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에 남원 출신 김주열이 없었다면 마산의 3·15는 항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우리 역사에서 4·19혁명도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마산의 국립3·15민주묘역도, 서울의 국립4·19민주묘역도 없었을 것이다. 3·15의거에서 4·19혁명까지 김주열이 어떤 일들을 수행하였기에 이런 결과가 빚어질 수 있었는가? 김주열(金朱烈)은 전라북도 남원시 금지...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천년 묵은 칡덩굴이 우거지고 마을 앞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어 갈계(葛溪)라 하였다. 조선 초기 함양박씨(咸陽朴氏)가 들어와 번창하였으며 박씨들의 집성촌이 되어 지서, 학교, 보건소 등을 유치하는 데 힘써 큰 마을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본래 운봉의 북상면(北上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갈계리라 하여 남원군...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화 운동가. 민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민주 인사 강은기는 1942년 2월 16일 남원시 쌍교동에서 아버지 강용갑과 어머니 진차정 슬하에서 태어났다. 남원초등학교를 거쳐 남원중학교에 진학했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3학년 때 중퇴하고 인쇄소에 취직했다. 이것이 출판물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나선 계기가 되었다. 요천변의 노천에서 옹기...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형성될 당시만 해도 사람이 드물고 천연의 밀림이 우거진 깊은 골짜기여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니 마을 사람들은 자연히 산신을 섬기게 되었다. 집집마다 정성을 드리고 매년 마을 공동으로 산신제를 모셔 개를 잡아 호랑이에게 바쳤다 하여 마을 이름을 구식(拘食)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는 호랑이가 먹이로 개를...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 열사. 김주열은 마산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되어 4·19혁명의 영원하고 유일한 상징 인물이 된 열사이다. 김주열은 1944년 10월 7일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재계(金在桂)와 어머니 권찬주(權燦珠) 사이의 둘째 아들이었다. 위로는 누이가 둘 있고 아래로 동생이 있었다. 할아버지 김태종(金泰鐘)은 해방...
-
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에 있는 김주열 열사를 추모하고 선양하는 단체. 1999년 남원시와 마산시에서 함께 발족한 순수한 민간 단체였으나 2005년 ‘소통과 화합을 위한 186 김주열 대장정’ 행사를 계기로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로 단일화하였다. 김주열 열사를 비롯한 모든 민족 민주 열사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역사 발전에 이바지 하고, 동서 화합과 국민 통합을 위한...
-
전라북도 남원시 하정동에 있었던 경제 정의 실천 운동 시민 단체. 남원의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시정과 의정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시민, 청년, 서민층 등이 모여 결성한 순수한 민간단체이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부정의를 척결을 통하여 경제 정의를 확립하고 실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9년 1...
-
전라북도 남원시 신정동에 있는 전라선 철도역. 전라북도 남원시 동충동에 있던 구 남원역사는 부지가 4만 여 평이었고, 보선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철도역이 없는 순창, 장수 지역은 물론이고 경상도 함양이나 거창에서도 남원역을 이용했던 탓에 남원역은 남원 지역과 인근의 경제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도로 교통망이 발달하게 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
지금은 옮겨갔지만 70여 년 동안 남원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가장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남원역의 뒤에는 조그만 철책 안에 ‘만인의총유지(萬人義塚遺址)’라는 조그만 돌 표지석이 서 있다. 이 자리에서 동쪽으로 100m 거리에는 남원성 북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구 남원역의 구내이다. 만인의총 유지 바로 뒤쪽에서부터 남원성 북문 자리로는 남원성의 북쪽 성벽이 가로...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두락리는 이동마을을 행정리로 포함하고 있다. 아영면 면소재지에서 동북쪽에 위치하며, 경상남도 함양군과 경계가 된다. 인월면 유곡리와의 경계 능선에 가야 고분군 3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마을이어서 남자들이 싸움터에 끌려가 여자들이 농사일을 하였는데, 흉년이 들어 고사를 지냈더니...
-
1945년 11월 17일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사건. 미군 남원양민 학살사건은 해방 정국에서 미군에 의해 최초로 일어난 한국 양민 학살사건이다. 1945년 8월 15일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16일에는 건국청년치안대가 조직되었으며, 22일에는 중앙부서가 12부 1국으로 확대, 개편되어 광복 한국으로 순탄한 정부조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9월 7일 미군은...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원래는 운봉의 북상면 지역으로 처음에는 ‘쑥대’, ‘쑥띄’로 불렸다. 이후 ‘쑥 봉(蓬)’자를 써서 봉대(蓬臺)라고 부르다가, 풍수지리상 새[鳥]의 형국이라 하여 봉대(鳳臺)라 하였고, 1941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쓰기에 편하도록 봉대(奉大)로 고쳤다. 백두대간의 시리봉 자락에 형성된 마을로, 북으로는 아막...
-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전라북도 남원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산 비정규군. 빨치산이 빨갱이로 통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이것이 이념 분쟁 과정을 통하여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표현한 것이 빨갱이다. 육지에서의 본...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막성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성리(城里)라 하였으며, 성 가까이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을 상성(上城), 아래 위치한 마을을 하성(下城)이라 하였다. 상성은 흥부의 발복지 마을로 입증되어 ‘흥부마을’ 혹은 ‘흥부발복지마을’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운봉군 북하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아영면에서 제일 먼저 형성된 마을로 전해지는 아곡리는 위치가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인 아막성(阿莫城)의 성역이라 하여 아실이라 했는데 한자로 옮기면서 아곡(阿谷)이 되었다. 통일신라 초기 달성서씨 일가가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서씨들이 타지방으로 이주하고 재령이씨, 함양오씨...
