단은 1919년 김가진·전협·최익환 등이 주동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귀족·관료·유림·학생·의병·승려·여자·보부상 등 각계각층에서 수만 명의...
-
일제강점기에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활동가들. 일본 제국주의는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하며 조선 식민지 지배를 노골화했고, 결국 조선은 1910년 주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선 양반 사대부 사회의 중심축이었던 남원은 일제강점기에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여 일제에 항거하고 국권 회복과 민족 자주성을 되...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국가 무형문화재 제11-8호인 남원농악(호남좌도농악) 예능보유자. 류명철은 1942년 4월 25일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면 상귀리에서 출생하였다. 1946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전라북도 대표팀의 상쇠였던 류한준이 그의 부친이다. 1952년 부친인 류한준이 사망하고 나서 그의 부쇠였던 강태문이 상쇠를 맡게 되자 1957년 정월...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현대 좌도 농악의 명인. 류한준은 전문 농악인인 전판이로부터 농악의 기예를 전수받아, 마을굿에 머물러 있던 남원군 금지면 옹정리의 ‘독우물굿’을 걸립굿, 곧 예술 농악의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다른 지역의 농악인들과 교류를 함으로써 전라좌도 농악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류한준은 탁월한 기량을 지닌 상쇠로서 너울과 통솔, 쇠...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 운동가. 박권영은 형 박기영과 함께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을 지휘, 지도하였다. 산서면의 독립 만세 운동에는 박정주, 이길선, 정봉수, 정호현, 이상일 등이 가담, 주동을 하였는데, 박권영은 이들에게 태극기와 독립 선언서를 보내주면서 거사를 지도하였다. 3월 23일 남원 천도교가 주최한...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장터에서 유생 박정주, 안성섭 등의 주동으로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해 8월경 서울에서 이충모, 김형준, 양재명 등과 함께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박기영은 장병준을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하여 국내의 제반 정세를 보고하게 하고, 상호 연락을 갖...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1년(고종 28) 통사랑(通仕郞)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벼슬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박석규는 일단의 동지들을 이끌고 일본군 헌병대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았다. 빼앗은 무기로 무장하고 그 길로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였으나 불행히 체포되었다. 이후에도 계속 항일 운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3·1운동 때에...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정석은 박기영과 함께 대한국민회 전주지부를 부활시켜 비밀리에 지주들을 상대로 독립 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전경도를 통하여 전달하기로 결의를 모았다. 그들은 먼저 모금 대상 지주들에게 모금의 취지를 안내하는 서한을 보낸 뒤, 지주들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로 하였다. 그 내용은 먼저 친일 행동의 부당성을...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승문원교리를 지낸 박양(朴良)의 13대손으로, 진사 박홍규(朴洪奎)의 아들이다. 1919년 3월 19일 산서면 동화리 장날을 이용하여, 안성섭(安成燮)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벌이다가, 긴급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 해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위...
-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활동한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 현대 여류 판소리 명창으로서, 김소희, 박록주와 함께 1930년대부터 우리나라 여류 판소리를 대표해 온 인물이다. 서슬과 구성이 있는 목으로 서민적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김소희와는 다른 여창 판소리의 경지를 개척했다. 창극과 여성 국극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춘향가」의 월매 역으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시인.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수지중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을 지낸 뒤 원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일생을 보냈다. 19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에 「눈」이 당선된 이래, 『경향신문』과 『조선일보』에 시조 「노고단」과 「문장대」가 각각 당선되어 문학적 역량을 널리 떨쳤다. 그는 원광대학교 내에 ‘만경강’, ‘원광문학회’ 등의 학생 문학...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방극용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형갑수 등과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일본 군경의 무차별 사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殉國)하였다. 1968년에 대통령 표...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하였는데, 일 군경이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현장에서 방극용, 방명숙, 방진형 등과 함께 순국하였다...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에 있었던 서당. 1890년에 유환익이 마을 유지들과 뜻을 모아 남원시 운봉면 가산리에 병암재를 설립하였다. 오백지가 훈장으로 부임하여 학동들을 가르쳤으나, 1930년 2월 일제가 수차례에 걸쳐 서당의 해산을 요구하고, 오 훈장을 납치하려 하자 훈장이 피신하면서 서당이 폐설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서무리에 있던 서당. 1903년에 전라북도 남원시 동면 서무리에서 마을 유지들이 함께 협력하여 서당을 개설하여 많은 학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설립을 주도하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초대 훈장은 문석린이 맡았으며, 그 뒤에는 외부에서 초빙하였다. 1950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서당답 30두락이 있어서 이를 토대로 하여 서재를 보존·관리...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명창. 『조선창극사』에 따르면 송만갑은 그의 아버지인 송우룡으로부터 소리를 배웠다고 하고 있으나 송만갑 자신은 박만순 아래에서 10여 년 동안 공부했다고 하였다. 1902년에 원각사에서 활동하였는데, 이 무렵에 궁중을 출입하며 소리를 했다. 감찰직을 맡은 것도 이때다. 1902년부터 1905년 사이에는 민영환과 함께 상해를 거쳐 미국...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에 있던 서당 터. 1920년에 임모상과 마을 유지들이 뜻을 모아 대강면 사석리 마을 뒤편에 서당을 설립하였다. 초대 훈장으로는 당시 호남의 거유(巨儒)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초빙하였는데, 그는 이 마을에 기거하면서 20여 년간 후학을 양성하였다. 서당 개설이후 1970년까지 많은 제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으며, 고명한 후학들을 또한...
