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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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의 교육 관련 기관, 시설, 시책 및 역사. 경기도 포천지역의 첫 교육 시설은 1173년(명종 3)에 설립된 포천 향교[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16호]와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창건된 영평 향교였다. 향교는 지방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교육 기관으로 고려 인종[1109~1146] 당시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당시 포천 향교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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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던 제단과 사당. 단묘(壇廟)는 조선 시대 경기도 포천 지역에 위치한 각종 제단과 사당을 지칭한다. 포천 지역의 단묘로는 관에서 설치한 사직단(社稷壇), 향교에 있는 문묘(文廟), 기우제단, 여단(厲壇), 성황사(城隍祠)를 비롯해 민간에서 세운 화산 서원이나 용연 서원, 충목단(忠穆壇) 등이 있다. 단묘는 마을의 유지 및 해당 지역민들의 유교적 교화, 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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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이덕형이 영평을 지나면서 감회를 적은 칠언 율시의 한시. 「모과영평(暮過永平)」은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과 기발한 장난과 우정이 얽힌 많은 일화를 남긴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이 해가 질 무렵에 영평 지역을 지나면서 읊은 한시이다. 「모과영평」은 이덕형의 문집 『한음문고(漢陰文稿)』 권(卷) 2에 실려 있다. 관내산천설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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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포천 문학은 포천 지역의 문인이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을 말한다. 또한 경기도 포천 지역에 연고가 있는 문인이나 문학 단체를 포천 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포천은 옛날부터 학문 대도를 걷는 선비와 시인 묵객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문맥(文脈)을 이어받아 오늘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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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서 음악, 미술, 건축, 연극, 영화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문화·예술에는 포천 지역에서 행해지고, 포천 출신의 인물에 의해서 이루어진 다양한 문화 예술 활동 전반이 포함된다. 그 실례로 건축, 무용, 사진, 연극, 영화, 음악, 미술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화 예술 활동의 결과물인 문화적 전승물 일체를 유형 문화재와 무형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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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신북면은 포천시에 소속된 11개 면 가운데 하나로 법정리 12개[가채리·신평리·심곡리·고일리·삼성당리·삼정리·기지리·만세교리·계류리·갈월리·덕둔리·금동리]와 행정리 30개를 관할하고 있다. 면 소재지는 기지리이다. 내북면과 외북면의 북(北)자를 따서 새로 만든 면이라고 하여 신북면이 되었다고 한다. 1912년 행정 구역은 포천군 내북면과 외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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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평리는 신북면이 관할하는 12개 법정리 중 하나이다. 원래 명칭인 새벌을 한자 표기하여 신평(新坪)이라 하였는데, 인평 대군 묘가 있다 하여 궁말 또는 궁동이라고도 하였다. 1912년 행정 구역은 포천군 내북면 신평리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내북면과 외북면을 합쳐 만든 신북면 신평리가 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포천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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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양반 사회였다. 따라서 양반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양반을 사대부(士大夫)라고도 하는데, 이는 사(士)와 대부(大夫)를 통칭한 말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은 소설 「양반전」에서 “글을 읽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며, 벼슬길에 나아가서 대부(大夫)가 된다.”라고 하였다. ‘선비’란 벼슬하지 않고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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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전해 오는 오성 부원군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에 얽힌 설화와 그 속에 담긴 기지와 해학. ‘오성과 한음 이야기’는 포천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인 동시에,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 이야기로 풍부한 내용과 다양한 현장 증거물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전설은 전승 집단이 진실하다고 믿고,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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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경이 꿈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沃川夜夢 到抱川臥龍潭)」[옥천에서 밤에 꿈을 꿨는데 포천의 와룡담에 도달했네]은 조선 후기 문신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몸은 옥천에 있지만 꿈속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臥龍潭)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와룡담이 현재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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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조경(趙絅)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 조경[1586~1669]은 본관이 한양(漢陽), 호가 용주(龍洲)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난정(亂政)으로 대과를 단념, 거창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고창 현감, 경상 도사에 계속하여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다가 이듬해 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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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활동해오고 있는 공자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 또는 종교. 유교는 일찍부터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는 위만 조선과 한사군(漢四郡) 설치 전후, 즉 기원전 2~3세기경에 한자의 유입과 더불어 유교 경전이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유교는 중국 한대(漢代)에 국교로 성립된 경학(經學) 중심의 유교였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삼국 및 통일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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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쌍송(雙松)·포옹산인(抱雍散人).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 이수충(李守忠)이며, 할아버지는 증 좌찬성 이진경(李振慶)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이민성(李民聖)이다. 어머니는 현량 유예선(柳禮善)의 딸이고, 부인은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의 딸이다. 이덕형(李德馨)[1561~1613]은 지금의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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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포천 지역에는 특별히 전통 마을로 지정하거나 조성하여 운영하는 곳은 없다. 여기에서는 포천 향교(抱川鄕校)와 성균관 유도회 포천 지부, 화산 서원(花山書院), 용연 서원(龍淵書院), 옥병 서원(玉屛書院) 등과 기타 민간에서 실시하는 전통 체험 관련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선조들의 전통 삶을 체험할 수 있는 학습에 대해 서술하기로 한다. 1. 명륜 대학 ‘명륜 대학’은 포천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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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 조경(趙絅)[1586~1669]은 포천 지역 한양 조씨(漢陽趙氏) 집성촌을 구체화한 인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복구하지 못한 사당을 선영 아래에 건립하여 세거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또한 그 옆으로 관거재(寬居齋)란 가숙(家塾)을 지어 자제를 교육하는 장소로 삼았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일장(日章), 호는 용주(龍洲), 주봉(柱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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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인들의 조직적 활동. 경기도 포천시는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의정부시 등과 인접하여 외지인 및 외래문화의 유입과 수용이 활발한 곳이다. 따라서 지역 주민보다 주로 다른 지역 사람이 종교 단체를 이용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아직도 마을마다 산신제를 지내는 등 전통적인 문화나 관습의 영향력이 강한 편이다. 1. 소흘읍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에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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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고일리에 있는 골프장. 포천 아도니스 컨트리클럽은 1999년 4월 10일 골프 인구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회원제 골프장으로 개장하였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코스에 자연 지형과 산림을 그대로 보존, 설계하였다. 코스 규모는 36홀이다. 그중 27홀은 회원제로, 9홀은 퍼블릭 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부대시설로는 클럽 하우스, 그늘 집,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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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년 조경이 포천 기곡의 봉화가 타오르는 것을 보고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기곡봉화(抱川機谷烽火)」는 1657년(효종 8) 71세 때 포천에 은거한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포천 기곡에서 봉화가 밤마다 타오르는 것을 보고 느낀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조경은 자(字)가 일장(日章)이고, 호(號)는 용주, 주봉(柱峯), 간옹(鬝翁) 등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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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수곤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포천시의 세거 성씨. 한양 조씨(漢陽趙氏)의 시조는 조지수(趙之壽)이다. 조지수는 덕원부(德原府) 용진현(龍津縣)에서 세거한 사족의 후손으로 고려 때에 명종·신종·희종·강종 등 4왕조에 걸쳐 벼슬을 하였으며, 조순대부(朝順大夫)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이 개국하자 후손들이 한성(漢城)[지금 서울]으로 옮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