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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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용 |
세거|집성지 | 경주 김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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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시조 | 김알지(金閼智) |
입향시조 | 김인로(金仁老) |
[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인로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경주 김씨 입향조는 김균(金稛)의 7세손 김인로(金仁老)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54만 2018가구, 173만 6798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경주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김씨의 양대 산맥은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경주 김씨(慶州金氏)다. 따라서 모든 김씨는 이 두 김씨 중 어느 한쪽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두 김씨는 성은 같지만 뿌리가 전혀 다르다. 김해 김씨는 가락국의 김수로(金首露)가 시조인 반면 경주 김씨는 신라의 왕성인 김알지(金閼智)가 시조다.
경주 김씨는 신라 왕실의 세 성인 박(朴)·석(昔)·김 가운데 하나다. 시조 김알지의 7세손 김미추(金味鄒)가 신라 제13대 왕으로 오른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 왕인 경순왕(慶順王)까지 38명의 왕을 배출하여 587년 동안 신라를 통치하였다. 경순왕의 아들 9형제 중 마의 태자(麻衣太子)로 알려진 첫째 아들 김일(金鎰)은 망국의 한을 안고 입산하고, 셋째 아들인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과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이 경주 김씨의 계보를 이어 가고 있다.
순창에 세거하는 경주 김씨는 김순웅(金順雄)의 13세손 김균(金稛)을 파조로 하는 계림군파(鷄林君派)로, 경주 김씨의 대표적인 가문이다. 김균은 1360년(공민왕 9) 성균시에 합격한 이후 전법 판서에 이르렀고, 조선이 개국한 뒤에는 태조(太祖)를 추대한 공으로 개국 공신 3등에 중추원 부사로 승진하고 익대 개국 공신(翊戴開國功臣)의 공신호를 받았으며, 계림군(鷄林君)에 봉군되었다. 벼슬이 보국 숭록 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다.
[입향 경위]
김인로가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하여 자신의 노비 복이(福伊)에게 업혀[당시 어린아이였음] 전라북도 남원의 성동(聖洞)으로 피난하였다가 팔덕면 청계리로 옮겨 와 정착하였다.
[현황]
2000년 순창 지역 경주 김씨는 334가구, 86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의 경주 김씨는 팔덕면 청계리 상죽 마을에 30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었다. 팔덕면 청계리 서편 1.2㎞ 지점에 경주 김씨의 제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