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남원시 송내면 송내리의 가덕사 내부에 있는 석조 보살상. 가덕사 석조여래입상은 1999년 11월 19일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가덕사 대웅전의 내부 한쪽에 서남향으로 세워져 있다. 얼굴은 신체에 비해 작고 풍만한데, 광배(光背) 상단부의 결손을 제외하고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광배와 불신(佛身)이 한 돌로 조각되었다. 방형의...
-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있는 경주김씨 수은공파의 족보를 펴내기 위해 제작한 유물. 경주김씨 보판각은 1998년 11월 27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수은공파의 시조인 수은공은 고려 후기 충신으로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은둔하였으며, 후에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경주김씨 보판은 1711년에 발간한 『신묘보...
-
조선 중기의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대여(代汝). 수은(樹隱) 김충한(金沖漢)의 후손이며, 수성재(守性齋) 김정(金定)의 아들이다. 김용려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일찍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며, 타고난 자질이 강직하고 행의(行誼)가 고매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서 북으로 올라가는데, 강화...
-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고려 문종 때 지어진 만복사의 터. 『동국여지승람』 권지39, 남원도호부 「불우조(佛宇條)」를 보면, “기린산 아래에 있는데, 동쪽에 오층전이 있고 서쪽에 이층전이 있으며, 전 내에는 동불이 있는데, 길이가 35척(약 10.6m)이다. 고려 문종 때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숙종 때에 간행된 『용성지(龍城誌)』에...
-
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 남원우체국 내에 자리한 단 모양의 당산(堂山). 남원 석돈은 화강석을 이용하여 기단(基壇)을 쌓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돌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1992년 6월 20일 전라북도 민속 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시대 남원의 객사인 용성관(龍城館) 뒤쪽에 거대한 돌무덤이 있어 이를 석돈(石墩)이라 하였다.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며...
-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죽산박씨의 종택 가옥. 남원 죽산박씨 종가는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80호이다. 수지면 호곡리 홈실마을은 죽산박씨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전통 마을의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 가옥의 특징을 간직한 남원 죽산박씨 종가는 박문수(朴門壽)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다. 박문수는 고려 후기 충신으로 정몽주...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 남원관광지 내에 있는 박물관. 남원 지역에 산재한 역사, 문화, 민속 등 선조들의 귀중한 문화 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연구·전시·보존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남원시는 1999년부터 향토박물관 건립 사업을 추진하였다. 2003년 12월 20일 토목, 건축, 전기, 기계, 소방, 전시 등의 관련 시설 및 사업을 완료하고, 2004년...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에 그린 그림. 대곡리 암각화는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김광(金洸) 연구사가 처음으로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1992년 장명수(張明洙)에 의해 암각화는 두 곳에서 발견되었다. 한편, 송화섭은 1992년 이 근처에서 동이(臼)형 확과 성혈군(性穴群)을 발견하였다. 1988년 1...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있는 조선 시대 형식의 억새풀로 이은 초가집. 1895년 박창규가 처음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 1951년 다시 지었다. 원래는 마을 전체가 샛집이었는데 현재는 2채밖에 남아 있지 않다. 다른 한 채는 뼈대만 남아 있으며, 벽체와 창호는 현대식으로 고쳤다. 조선 시대 일반 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 등으로 이루어...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에 있는 금동 불상. 백장암은 실상사와 같은 시대인 9세기 초에 창건된 사찰이다. 임진왜란으로 실상사가 폐허가 되었을 때는 약 200년 동안 실상사의 승려들이 이 절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백장암 보살좌상은 원래 실상사 백장암 안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997년 5월에 도난당했다가 같은 해 9월에 회수되어 현재 실상...
