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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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필을 시조로 하고 장하를 중시조로 하며 장효충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결성장씨는 장효충이 16세기 초에 사화를 피해 처향인 전의현[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노곡리]으로 입향하였다. 후손들은 전의면, 연동면, 연서면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결성장씨의 시조 태사공 장정필(張貞弼)은 태조 왕건을 도왔던 인물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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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세종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 세종특별자치시의 전신인 충청남도 연기군을 중심으로 세종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을 각각 조선시대부터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이후, 대학교육, 사회교육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은 관학인 향교, 사립교육기관인 서원과 서당이 있다. 세종[구 연기] 지역에는 연기현 연기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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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노송리는 마을 주변에 오래된 소나무가 많이 분포하여 생겨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는 노송(老松)이 많아 놀뫼로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노산(老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노송리에는 마근터, 노리미, 강당, 움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마근터마을은 노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앞에 못을 파고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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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봉서재(鳳棲齋)는 1600년대 말 장원주(張元冑)[1634~1700]가 만년에 창건하여 자제와 인근 마을 학동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장원주는 연서면 고복리 결성장씨(結城張氏) 연기파(燕岐派) 입향조이다. 자는 자장(子將), 호는 봉옹(鳳翁)이다. 또한 장원주는 결성장씨 옛 연기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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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 역사상 성씨의 유래를 보면 이미 백제시대에 8대 성(姓)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세종특별자치시의 성씨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지리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리지는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는 객관적인 기록이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성씨 기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연기현과 전의현 외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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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송용리는 마을 주변의 소나무[松]와 용(龍)에 대한 신앙에서 발생한 명칭이다. 마을 앞 하천의 많은 늪과 연못에서 이무기가 승천하였다고 전해져 용에 대한 믿음에 있다. 뒷산에는 많은 노송(老松)이 분포한다. 송용리에는 송산, 도룡골, 나븐, 꿩말 등 자연 마을이 있다. 송산(松山)마을은 송용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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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장응헌의 처 언양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언양김씨 정려는 결성장씨 장응헌(張應軒)[1609~?]의 처 언양김씨(彦陽金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언양김씨는 첨정(僉正) 김징(金澄)의 딸로, 16세에 장응헌에게 출가하여 시아버지와 남편을 정성껏 섬겼다. 1636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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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었던 전오복의 처 창녕성씨와 전오륜의 처 결성장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열녀 창녕성씨 결성장씨 정려는 창녕성씨와 결성장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창녕성씨와 결성장씨는 각각 옥천전씨 전오복(全五福)[1714~1735]과 전오륜(全五倫)[1717~1753] 형제의 처로, 동서지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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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장이상의 처 한양조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열녀 한양조씨 정려는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처 한양조씨(漢陽趙氏)[1812~1884]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한양조씨는 조우규(趙禹圭)의 딸로, 결성장씨 가문에 출가하였다. 남편 장이상은 판윤 장전(張詮)의 10세손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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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에 속한 법정리. 예(禮)를 기르고[養] 배우는 곳이라 하여 예양리(禮養里)가 되었다. 예부터 충신(忠臣)이 많이 배출되었고, 오부자(五父子)가 충신인 박천붕(朴天鵬)과 아들들의 충신문(忠臣門)이 있다. 예양리에는 양골, 미꾸지, 산속골, 강촌, 물미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양곡(養谷)마을은 덕을 기르는 예양리의 중심 마을로, 인동·양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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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를 시조로 하고 전세승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세종특별자치시의 옥천전씨는 1600년대 후반에 전세승(全世承)이 입향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세거지인 남면 방축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어진동·도담동 일대]에 후손들의 유적들이 있다. 옥천전씨의 도시조는 백제 십제공신 전섭(全聶)이다. 전섭의 27세손 전유(全侑)가 고려 충숙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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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육영재(毓英齋)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으로, ‘송동서숙(松東書塾)’, ‘송동숙(松洞塾)’, ‘송남서당(松男書堂)’ 등으로도 불린다. 결성장씨 문중의 전언에 의하면 장훈(張訓)이 그의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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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송용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육영재(毓英齋)는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결성장씨(結城張氏) 문중에서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당으로, ‘송동서숙(松東書塾)’, ‘송동숙(松洞塾)’, ‘송남서당(松男書堂)’ 등으로도 불린다. 결성장씨 문중의 전언에 의하면 장훈(張訓)이 그의 세 동생과 함께 송곡리에 정착한 후 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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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결성장씨 연기파의 입향조이자 학자. 장원주(張元胄)[1634~1700]의 자는 자장(子將), 호는 봉옹(鳳翁)이다. 결성장씨 연기파 연서면 고복리의 입향조이다. 고복리에는 창녕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였으나 장원주 이후 결성장씨가 세거하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향촌(鄕村)[시골 마을]에 은거(隱居)[세상을 피하여 숨어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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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열녀. 언양김씨는 장응헌(張應軒)의 부인으로, 남편은 결성장씨이다. 언양김씨는 병자호란에 적병에게 끌려가는 것에 저항하여 은장도로 자결한 열녀이다. 일설에 의하면 적병에게 쫓기다가 스스로 강에 뛰어들어 익사한 열녀라고도 한다. 장응헌 처 언양김씨의 아버지는 첨정(僉正) 김징(金澄)이다. 『여지도서』, 『충청남도읍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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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장이상(張彛相)[1816~1884]의 부인 한양조씨는 장이상에게 출가하여 시조모를 극진히 봉양하였고, 시어머니의 두 차례 병환에 모두 약을 구해 드려 병환을 낫게 하였다. 남편이 노환으로 숨지자 식음을 전폐하고 6일 만에 세상을 떠난 효부이자 열녀이다. 장이상 처 한양조씨의 아버지는 조우규(趙禹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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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 결성장씨 연기파의 입향조이자 학자. 장훈(張訓)[1568~1609]의 호는 노초(老樵)이며, 통훈대부헌릉직장(通訓大夫獻陵直長)을 지냈다. 결성장씨 연기파의 입향조이다. 장훈이 어떠한 이유로 송용리 일대로 이거(移居)[본래 살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거처를 옮김]하였는지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장훈이 이거한 후 결성장씨(結城張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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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동서지간 열녀. 창녕성씨(昌寧成氏)와 결성장씨(結城張氏)는 옥천전씨 집안으로 출가한 동서지간으로, 남편과의 의와 지조를 지키기 위하여 자결한 이열부이다. 창녕성씨[?~1735]는 전오복(全五福)과 혼인하였다. 남편 전오복이 1735년(영조 11)에 죽자 뒤를 따라 자결(自決)[의분을 참지 못하거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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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암리에 있는 이면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에 세운 정려. 효자 이면주 정려는 전주이씨(全州李氏) 이면주(李勉疇)[1818~1871]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05년(광무 8)에 명정을 받아 1906년(광무 9)에 건립되었다. 이면주는 이무형(李茂亨)[1793~1861]과 결성장씨(結城張氏)[1789~1832]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