-
1927년 8원 12일 결성된, 항일단체 신간회의 전라북도 남원 지역 지회. 전라북도 남원 지역의 농촌 계몽운동과, 식민지 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7년 2월 15일 서울에서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항일운동단체인 신간회를 창립하였다. 전라북도 남원 지방에서도 신간회 지회를 설치하기 위하여, 1927년 8월 6일 남원청년회관에서...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평촌리에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신명의숙은 일제강점기에 윤철호라는 지역 원로에 의해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이다.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1910년에 최초로 건립되었다. 신명의숙은 사립학교의 성격으로 신식 교육을 시킨 초등 교육 기관이었다. 이후 1933년 이백심상소학교...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신파리에 있었던 조선 말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신흥서당(新興書堂)은 1894년(고종 31)에 남원도호부 보현방 신흥마을에서 마을 유지들에 의해 설립, 운영되었으며,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신흥서당이 위치한 보절면 신파리는 원래 일제강점기인 191...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양동서당은 1903년(고종 40) 남원진씨(南原晉氏) 가문 내의 시설로서, 당시 진기완에 의해 설립되었다.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친 지역 사회 초등 교육의 요람이었다. 양동서당은 오랜 전통의 촌합형 서당이다...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호남좌도 농악의 명인. 양순용은 양병철과 권일순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남원양씨 용성군파 15대손이다. 박학삼에게 가락과 굿의 체계를 배우고 전라북도 순창 동계의 김문식에게 ‘부포놀음’을 배웠다. 양순용은 1941년 임실군 필봉리에서 태어났고 13살 되던 해부터 박학삼 상쇠 밑에서 끝쇠를 치기 시작하여 14살에 필봉농악...
-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초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양정재(養正齋)는 영천이씨(寧川李氏) 가문의 문중에서 설립하여 마을 유지들과 운영했으며,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한문과 유학을 가르쳤다. 초동마을은 초가(草家)가 많아 마을 뒤편 뒷골로 불리는 재실에서 학동들을 훈...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에 있었던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되었던 사립 초등 교육 기관. 1934년까지 운영되다 중단된 진목서재(진목서당)를 계승하여 설립되었다. 양진재에서는 주로 진목서재의 후계 사업과 함께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한문과 유학을 가르쳤다. 양진재(養眞齋)는 1827년(순조 27)에 마을 유지들이 공동으로 설립했...
-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기리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향촌 사회를 근거지로 하여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요양재는 부안김씨 가문의 김환정(金煥正)에 의해 1920년에 설립되어, 1980년까지 60년간 운영되었으며,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산동면 대기리는 1460년대부터 능성구씨(綾城具氏) 일가와 부안김씨...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일 아침 유태홍이 남원군 덕과면 사율리의 천도교인 이기원으로부터 독립선언서 40여 장을 수령하여 자신의 아들인 유석과 김성재, 최병현 등 5명의 천도교인을 불러 선언서의 내용을 알려주고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게시판 등 공공기관의 게시판에 붙이도록 하였다.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유태홍은 징역 1년, 유석과 김성재는 각각...
