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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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德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서영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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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98㎢ |
가구수 | 64가구 |
인구[남/여] | 104명[남 51명/여 53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창덕리(昌德里)는 조선 후기 정유재란으로 마을이 폐허가 되었을 때 임진왜란 당시 창의 대장의 아들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오원(金五元)이 전라남도 담양에서 가족을 잃고 피난을 와 터를 잡고 가정을 이루어 두 아들을 대문호로 성장시켰다 한다. 1835년경 마을 입구 동각을 수리할 때 벽장 속에서 「효례동 실기」가 발견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김오원의 아들 김진호의 호는 효제, 김진익의 호는 예제였다. 이들의 효성이 지극하고 예의를 숭상하는 그 행위가 투철하였다. 이를 마을에서 칭송하며 형제의 일상 행위와 아호의 뜻이 같다 하여 형의 호에서 ‘효’ 자를 취하고 동생의 호에서 ‘예’ 자를 취하여 살고 있는 마을을 효례동이라고 부를 것을 고을 관아와 향당에 추천하여 상을 내리고 효례동이라 부르다가 1914년 다시 덕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창덕리는 선사 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시대에는 순창군 18개 방 중 덕진방의 소재지로 덕진이라는 큰 마을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동고 마을, 덕진 마을, 평지 마을을 창덕리(昌德里)로 통합하였다.
[자연 환경]
창덕리는 팔덕면의 서남단으로 광덕산에서 내려온 덕진봉이 담양과 경계를 이룬다. 덕진봉에서 발원한 덕진천은 창덕, 덕천 들판을 지나 삼지내로 합류한다. 광덕산 남쪽으로 내려오는 맥에 마실재가 있다. 여기서 남쪽으로 솟은 산이 덕진봉이고, 남쪽으로 뻗은 맥이 웃모실이다. 광덕산을 현무로 하고 아미산을 조산으로 한 터가 덕진 마을이다.
[현황]
2021년 12월 31일 현재 창덕리의 면적은 2.98㎢이고, 인구는 64가구, 104명으로 남자가 51명, 여자가 53명이다. 창덕리의 주요 농사는 벼농사이고, 특화된 특산물은 없고 고추를 비롯한 일반적인 밭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 회관 앞에 동고 선생이 목욕하며 즐겼다는 옹달샘이 공동 우물로 잘 관리되고 있다.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창덕리 남근석이 있다. 1994년 창덕 지구 경지 정리를 완료하였고, 1996년 장안선이 포장되면서 교통이 편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