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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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村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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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38㎢ |
가구수 | 89가구 |
인구[남/여] | 154명[남 81명/여 73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삼촌리(三村里)에는 도치(道致) 마을, 소촌(蘇村) 마을, 송두(松頭) 마을, 가덕(加德)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도치 마을은 500여 년 전 설산 옆으로 매봉이 있고 꿩이 엎드려 있는 곳에 언양 김씨(彦陽金氏)인 김상백(金相伯)이 처음 마을 터를 잡아 복치 마을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도치라고 개칭하였다. 소촌 마을은 고려 때 소씨가 마을 터를 잡고 시랑 벼슬을 하게 되어 소시랑골이라고 부르다가 행정 구역 개편으로 소촌이라 부르고 있다. 가덕 마을은 경주 최씨(慶州崔氏)가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었으며, 마을 뒷산에 봉우리가 3개 있다 하여 삼촌봉으로 부르다가 1935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가덕이라 부르게 되었다. 송두 마을은 조선 고종(高宗) 때 경주 최씨가 처음으로 정착하였으며 마을이 솔방울같이 생겼다고 하여 솔머리라 부르다가 행정 구역 개편 때 송두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삼촌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도치 마을, 소촌 마을, 송두 마을, 가덕 마을을 병합하여 삼촌리라 하였다. 가덕 마을의 옛 지명이 삼봉촌이었으므로 삼봉촌의 ‘삼’ 자와 소촌 마을의 ‘촌’ 자를 합하여 삼촌리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삼촌리는 동쪽으로 금곡리, 서쪽으로 금과면 대성리, 남쪽으로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설옥리, 북쪽으로 유정리와 접경을 이룬다. 설산[522.6m]을 기준으로 북동쪽의 사천을 향해 지류들이 흘러가면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설산에서부터 동쪽과 북쪽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면서 그 안쪽의 분수계에서 유입되는 지류들이 모여 유정리와의 접경을 이루는 사천을 향해 집중적으로 흘러간다. 이에 따라 북동쪽이 열린 삼태기 모양의 넓은 평야 지대를 갖고 있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 평야 지대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지점을 사천이 곡류하면서 북쪽에 위치한 유정리와의 사이에 자연적인 경계를 이룬다.
[현황]
2021년 12월 31일 현재 삼촌리의 면적은 4.38㎢이며, 인구는 89가구, 154명으로 남자가 81명, 여자가 73명이다. 풍산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비교적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져 있으며, 도치제와 소촌제, 가덕 소류지 등이 소하천들의 상류에 조성되어 논농사가 주를 이룬다. 유정리와의 사이에 위치한 지방도 730호선인 금풍로가 유일한 진입로로 이용된다. 이에 따라 금풍로와 연결되는 도치교, 함촌교, 독보교 등이 사천을 가로질러 건설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