-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판소리 명창. 동편제 판소리의 정통 계승자인 송우룡에게 배워 동편제 판소리를 후대에 전한 대표적인 동편제 명창이다. 유성준의 소리는 송만갑에 비해 보다 고제(古制)적인 특성과 함께 기교적인 측면이 공존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정노식은 『조선창극사』에서 실제보다 이론에 강하다고 평가하였다. 유성준은 「수궁가」와 「적벽가」를 임방울, 김연수,...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2호「심청가」 예능 보유자인 판소리 명창. 유영애는 1948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유영해이다. 2001년 6월 15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유영애의 판소리 전수관이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에 있다. 유영애는 한농선, 성우향...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스무 살을 전후하여 동학에 입교하여 옥고를 치른 후 천도교 남원교구장이 되었다. 1919년 당시 나이 53살 때 아들 유석 등과 함께 공공기관의 게시판에 독립선언서를 붙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언도받았다. 광복 직후 남원군민들은 그를 남원군 건국위원장으로 추대하였는데,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으로 1개월 만에 사임하였다. 1950년...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문인. 윤규섭은 1936년 『동아일보』에 평론 「문학인의 생활 의식」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당시 한국 문단의 사실주의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소설의 허구성에 관심을 갖고 「소설과 허구성의 문제」, 「예술적 형상의 개괄」, 「문학에 있어서의 조각성」 등을 발표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현정세와 문화전선」을 통해 문화 운동도 계급...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천도교인이던 이기원은 임실군 오수리에 있는 천도교당의 전도사인 이기동(李起東)과 친분이 두터웠다. 1919년 3월 2일에 이기동이 가져다준 독립선언서 40여 장을 같은 마을의 황동주와 황석현에게 배포하였고, 남원군 금리에 있는 천도교 교구실로 유태홍을 찾아가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독립선언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조치를 취...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9년 18살의 이두석은 우리나라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문맹 퇴치와 농촌 경제 건설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형 이두현(李斗鉉)과 함께 수양전진계(修養前進稧)를 조직하였다. 40여 계원들과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경지를 확장하고 청년들의 체력을 단련시키는 한편 야학을 열어 문맹 퇴치와 독립 사상 고취에 전력을 기울였다. 천황...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시민 운동가. 보절초등학교를 나온 후 한학에 전념하여 유가적 식견과 학식이 뛰어났다. 유교적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품성과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남달라 젊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해방이 되자 곧바로 남원청년회를 결성하는 데 주체적 역할을 했으나 좌익 세력이 남원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를 만들어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자 정치...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 투사. 이병희의 아버지 이두용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치열한 항일 독립 운동을 했던 언론인 투사였다. 남원의 『조선일보』 지국장 겸 기자로 활동하면서 1926년 남원의 형평사 창립 멤버로 참여하였고, 남원 신간회, 청년동맹 등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29년 3월 체포되어 3년 4개월간 투옥되었다가 출감하였으나 일제의 고문...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석기는 3·1운동 직전까지 덕과면장을 지냈고, 1919년 3월 1일 당시 오수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조카 이광수를 극비리에 서울로 파견하여 오세창, 송팔용 등의 지도자를 만나 지시를 받고 독립선언문을 받아오라고 하였다. 3월 31일자로 면장직을 사임하고 그의 투쟁 의지를 남원군 19개 읍·면장을 비롯 인근 타군 면장에게...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태현이 31살 되던 해,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모자라는 군수 물자의 조달을 위하여 우리 민족을 더욱 핍박하였다. 또한 그 무렵 일제는 내선 일체라는 구실을 붙여 소위 창씨 개명이라는 것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이태현은 창씨 개명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평소 그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일경이 몇 차례 주재소로...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45년 초 운봉 금융조합에 근무하던 박주영이 남원경찰서 고등계 형사에 의하여 체포 구금됨으로써 5·13 투옥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박주영이 구금된 것을 안 친구들은 서로 연락하여 소위 일인들이 말하는 불온 서적, 일기장, 편지 등을 소각하거나 은닉해 버렸다. 그러나 장홍식, 노상인, 정영필, 정인호 등이 구속되었고, 며칠 뒤에 서태...