-
전라북도 남원시 산곡동에 있는 선국사의 중심 법당. 선국사 대웅전은 교룡산성 안에 위치한 건물로서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국사는 교룡산성 안에 있는 절로 산성 내에 있다고 산성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685년(신문왕 5)에 세워졌으며, 이곳에 용천이 있다고 하여 용천사라 하였다. 선국사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
전라북도 남원시 도통동 선원사에 있는 법당. 선원사 약사전은 중생의 고뇌를 구제하는 약사불(藥師佛)을 모신 법당으로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19호이다. 정유재란 때 불탄 것을 1754년(영조 30)에 다시 지었다. 선원사는 875년(헌강왕 1)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이 절이 남원의 번영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믿어 각별히 보호하고 후원해 왔다. 정유재...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사람들의 성(姓)을 이르는 명칭. 성씨의 발생 근원은 정확한 기록이 없거니와 전해지는 자료도 많은 부분 소실되어 상세히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중국 성씨 제도의 영향으로 고조선부터 왕족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성씨(姓氏)가 이미 단군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이후...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상리 실상사에 있는 법당. 실상사 극락전은 극락 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으로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45호이다. 원래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려 숙종 때 다시 지었다. 하지만 실상사 관련 기록에는 1831년(순조 31)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그러다 고종 때 함양 출신의 양재묵(楊載黙)과 산청 출신의 민동혁(閔東赫)이 절터...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순부(純夫), 호는 눌재(訥齋)·송파(松坡). 시조 병부공 양능양(梁能讓)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증우찬성(贈右贊成) 양구주(梁九疇)이다. 양성지[1415~1482]는 1441년(세종 23)에 생진문과(生進文科)에 합격하여 경창부승(慶昌府丞)과 성균전적(成均典績)을 역임하였다. 훈구파(勳舊派) 중진으로서...
-
고려 후기 조선 초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있으면서 대방군(帶方君)에 봉(封)해졌다.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 이성계가 세 번이나 불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평소 효행이 지극하였던 양천룡은 부친이 세상을 하직하자 묘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애통해하며 지극한 효심으로 시묘(侍墓)하였다. 연이어 모친의 상을 당하...
-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양치민은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용성지(龍城誌)』권6 효자편에 기록되어 있음은 그의 효행이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용성지(龍城誌)』에 의하면, 그는 평소 온 정성을 다하여 부모에게 효행을 다하였으며, 부모의 상을 당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를 드시게 하였다 한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 초명은 양정(梁涏), 자(字)는 여관(汝寬). 부인은 전주최씨이다. 형제로 양집(梁濈)이 있다. 양필은 양집과 함께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한 형제였다. 두 사람은 아침에는 부모께 문안을 드리고 밤이면 편히 주무시도록 자리를 보아드렸다. 중병(重病)으로 어머니가 위태롭게 되자 대소변의 맛을 보아 병의 차도를 감지하였다....
-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열녀. 남편 오여격(吳汝格)이 죽자 시체를 끌어안고 3일 동안 피눈물을 흘리면서 스스로 맹세하기를 “같은 날 자결하기로 한 것은 나의 본마음이지만 나에게 자녀가 없는데 누가 시체를 염(殮)할 것이며 장례를 치루겠습니까?”하였다. 그녀는 죽만 3년 동안 먹고 겨우 연명(延命)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제(祭)를 정성으로 예를 갖추어 극진히 하였다. 복제(服...
-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열녀. 남편은 사인(士人) 오윤제(吳允濟)이다. 고씨는 시어머니를 섬김에 효도를 다하고 남편을 섬김에 공경을 다하였다. 일에 처해서는 유순(柔順)으로 정대(正大)하게 하였다. 남편이 죽었을 때에는 불을 때지 않았으며 뼈를 세워 아침저녁으로 제(祭)를 예를 갖추어 정성으로 하였다. 그녀는 항상 남편과 함께 죽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죽을 때까지 흰 옷...
-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용담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용담사는 고려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용담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백제 성왕(聖王) 때 창건하였다는 설과 통일신라 말에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용담사는 현재 석불 주위에는 주춧돌이 발견되지 않아 그 형태를 추측할 수 없으나 불상의 둘레에 금당지가 있...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에 있는 석장승. 장승은 보통 마을 입구에 세운다. 운봉 및 인월 등지에 돌장승이 많이 세워져 있는데 유곡리 돌장승은 그 중에 하나로, 모두 2기이다.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유곡리 돌장승은 남원시 인월면 유곡리 닭실마을 새마을 창고 앞에 위치한다. 장승은 둘 다 수염을 길게 드리웠는데, 오른쪽 장승에는 ‘천하...
