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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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할아버지는 권종(權悰)이고 아버지는 권담(權紞)[1579~1654]이다. 큰아버지권진(權縉)[1572~1624]의 양자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심일취(沈日就)의 딸인 풍산 심씨(豊山沈氏)이다. 권수(權修)[1618~1684]는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합격했고, 1665년(현종 6) 정시 문과 을과 1인으로 급제하였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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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희안(希顔). 아버지는 중림 찰방을 지낸 권지(權軹)이고, 어머니는 감역(監役) 박언(朴堰)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임효종(林孝宗)의 딸인 진천 임씨(鎭川林氏)로 슬하에 권현(權睍), 권춘(權春), 권경(權暻), 권준(權晙) 네 아들을 두었다. 권율(權慄)[1537~1599]이 사촌형이다. 권종(權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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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종의 묘와 묘갈. 권종(權悰)[1554~1592]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 군수로 있으면서, 왜적을 만나 접전하던 끝에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이때 권종은 왕이 계신 북쪽을 향해 크게 절하고 “내 조국은, 내 조국은……” 하고 부르짖으며 죽어 갔다고 한다. 후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선조는 탄식과 애도를 표하였고, 충신 정려(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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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포천 출신의 금산 군수 권종(權悰)에게 시호를 추증한 문서. 「권종 시호 교지(權悰諡號敎旨)」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금산 군수(錦山郡守)로서 금산을 방어하다가 왜병에게 죽임을 당한 권종[?~1592]의 공덕을 칭송하여 1832년에 ‘충민(忠愍)’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려 후손에게 주었다는 문서이다. 시호란 사람의 업적이나 학문 등을 고려하여 일정한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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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권종(權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정려. 권종[1554~1592]은 포천 출신의 문신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에 금산 군수로 부임하여 광주 목사로 있던 사촌 동생 권율과 국난에 대처할 것을 기약하였다. 권종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전주에 도착하였으나, 당시 전라도 관찰사가 그의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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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운경(雲卿), 호는 수은(睡隱). 찬성사 권근(權近)의 8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금산 군수 권종(權悰)이다. 아버지는 공릉 참봉을 역임한 권현(權晛)이며, 어머니는 의금부도사 이희삼(李希參)의 딸이다. 권진(權縉)[1572~1624]은 1597년(선조 30)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과 수찬, 형조 정랑, 장령,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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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양반 사회였다. 따라서 양반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양반을 사대부(士大夫)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士)와 대부(大夫)를 통칭한 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소설 「양반전」에서 “글을 읽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서 대부(大夫)가 된다.”라고 하였다. ‘선비’란 벼슬하지 않고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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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포천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개관. 포천 지역은 한탄강을 따라 서북 지역 또는 한강 하류 지역과 연결되고, 추가령 지구대를 따라 동북쪽으로 주민의 이동로가 펼쳐져 있다. 사방으로 교차적인 위치에 있어서 문화적인 교류가 많았다는 것이 선사 시대의 문화상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포천의 선사 문화는 한강의 상류 지역과 서해의 도서 지역, 동해안의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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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임진왜란 당시 포천 지역은 왜군이 북으로 진격하는 경로에 있어 많은 피해를 받았다. 그 결과로 한때 포천은 영평에 소속되기도 하였다. 한편 임진왜란 기간 중 포천 지역과 관련된 인물인 이항복(李恒福), 권종(權悰), 이성길(李成吉) 등은 전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일을 하였다. 1592년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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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한양(漢陽). 한천 부원군(漢川府院君) 정온(鄭溫)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정제이다. 조득남(趙得男)[1594~1636]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20리[8㎞] 떨어진 설악산 아래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성리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으며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