-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여성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은 근대 판소리 여류 명창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다. 1920년대에 서울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30년대 판소리의 부흥기에 많은 음반을 냈다.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협률사를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하기도 하였다. 판소리의 생존이 대중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개화기 이후 1944년 해난 사고로 죽기까지, 대중의...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임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1890년(고종 27)에 남원도호부 운봉현 관내의 응금마을에서 강신철과 지역 유지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설립 이후 약 40년 이상 운영되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 12월에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남원도호부 운봉현의 응금마을은 숲머리라 불린 마을로, 산세가 수려하여 학문...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줄타기 명인. 후기 8명창 중의 하나인 동편제 소리꾼 장재백의 아우로 본관은 흥덕이며 남원 운봉에서 태어났다. 장재봉은 1862년(철종 13)에 태어났다. 장재봉은 동편제 소리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 형 장재백과 함께 그 재능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재봉의 재능은 판소리보다 줄타기 곡예에서 두드러졌다. 장재봉은 장재백과 함...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장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건축물. 어필각(御筆閣)이란 임금이 직접 글씨를 써서 내려준 건물을 뜻한다.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27호이다. 조선 태조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6세손인 하문팔(河文八)은 하늘에서 내린 효자라 하여 국가로부터 정려(旌閭)를 받고, 참판(參判)을 증직(贈職)받았다. 또한 그의 아들인...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1945년 초 운봉 금융조합에 근무하던 박주영이 남원경찰서 고등계 형사에 의하여 체포, 구금된 것이 5·13 투옥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이때 장홍식, 노상인, 정영필, 정인호 등이 구속되었고, 며칠 뒤에 서태규, 이정옥, 노형봉, 이현필, 노종선 등이 연행, 구금되었다. 이것이 바로 5·13 투옥 사건이다. 당시 한국인 형사 양병일,...
-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호남 농악의 명인. 1869년 전라북도 진안 출생으로 한때 남원시 송동면에 거주했던 호남 농악의 명인이다. 전판이는 현재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호남 좌도 농악이라고 할 수 있는 임실 필봉 농악, 남원 농악, 곡성 농악 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또한 『호남농악』 인명록에 ‘우도 농악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아 전판...
-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명창. 정정렬의 소리 학습은 유년기부터 시작된다. 7살 때부터 14살 무렵까지 박유전의 소리를 전승한 서편제 명창 정창업에게 소리를 배웠다. 스승 정창업이 타계한 이후에는 당시 국창으로 추앙받던 이날치에게 소리 수업을 받았으나 1892년 이날치 명창 역시 세상을 떠났다. 연이어 스승이 타계하자 정정렬은 새로운 스승을 찾기보다 본격적인...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동선은 1919년 4월 3일 이석기와 함께 덕과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날은 식수 기념일로서 일제 치하에서 매년 행해지던 연례 행사일이었다. 조동선은 면 직원으로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면장 이석기 및 면내 유지들과 비밀 회의를 통하여 이 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죽곡서당은 1880년(고종 17) 남원도호부 대곡방 관내에서 장수황씨(長水黃氏) 가문 문중에서 설립했으며, 약 70년 이상 운영되었다. 일명 대실서당으로도 불렸다. 죽곡서당에서는 구한말까지 대곡방의 중심 마을이었던 대실마을(상대, 하대 마을)을 기반으로 주변의 10여...
-
전라북도 남원시 덕과면 만도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진덕재(眞德齋)는 1890년(고종 27) 진주소씨(晉州蘇氏) 가문의 소욱택이 마을 유지들과 함께 주도하여 설립하였다. 당시 보절면 만도리 일대의 만동마을과 도촌마을의 학동들에게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기초 학문과 유학을 가르쳤다. 진덕재는 일제강...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소설가. 최명희는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다녔던 당대의 지식인 아버지 최성무와 어머니 허묘숙의 2남 4녀 가운데 장녀로 출생하였다.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전라북도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 560번지이다. 최명희는 1964년 5월 5월 고등학교 2학년 때에 동국대학교에서 주최한 제2회 전국 고교생 문학콩쿠르에...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병현은 남원 지역에서의 거사일을 3월 23일로 잡고, 천도교인들을 지도하여 거사의 계획을 짜는 한편 유림들과 접촉하여 이에 합세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3월 23일 첫번째 거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다음날을 기약하고 동지들과 비밀리에 준비를 서둘렀다. 4월 4일 장날을 기하여 많은 장꾼들과 함께 밤사이에 연락받은 덕과...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의 남원향토박물관에 있는 춘향 인물 초상화 세 점. 최초의 춘향 영정은 춘향사당이 건립되던 1931년경에 제작된 강주수 화백의 작품이다. 그뒤 1939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첫 번째 그린 작품을 현준호가 기증하여 봉안하였으나 한국전쟁 중에 춘향 영정이 훼손되자, 1961년 이당 김은호 화백이 다시 그린 것을 당시 내각수반이던 송요찬 장군이 기증하여...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 있는 「춘향전」의 주인공인 춘향의 묘. 남원시에는 「춘향전」에 나오는 유적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몽룡과 성춘향이 노닐었다는 광한루와 춘향 모가 살았다는 월매집, 그리고 춘향의 영정을 모신 춘향사와 춘향이가 살았던 집, 그리고 춘향의 묘가 있다. 남원시의 광주 대구 고속 도로 나들목 삼거리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구례...
