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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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사성(思誠), 호는 탄옹(炭翁). 아버지는 좌랑 권득기(權得己)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도정(都正) 이첨(李瞻)의 딸이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아홉 살 때 시를 지었으며, 15세에 이기지설과 사칠지변(四七之辨)에 정통하였다. 1636년(인조 14) 대군사부에 임명된 것을 비롯하여, 선릉참봉과 세자시강원의 벼슬이 내려졌으나 나가지 않았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한 후 공조좌랑으로 벼슬길에 나갔으며, 경상도사 등을 역임하고, 그 뒤 집의, 진선(進善) 등을 거쳐 1658년(효종 9) 승지에 임명되었다. 이어 찬선(贊善)에 오르고, 1659년 현종이 즉위한 뒤에 한성부우윤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예송문제가 일어나자 서인의 양송과 대립하는 윤선도 지지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어 낙향하던 중 광주(廣州)의 선영에 머물러 살았다. 그 후 다시 공주[지금의 대전]으로 내려갔고, 1668년 송준길(宋浚吉)의 주청으로 한성부 좌윤(左尹)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학문과 사상]
송시열(宋時烈)과 같은 기호학파로서 예론에 밝았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탄옹집』 7책이 있다.
[묘소]
묘소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 좌참찬에 추증되었으며, 예관(禮官)을 보내 치제케 하였다. 대전의 도산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