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마을
-
1970년대까지 한적한 교외 지역이었던 시흥은 1977년 서울의 철거민들이 복음자리마을을 조성하면서 철거 이주민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는 한편 정부의 도시 빈민 주거 정책 부재를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복음자리마을 옆에 들어서기 시작한 신천동 83번지 무허가 판자촌은 1993년 화재 사건을 계기로 도시 개발에 따르는 철거 투쟁이라는 그림자를 분명하게 드...
-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 있는 자연 마을. 서울 목동 철거민들이 정부의 보상금을 받아 1986년 입주한 연립주택 마을로, 주위의 복음자리마을·한독마을과 더불어 하나의 공동체로 생활하였다. 시흥시 은행동에 철거 이주민들이 새롭게 집단 주택을 건설하면서 서로 친목을 도모하고 화합하자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다. 1980년대 중반 서울시 목동 철거가 이루...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마을 공동체를 위한 사회복지 기관. 1976년 서울시 도시 개발에서 밀려난 양평동 주민 170세대가 시흥으로 이주를 시작하면서 청계천, 목동등의 철거민들도 보금자리를 찾아 시흥 지역으로 밀려 들어왔다. '복음자리 공동체'는 철거민들의 이주와 정착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 복음자리 공동체를 기반으로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는 시흥 지역에서...
-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를 중심으로 진행된 철거 이주민의 지역 복지 주민 운동. 복음자리 빈민 운동은 도시 철거민의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없었던 1970~1980년대 경기도 시흥 지역에 집단 이주를 성사시킨 자생적 주민 운동이다. 제정구(諸廷坵)와 정일우(鄭日祐)[John Vincent Daly] 신부가 주민들과 함께 경제적 자립,...
-
시흥군 소래면 신천리[지금의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마을은 1977년부터 서울의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이 집단 이주해 형성되었다. 도시 빈민으로 살면서 가난에 찌들어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했던 복음자리마을 주민들은 제정구(諸廷坵)와 정일우(鄭日祐)[John Vincent Daly] 신부 등 헌신적으로 마을 공동체 운동을 펼친 관계자들과 함께 연대하여 자립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
경기도 시흥시에서 식수나 용수를 얻기 위해 지하를 파서 만든 설비. 2007년에 발간된 『시흥시사』에 의하면, 우물과 관련된 마을 이름이나 우물 터 명칭이 여럿 등장한다. 배우물, 생금우물 약수터, 찬우물, 산우물, 높은우물, 고주물, 오자산사지(五子山寺址)의 우물터, 운흥산사지(雲興山寺址)의 우물터, 새우개 당제 우물터 등이 그것이다. 2018년 현재 시흥시에는 황고개...
-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은행동은 경기도 시흥시 동북부에 있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법정동인 안현동을 관할한다. 은행동의 명칭은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던 커다란 은행나무가 안산 기슭에 있어서 마을을 ‘은행리'라 불렀던 데에서 유래되었다. 은행동은 조선시대 인천부 신현면 삼리였다가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
-
경기도 시흥시의 주민운동, 문화 운동, 복지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공간. 복음자리마을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 등의 판자촌 철거민 170가구가 집단 이주해 자리 잡은 터전이었고, 한독마을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등 8개 지역 철거민 164가구가 옮겨 온 곳이었다. 목화마을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철거민 105가구가 이주한 마을이었다. 마을이 3개로 확...
-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에 있던 자연 마을. 한독마을은 도시 빈민 운동가 제정구(諸廷坵)와 미국인 정일우 신부[John Vincent Daly]가 독일의 구호 단체인 미제레올(Misereor)재단의 후원을 받아 신천동 복음자리마을에 이어 시흥시 은행동 찬우물 북쪽에 조성한 마을로 복음자리마을, 1986년 조성한 목화연립 주민이 모두 한 공동체로 인식하며 생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