-
1960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있었던 투표함 소각사건. ‘투표함 소각사건’은 1960년 7월 29일에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던 7월 30일에 일어났다. 남원 갑구 선거구에서 일어난 개표 부정 사건에 항의하던 시위대가 군청에 진입하여 보관 중이던 투표함을 소각하였다. 이 사건으로 남원 갑구 선거위원 조갑수(趙甲洙)가 부정선거 개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고...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평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때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 평촌서당은 천안전씨(天安全氏) 가문의 전용석에 의해 설립되었다. 전용석이 직접 훈장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집안 내에 있던 독영서재와 서실을 개방하여 대강면 일대의 주민 자제들을 훈육시켰다.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설립 이후 약 200여...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풍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풍촌서당은 모일환 가문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훈장을 가숙시키면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풍촌리 감동마을은 1380년(우왕 6)에 왜구의 침입을 피해 온 사람들의 은거지가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백두대간의 풍악산 자락에 위치한 덕분에 감...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진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학산재(學山齋)는 임진왜란 이후 남원에 정착하게 된 진주소씨(晉州蘇氏) 가문의 소종혁에 의해 설립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1921년에 최초로 건립되었고 1936년까지 운영된 초당(草堂) 건물의 서당이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의 터. 학이재(學而齋)는 일제강점기에 지역 유지인 이종택 가문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주로 『사자소학』과 사서삼경 및 『명심보감』 등의 유학을 가르쳤다. 학이재는 1923년에 설립되었으며, 1953년까지 운영되었다. 호산 김사관 훈장이 학동들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대동단 남원지부는 서울 본부와의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남원지부의 활동 목표를 설정하였는데, 항일 운동에 동조하는 지방의 유지들로부터 독립 운동 자금을 모금하여 중앙 본부를 통해서 상해임시정부에 헌금하였다. 대동단 전라북도지부에서도 단원들과 지역 유지들로부터 헌금을 받아 독립 자금으로 본부에 납부하기도 하였다. 이때...
-
1926년 7월 28일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 설치한 형평사의 분사. 형평사 남원분사는 인권 해방, 형평 운동, 합리적인 사회 건설 등의 강령을 내걸고 설립된 사회운동단체인 형평사의 하부 단체다.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처음 설립된 형평사는 대중적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남원에서는 1926년 7월 28일 최영석을 주도로 하여 설립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농악인. 홍유봉이 농악을 처음 접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놀 때나 ‘술맥이’ 때에 흥겨운 대로 두드리고 노는 소박한 마을굿을 통해서였다. 그러다가 8·15해방 이후, 스무 살 넘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에는 전국적으로 열린 농악 대회를 보면서 전문적인 농악인이 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그러던 중에 서울...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공예가. 국가무형문화재 제65호 백동연죽장(白銅煙竹匠)의 기능 보유자인 죽전(竹田) 황영보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아버지 황용구의 도제로 들어가 배우면서 할아버지 황찬서로부터 3대째 기능을 전수받아 백동연죽장을 제작해 오고 있다. 백동연죽장은 민담뱃대와 오동상감(烏銅象嵌) 담뱃대로 나뉜다. 오동상감 연죽은 설대에 인두로 소나무와 두루미 등의...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빨치산 지휘관. 본관은 장수. 호는 회당(悔堂).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에서 아버지 황달주(黃達周)와 어머니 슬하에서 1923년 9월 10일에 차남으로 태어났다. 황의지의 집안은 중농 정도의 살림이었는데도 아버지는 민족 의식이 대단하여 사재를 털어 마을에 명신재(明新齋)라는 사립 학교를 만들고 선생들을 초빙하여 학생들을 가르치...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찬서는 1919년 4월 4일 남원읍 장날을 이용하여 방극용, 형갑수 등이 주동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이 날 정오경 광한루 광장에 모인 1,0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남문을 거쳐 시장으로 시위 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제 군경의 무차별 사격으로 인해 방극용 등 8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0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