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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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遁村李集墓域 |
이칭/별칭 | 이집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7-1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주홍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8년 5월 26일 - 둔촌이집묘역 경기도 기념물 제219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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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둔촌이집묘역 경기도 기념물 변경 지정 |
성격 | 능묘 |
양식 | 원형 합장묘 |
관련인물 | 이집 |
높이 | 1.8m |
지름 | 6.6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 7-1 |
소유자 | 광주이씨 대종회 |
문화재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이집(李集)의 묘역.
[개설]
이집[1327~1387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성노(成老), 호연(浩然), 호는 묵암자(墨岩子), 둔촌(遁村)이다. 이당(李唐)의 아들로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했다. 충목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해박한 지식과 고상한 지절(志節)로 이름이 높았다. 1368년(공민왕 17) 신돈의 비행을 비판하고 장차 화가 미칠 것을 예견해 아버지를 업고 도망하여 영천(永川)에서 은거하였다.
1371년(공민왕 20) 신돈이 역모로 주살 된 후 옛집인 송경(松京)의 수양산(龍首山) 아래 현화리(玄化里)에 돌아왔다. 이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령현(川寧縣)에서 독서와 농경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시편신립(詩篇新粒)에 대한 질문서를 보내 당시의 문사(文士)들을 경탄케 하였다. 이집은 1669년(현종 10)에 건립한 광주(강동구 암사동)의 구암서원(龜岩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유고로 『둔촌유고(遁村遺稿)』가 있다.
[위치]
둔촌이집묘역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산 7-1의 선영에 서향(西向)하여 있다.
[형태]
둔촌이집묘역은 부인 정화택주 영주황씨와의 원형 합장묘이다. 용미와 활개를 갖춘 봉분의 높이는 1.8m이고 지름은 6.6m이다. 석물로는 봉분 중앙에 혼유석, 상돌, 사각 향로석, 장명등이 있고, 상돌 좌우에 망주석, 문인석 한 쌍 외에 차양석 네 개와 2단의 계체석 및 봉분 좌우측에 신구 묘표가 각 1기씩 서향하고 있다. 이중 봉분 중앙에 위치하는 장명등은 화창공과 사모 지붕에 연봉 장식이 있다.
망주석은 사각으로 높이 150㎝ 내의 소형이다. 문인석은 복두(幞頭)로 홀(笏)을 마주 잡은 두 손은 관복 속에 넣고 있으며, 관복은 길게 발목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또 근래에 마련한 두 단의 계체석은 상하단 거리가 380㎝이며, 하단 계체석에는 3단의 계단 시설을 마련하였다. 이집의 묘표는 봉분 왼쪽에 위치하여 백색 화강암제의 비좌와 비신 월두형이다.
[금석문]
비신의 비문은 전후(前後) 두 면에 있으며, 앞면에 세로 두 줄로 “遁村先生李公諱集之墓 貞和宅主郢州黃氏祔葬(둔촌선생이공휘집지묘 정화택주영주황씨부장)”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뒷면의 비문은 표면이 떨어져 나가고 마모로 인해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비문은 11대손 이휴징(李休徵)이 지었다. 비의 규모는 총 높이 168cm로 비좌는 높이 26㎝, 너비 97㎝, 두께 62㎝, 비신은 높이 142㎝, 너비 위 60.5㎝, 아래 53㎝, 두께 19㎝이다.
[현황]
둔촌이집묘역은 1993년 8월 2일 성남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5월 26일 경기도 기념물 제219호로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