-
전라북도 남원시에 속하는 법정면. 아영면은 남원의 문헌 기록상 최초로 등장하는 지역이다. 아영은 삼국시대에 아막(阿莫), 아용(阿容), 아영(阿英)이라 하였고 지금도 옛 지명이 아막산성(阿莫山城) 등으로 남아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백제본기」에서는 아막산성으로, 「신라본기」에서는 아막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아영면 두락리에는...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月山)’이라는 이름은 ‘달바위 섬’에서 ‘월(月)’을 ‘오산(五山)’에서 ‘산(山)’을 딴 이름이다. 운봉의 북상면 지역의 구주리(舊主里), 신지리(新至里) 일부와 북하면의 성리(城里) 일부를 병합하여 남원군 아영면에 편입하였다가 1995년 남원시에 편입되었다. 백두대간 기슭의 450m 고지에 위치하며...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최초로 마을에 정착한 옥천조씨(玉天趙氏)가 마을 터를 잡을 때 지형이 개미의 허리를 닮았다 하여 개미주라 하였다가 개암지 또는 개암주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바꾸어 의지(蟻池)가 되었다. 1494~1506년경 옥천조씨가 괴질을 피하여 들어와 정착하였으며, 그 후 김해김씨 등 타성이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운봉의 북하...
-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시민 운동가. 보절초등학교를 나온 후 한학에 전념하여 유가적 식견과 학식이 뛰어났다. 유교적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품성과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남달라 젊어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해방이 되자 곧바로 남원청년회를 결성하는 데 주체적 역할을 했으나 좌익 세력이 남원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를 만들어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자 정치...
-
전라북도 남원시 출신의 민주 투사. 이병희의 아버지 이두용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치열한 항일 독립 운동을 했던 언론인 투사였다. 남원의 『조선일보』 지국장 겸 기자로 활동하면서 1926년 남원의 형평사 창립 멤버로 참여하였고, 남원 신간회, 청년동맹 등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29년 3월 체포되어 3년 4개월간 투옥되었다가 출감하였으나 일제의 고문...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성계 장군이 1380년(우왕 6) 황산대첩 당시 이곳의 바람을 끌어 화공(火攻)으로 왜구를 물리쳤다고 하여 ‘바람시기(혹은 바람세기)’라 불렀던 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인풍리라 하였다. 한편 비단 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운봉의 북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일대리는 마을이 길게 뻗어 있어 띠와 같다는 의미로 일대(一臺, 逸臺)라 하였다가 햇볕을 가장 많이 받는 마을이라 하여 ‘일대(日臺)’로 바뀌었다. 일대리에 속하는 부동리는 뒷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가마솥[釜] 같다 하여 ‘가마말’ 이라고 했는데, 줄여서 ‘가말’이 되었고 한자로 바뀌면서 부동(釜洞)이 되었...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외지리는 뒷산이 풍수상 유아봉모(乳兒奉母)인데 아기들의 자리가 마을에 해당하며 밖에 있는 아기라는 뜻으로 ‘밧진애기’라 하였으며,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외지(外至)가 되었다고 한다. 광평리는 주위가 넓은 평야여서 넓은 들이라는 뜻의 ‘너더리’였는데 한자로 옮기면서 광평(廣坪)이 되었다. 고인리는 마...
-
조선 후기 전라북도 남원에서 활동한 동학 교주. 본관은 경주(慶州). 아명(兒名)은 복술(福述). 본명은 제선(濟宣)이며 자는 도언(道彦), 호는 수운(水雲). 아버지는 최옥(崔鋈)이며 어머니는 한(韓)씨이다. 최제우는 1860년 4월 5일 종교 체험을 통하여 득도한 후 1861년 11월 경주를 떠나 제자 최중희(崔仲羲)를 대동하고 12월경에 남원으로 들어왔다. 최제우의...
-
전라북도 남원시 어현동 남원관광단지 내에 있는 춘향 문화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문화 예술 공간. 남원시에서는 남원 지역의 상징인 춘향 문화에 대한 관광 사업화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2001년 12월 착공하여 2005년 5월 1일 춘향테마파크를 개장하였다. 춘향의 일대기를 만남의 장, 맹약의 장, 사랑과 이별의 장, 시련·축제의 장 등 4개의 장으로 구분하...
-
1960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있었던 투표함 소각사건. ‘투표함 소각사건’은 1960년 7월 29일에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던 7월 30일에 일어났다. 남원 갑구 선거구에서 일어난 개표 부정 사건에 항의하던 시위대가 군청에 진입하여 보관 중이던 투표함을 소각하였다. 이 사건으로 남원 갑구 선거위원 조갑수(趙甲洙)가 부정선거 개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고...
-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활동한 빨치산 지휘관. 본관은 장수. 호는 회당(悔堂).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에서 아버지 황달주(黃達周)와 어머니 슬하에서 1923년 9월 10일에 차남으로 태어났다. 황의지의 집안은 중농 정도의 살림이었는데도 아버지는 민족 의식이 대단하여 사재를 털어 마을에 명신재(明新齋)라는 사립 학교를 만들고 선생들을 초빙하여 학생들을 가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