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김쾌손이 작성한 민원 관련 문서. 발괄[白活]은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관청에 올리는 청원서나 진정서를 이른다. 발괄은 순우리말의 이두식(吏讀式) 표기법이다. 1876년(고종 13년) 광주군 하도 월곡면 하초평[지금의 의왕시 초평동 일대]에 사는 김쾌손(金快孫)은 본동(本洞)에 10두락지(斗落只)[마지기]가 있는 곳을 전래(...
-
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884년(고종 21) 서주서(徐注書)댁 노비 인관[奴仁寬]이 김판종(金判宗)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인천부 신고개면 장언(獐堰)[지금의 시흥시 은행동 일대]에 있는 전답을 전문(錢文) 816냥(兩)을...
-
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하고 있는 김정억이 작성한 민원 관계 문서. 발괄[白活]은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관청에 올리는 청원서나 진정서를 뜻한다. 발괄은 순우리말의 이두식(吏讀式) 표기법이다. 조선 후기 안산군 초현면 고곡리에 거주하는 김정억(金正億)의 당질 김판종(金判宗) 가족이 모두 괴질로 사망한 후, 초현면 고자리에 거주하는 백심술(白心術)이 김판종에게...
-
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888년(고종 25) 김판종(金判宗)의 처 김소사(金召史)[‘召史’는 조선시대 양반가 여인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널리 쓰인 것으로 한자음은 ‘소사’이지만 ‘조이’로 읽음]가 주노(朱奴) 삼개복(三介福)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
-
경기도 시흥시 신안 주씨 일가가 소장한 권리 매매 문서. 명문(明文)은 각종 매매 문기(文記)로서 무형·유형의 자산에 관한 권리 양도서를 이른다. 1901년(광무 5) 최경식(崔景植)이 노비 개복(介福)에게 전답의 소유권을 양도한 토지 매매 명문으로 1901년 시흥현 남면 노온사리[지금의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에 있는 전답을 전문(錢文) 2500냥(兩)을 받고 매매하였다...
-
경기도 시흥 지역인 조선시대 안산군 관청에 하달된 문서. 감결(甘結)은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으로 내리는 문서이며 주로 지시, 명령으로 되어 있다. 『감결 안산(甘結安山)』의 발신자는 경기감영이다. 조선 후기 고종은 통리군국사무아문을 재정비하고 그 예하 기관으로 농상사(農商司)를 두어, 농업 발전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였다. 그래서 1883년(고종 2...
-
경기도 시흥시에 해당하는 지역의 세금 징수 대상을 새롭게 정리하여 1894년에 편찬한 자료. 『경기 각 읍 신정사례(京畿各邑新定事例)』는 1894년(고종 31) 경기도 33개 읍과 3개 진(鎭)의 재정 운영 지침을 모아 만든 책이다. 갑오개혁기에 어윤중(魚允中)이 주도하여 1894년에 작성하였으며, 개항기 국가 재무를 총괄하였던 탁지아문(度支衙門)에서 편찬한...
-
시흥시가 포함되는 경기도 지역의 읍지와 사례를 모아 1895년(고종 32)에 편찬한 경기도 지리지. 『기전 읍지』는 1895년(고종 32) 경기도에 소재한 11개 고을의 읍지를 합해 엮은 경기도 도지(京畿道道誌)이다. 당시 경기도 고을 38개 가운데 약 1/3에 해당하는 읍지만 실려 있으며, 각 읍지의 형식은 지방별로 서로 다르다. ‘기(畿)’란 중국에서 도성...
-
1899년 편찬된 경기도 시흥시가 포함된 안산군의 읍지. 『안산군 읍지(安山郡邑誌)』는 안산군이 1899년(고종 36) 편찬하여 중앙 정부에 올린 읍지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는 이 책과 다른 필사본인 『안산군 읍지』가 소장되어 있다. 『안산군 읍지』는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중앙 정부에서 전국적인 읍지 편찬 사업을 했을 때 안산군에서 올린 읍지이다....
-
1900년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양안 작성을 위해 진행되었던 근대적 토지 조사 사업.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명에 의하여 1899년부터 1901년에 걸쳐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실제 토지 측량 작업이 진행되었고, 양전(量田)에 토대한 양안(量案)[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전지를 측량하여 만든 토지대장]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경기도 시흥 지역은 당시 안산군과 인천부에 속해...
-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학교 설립과 근대 서양 문물 교육 운동. 국권 상실의 시기인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교육 계몽 운동의 영향으로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에서도 여러 학교가 설립되었다. 1906년 정윤영(鄭允永)이 세운 학교를 필두로 1908년 창흥측량학교(昌興測量學校)가 설립되었으며, 흥인의숙(興仁義塾)과 진명의숙...
-
1895년부터 1988년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영등포구·관악구·동작구·구로구와 경기도 광명시·안양시 일부를 관할하였던 경기도의 행정구역. 시흥군(始興郡)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군청을 두었다.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중심으로 영등포구[양화동·여의도동 제외], 관악구[남현동 제외], 동작구 일부[신대방동·상도동], 구로구 동부[안양천 동쪽]와 경기도 광명시...
-
1907년부터 국권 회복을 위해 경기도 시흥 지역에서 전개한 항일 무장 투쟁.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해산을 계기로 시흥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서부 지역의 의병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의병들은 일제의 탄압 기구인 순사 주재소를 습격하고, 일진회원(一進會員)을 위시한 친일파를 처단하였으며, 부자들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1909년까지 소규모 유격전 형태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