-
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서산(瑞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9권 전라도 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 조의 기록에 보면, “어머니 현씨(玄氏)가 병에 걸리자 유익경은 어머니의 똥을 맛보고 사생(死生) 여부를 가늠했다. 이 일을 왕에게 보고하니 동부녹사(東部錄事)에 제수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그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가 주천면 용궁리...
-
조선 전기·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우복(于復). 중추부지사 유규(柳規)의 서자이다. 건춘문(建春門)을 지키는 갑사(甲士) 출신으로,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에 자진 출전하여, 난이 끝나자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후 온양별시문과(溫陽別試文科)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468년 왕위에 오른 예종에게 남이의 언행과 시를 빌미삼아 그...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약한 문신. 유자택은 영광에서 태어났으나 훗날 남원시 고죽리로 이주하여 영광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손이 번창하여 이백면과 사매면 등 여러 곳에 동족 부락을 형성하였다. 유자택의 아버지 유혜방(柳惠芳)은 선대 이래 영광에서 살았다. 일찍이 영광군수를 역임하고 후에 영광군으로 봉군됨과 아울러 시호를 익양공이라 하였다. 유혜방의...
-
조선 말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경공 유성원(柳誠源)의 5세손인 석헌 유옥(柳沃)의 13세손으로, 아버지는 유봉기이다. 효자로 이름이 높아 죽은 뒤에 정려비가 세워졌다. 정려비는 남원시 이백면 내동리 외동마을로 들어가는 도로 우측에 있다. 비에 ‘효자문화유형현지비(孝子文化柳亨鉉之碑)’라고 되어 있으며, “신미(辛未, 1931) 상사...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문화(文化). 호(號)는 뇌천(磊川). 할아버지는 석헌(石軒) 유옥(柳沃)이고, 아버지는 유홍원(柳洪源)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이다. 평생을 안빈낙도하면서 입신 출세를 구하지 않았다. 『뇌천집(磊川集)』의 「행장(行狀)」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덕행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드날렸지만 병자호란이란 국가적 치욕을 당하면서 벼슬에...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노(仲魯), 호는 후천(後川). 용성정(龍城正) 이열(李悅)의 아들이다.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大新里) 상신마을은 영해군 이경여(李景輿)가 정착한 곳으로, 전주이씨 영해군파의 집성촌이다. 어려서부터 풍채가 준수하였고, 도량이 넓고 호방하였으며, 말주변이 훌륭하여 사람들이 추앙하였다. 고금을 널리 살펴보아 때에 힘쓸...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 전주(全州). 자는 성칙(聖則), 호는 풍거(風渠). 효령대군의 7대손이며, 춘성정(春城正) 이담손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이국형(李國馨)이다. 재간당(在澗堂) 김화(金澕)가 외할아버지이며, 배위는 경주김씨이다.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고 외모가 위연하였으며, 배운 것이 넓고 듣는 것이 많았다. 규율에 맞는 행동을 하였으며, 청렴하고 검소하며...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원(子遠), 호는 석동(石洞).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𥙷)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천묵재(天黙齋) 이상형(李尙馨)이다. 남원부 둔덕방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특이하여 동정에 절도가 있고 스스로 학문에 힘써 문사(文詞)만을 일삼지 않았어도 문장이 날로 이루어지니 선배들의 기대가...
