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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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거주하는 개인이 소장한, 1701년 김창협이 저술한 강화도 순절 충신 기록. 강화도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침입으로 한양과 강화도가 함락될 때 순절했던 우의정 김상용과 이상길·이시직·황선신·권순장·김익희 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42년(인조 20) 강화 유생 정건(鄭楗) 등의 발의로 창건되었고, 1658년(효종 9)에 사액을 받았다. 김창협(金昌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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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송징은이 지은 인물록. 송징은(宋徵殷)[1652~1720]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여산, 자는 질부(質夫), 호는 약헌(約軒)이다. 아버지는 현감 송광순(宋光洵)이고, 부평 이씨 찰방 이상재(李尙載)의 외손으로, 박세채(朴世采)의 문하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89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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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일(聖一). 호는 약산(約山).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후손으로, 경종 연간 신임옥사(辛壬獄事) 때 죽은 노론 사대신 중 한 명인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1648~1722]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김명순(金明淳)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金興根)이다. 김병기(金炳冀)[1818~1875]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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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여극(汝極),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김성대(金聲大)이다. 김석명(金錫明)이 큰형이다. 김석보(金錫保)[1664~1741]는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693년(숙종 19) 무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선전관이 되었다. 1698년(숙종 24) 군기시 주부를 거쳐 사헌부 감찰과 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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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효자이자 문신.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이원(而遠), 호는 율강(栗崗)·촌로(村老)이다. 경기도 장단군에서 출생했으며, 좌찬성 평호공(平胡公) 김개(金漑)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사복 시정(司僕寺正)을 지내고 좌승지에 증직된 김찬(金讚)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효자 김성발(金聲發)·김성옥(金聲玉)의 형이다. 김성대(金聲大)[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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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성대의 묘와 묘비. 김성대(金聲大)[1622~1695]의 자는 이원(而遠)이고, 호는 율강(栗崗)·촌로(村老)이며,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고려 시대에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김긍필(金肯弼)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좌승지(左承旨)로 증직된 김찬(金讚)이고, 어머니는 김정삼(金鼎三)의 딸로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부인은 부사(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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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해주 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인 안정 나씨(安定羅氏)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이 형이고, 성리학과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김창흡(金昌翕)이 동생이다. 김창협(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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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해주 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인 안정 나씨(安定羅氏)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지돈령부사 등을 지낸 김창협(金昌協)이 형이다. 김창흡(金昌翕)[165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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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창흡의 묘와 묘비.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자는 자익(子益)이고, 호는 삼연(三淵)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이고, 동중추(同中樞) 김광찬(金光燦)의 손자이며,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안정 나씨(安定 羅氏)로 해주 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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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지역에서 김창흡(金昌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창흡 이야기」는 김창흡[1653~1722]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며 지냈다는 인물담이다.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금수정 주변과 일동면에 안동 김씨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 집안의 인물로는 흔히 김수항(金壽恒)[1629~1689,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의 세 아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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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의 저술.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고, 나성두(羅星斗)의 외손이며,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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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의 문집.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고, 나성두(羅星斗)의 외손이며,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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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창협과 아우 김창흡이 쓴 만사(挽詞)와 별장(別章)을 뽑아 모은 책.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이다.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고, 나성두(羅星斗)의 외손이며,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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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김창협이 금강산을 유람하기 위해 포천을 지나고 지은 기행문. 「동유기(東遊記)」는 조선 후기의 문신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길을 떠난 후 포천을 지나고 나서 여행의 감회를 적은 글이다. 「동유기」는 김창협의 문집 『농암집(農巖集)』 권(卷) 23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금강산(金剛山)의 명성을 듣고 늘 한번 유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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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9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수항의 문집.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고,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아들이다. 1646년(인조 24) 진사시에, 1651년(효종 2) 알성 문과에 장원하였고, 병조 좌랑·경기도사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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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 간행된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창흡의 시문집. 김창흡(金昌翕)[1653~1722]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이다.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자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이다.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친명(親命)으로 응시하여 1673년(현종 14) 진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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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양반 사회였다. 따라서 양반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양반을 사대부(士大夫)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士)와 대부(大夫)를 통칭한 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소설 「양반전」에서 “글을 읽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서 대부(大夫)가 된다.”라고 하였다. ‘선비’란 벼슬하지 않고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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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년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창협이 5명의 중국학자들에 관하여 정리 편집한 책.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 나성두(羅星斗)의 외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에 합격하고, 16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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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창협이 『주자 대전』의 의문점을 우암 송시열과 강토(講討)하고 그 내용을 정리한 책. 김창협(金昌協)[1651~1708]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삼주(三洲),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아들이며,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에 합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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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송상기가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途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 옥오재(玉吾齋) 송상기(宋相琦)[1657~1723]가 포천 가는 도중에 지은 한시이다. 송상기는 자를 옥여(玉汝), 호는 옥오재라 했다. 본관은 은진(恩津)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송시열(宋時烈)[1607~1689],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문인으로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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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덕수가 포천으로 가는 길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도중(抱川道中)」은 조선 후기의 문신 서당(西堂) 이덕수(李德壽)[1673~1744]가 포천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한시이다. 이덕수는 자를 인로(仁老), 호는 서당, 벽계(蘗溪)라 했다. 본관은 전의(全義)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으로, 박세당(朴世堂)[1629~1703]의 문인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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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 김창업이 포천을 향해 가는 도중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향포천도중(向抱川道中)」은 1702년(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 포천을 향하여 가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향포천도중」은 김창업의 문집 『노가재집(老稼齋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차로평생주기순(此路平生走幾廵)[이 길을 평생 동안 몇 번이나 다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