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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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溪鄭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용 |
세거|집성지 | 초계 정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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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시조 | 정배걸(鄭倍傑) |
[정의]
정배걸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초계 정씨(草溪鄭氏)는 정배걸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초계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만 9264가구, 9만 3586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초계는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의 지명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씨(鄭氏)는 중국에서 귀화한 사실이 분명한 서산 정씨(瑞山鄭氏)와 낭야 정씨(瑯琊鄭氏)를 제외하고 대부분 신라의 육부 촌장 중 본피부(本彼部)의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의 후손이다. 지백호가 32년(유리왕 9) 정씨 성을 하사받은 것에 연유한다.
시조 정배걸은 1017년(현종 8)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문종(文宗) 때 중추원사를 지냈다. 사학인 홍문공도(弘文公徒)를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홍문공도는 12공도 중 문헌공도(文憲公徒)와 함께 가장 융성하였다. 정배걸은 유가(儒家)의 대가요, 백세의 존사(尊師)라 일컬어졌으며, 홍문광학 추성찬화공신(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으로 개부의동삼사 수태위 문하시중 상주국 광유후(開府儀同三司守太尉門下侍中上柱國光儒侯)에 추증되었고, 초계군(草溪君)에 봉하여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초계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초계 정씨는 내급사공파(內給事公派), 천호장공파(千戶長公派),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에 고려 때 예부 상서를 지낸 정문(鄭文)을 비롯하여 우상시 지내지(右常侍知內旨) 정선(鄭敾), 조선 시대에 우참찬에 오른 정엽(鄭曄), 우찬성 정종영(鄭宗榮), 한성부 좌윤 정기광(鄭基廣), 우참찬 정화, 청백리 정종영(鄭宗榮), 이조 참판 정온(鄭蘊), 훈련대장을 역임한 정여직(鄭汝稷) 등이다. 조선 시대에 문과 58명, 무과 27명, 사마시 203명, 음양과 1명 등 모두 289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입향 경위]
순창 지역 초계 정씨는 입향조나 입향 연대는 문헌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직후 적성면 고원리 지내 마을로 들어와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내 마을에서 진사 1명이 나왔다. 역사가 400년이 되었지만 크게 번성한 편은 아니다.
[현황]
2000년 순창 지역 초계 정씨는 60가구, 14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의 초계 정씨는 적성면 고원리 지내 마을에 7가구가 남아 조상의 터를 지키며 세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