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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진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82
한자 羅州陳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850년 - 나주 진씨 입향조 진석한 순창 입향
세거|집성지 나주 진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 지도보기
성씨시조 진온(陳溫)
입향시조 진석한

[정의]

진온을 시조로 하고 진석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의 세거 성씨.

[개설]

나주 진씨(羅州陳氏)진온(陳溫)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나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나주 진씨 입향조는 진석한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217가구, 4,020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나주는 현 전라남도 나주시 지역으로 백제 때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렸고, 뒤에 죽군성(竹軍城)으로 바뀌었다. 백제 멸망 후 당(唐)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 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 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다가 940년(고려 태조 23) 나주로 바뀌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주 진씨 시조 진온은 여양 진씨(驪陽陳氏) 시조 진총후(陳寵厚)의 증손으로 고려 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 예빈경(禮賓卿), 지공주사(知公州事), 지나주사(知羅州事) 등을 역임하였다. 진온은 학문이 뛰어나고 척불 숭유(斥佛崇儒) 정책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후 후손들 중 일부가 여양 진씨에서 분관하여 진온을 시조로 하고 나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으나, 1967년 『여양 진씨 대동보(驪陽陳氏大同譜)』에 환보(還譜)하여 여양 진씨로 일원화되었다. 조선 시대에 무과 1명, 사마시 5명, 역과 1명 등 모두 7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입향 경위]

동계면 내령리는 본래 남원의 영계방(靈溪坊)이었다가 순창군에 편입되었다. 나주 진씨는 남원에서 역사 깊은 토성인 진(晋), 진(陳), 방(房), 태(太) 중의 한 씨족으로 예빈경파(禮賓卿派) 진석한이 1850년(철종 1)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현황]

2000년 순창 지역의 나주 진씨는 13가구, 3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1년 현재 동계면 내령리 내령 마을나주 진씨 11가구가 대를 이어 세거하고 있다. 동계면 현포리 동계면 행정복지센터에 1991년 동계면민이 세운 진재철(陳在哲)의 공적비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1.15 현행화 [현황] 사무소→행정복지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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