-
조선 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열녀. 군자감정(軍資監正) 이부성(李傅聖)의 아내로, 남편이 도적의 칼을 만나자 자신의 몸으로 그 칼을 막아 남편을 살리고 혼자서 죽음을 당하였다. 이러한 일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기록되어 있는데, 부(傅)자가 득(得)자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원길(原吉), 호는 동고(東皐)·남당(南堂)·홍연거사(紅蓮居士). 아버지는 홍문관부수찬 이수정(李守貞)이다. 황효헌과 이연경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04년(연산군 10)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음을 당한 갑자사화 때 연좌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1522년(중종 17)에 생원, 1531년(중종...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아버지는 이팽년(李彭年)이다. 아우 이경신(李敬信)은 훈련판관(訓鍊判官)으로 충무공 이순신을 따라 전함을 수리하고 공로가 많았다.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 간성군수로 의병을 모아 충주 달천(達川)에서 신립(申砬)과 함께 싸우다 순절하였다. 선무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
고려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천(寧川)[현재는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로 조선시대에는 남원부 관할이었음]. 영천이씨(寧川李氏)의 시조인 이능간의 3세손이다. 이탕휴(李湯休)는 고려조에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였으나,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자신이 살던 곳을 스스로 방화하고 자손을 고향인 남원으로 보내었다. 그리고 자신은 관과 옷...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할아버지는 존양당(存養堂) 이유시(李惟時)이며 이가철[1757~1815]은 이유시(李惟時)의 차남이다. 동생은 이시권(李時權)이다. 효행이 탁이(卓異)하여 이행권은 이가철·이시권과 함께 ‘삼효(三孝)’로 불리며 일문삼려(一門三閭)의 정려(旌閭)를 받았다. 양현재(養賢齋)는 전주이씨 영해군파(寧海君派) 종중(宗中) 재실(齋室)로서...
-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이능간(李凌幹)을 시조로 하는 영천이씨는 전라북도 영천(寧川)에서 대대로 살았으며, 집성촌으로는 전라북도 남원군 이백면 초촌리, 전라북도 남원군 주천면 용담리,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등이 있다. 『용성지(龍城誌)』에는 이형길(李亨吉)이 고려 시중 송헌(松軒) 이능간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형길은 『용성지(龍...
-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이흥표(李興標)는 『용성지(龍城誌)』 6권 효자조에 나오는 인물로, 군수(郡守) 이성임(李聖任)의 손자이다. 이흥표는 효도와 우애에 마음을 쏟으며 그 밖의 일에는 문 밖 출입을 잘 하지 않았다. 그의 형이 어머니를 봉양하며 5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는데, 이흥표는 신혼정성(晨昏定省)을 다하여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피하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승지(承旨) 귀래정(歸來亭) 임붕(林鵬)의 후손이며, 형은 임동진이다. 임도진(林道鎭)은 부모를 섬기는 데 효성이 지극하고 일가친척 사이에 화목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자 전후(前後) 6년 동안 여막(廬幕)하니 그 효행이 널리 알려졌다. 임도진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1893년(고종 30)...
-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효자.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사중(思中), 호는 율계(栗渓). 아버지는 경력(経歴) 장응규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이다. 장급(張伋)[1522~1589]은 품성이 뛰어나고 대의(大義)를 중시해 불의(不義)를 보면 그 자리에서 문책하였다고 한다. 1558년(명종 13) 아버지가 죽자 서울에서 남원까지 운구하고 여묘(廬墓) 3년 동안 효를...
-
전라북도 남원시 송동면 장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건축물. 어필각(御筆閣)이란 임금이 직접 글씨를 써서 내려준 건물을 뜻한다.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27호이다. 조선 태조 때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6세손인 하문팔(河文八)은 하늘에서 내린 효자라 하여 국가로부터 정려(旌閭)를 받고, 참판(參判)을 증직(贈職)받았다. 또한 그의 아들인...
-
조선시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서산(瑞山). 시조는 송나라에서 원외랑(員外郎)을 지낸 정신보(鄭臣保)로, 송나라가 망하자 바다를 건너 고려로 망명하여 충청남도 서산시에 정착했으며, 현재 서산시 송곡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운성지(雲城志)』 「인물지(人物志)」 효자(孝子) 편에 ‘정규룡(鄭圭竜)은 효성이 지극하여 할아버지 할머니의 초상을 당했을 때 슬픈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