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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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용 |
세거|집성지 | 경주 최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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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시조 | 최치원(崔致遠) |
입향시조 | 최덕봉(崔德奉) |
[정의]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덕봉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경주 최씨(慶州崔氏)는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경주 최씨 입향조는 최치원의 후예인 덕곡(德谷) 최덕봉(崔德奉)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30만 4722가구, 97만 6820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경주는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경주 최씨는 우리나라 최씨(崔氏) 가운데 대종(大宗)으로 신라 사량부(沙梁部)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원조로 하고, 소벌도리의 24세손이며 신라 말기 대문장가인 고운(孤雲) 최치원을 시조로 하여 본관을 경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는데, 다른 최씨들도 최치원의 선대 및 후대에서 분파되었다고 보면 틀림없다.
『경주 최씨 상계 세보(慶州崔氏上系世譜)』에 따르면 소벌도리 24세손인 최치원 윗대에서 분파된 본관으로 개성(開城), 삭녕(朔寧), 동주(東州)[철원의 옛 이름], 전주(全州)[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문충공계(文忠公系)]가 있고, 최치원의 후대에서는 함양(咸陽), 청주(淸州), 영흥(永興), 충주(忠州), 용강(龍崗), 수원(水原), 부안(扶安), 강릉(江陵), 강화(江華), 화순(和順), 통천(通川), 양천(陽川), 원주(原州), 해주(海州), 진주(晉州), 탐진(耽津)[전라남도 강진군에 속해 있던 옛 지명], 전주(全州)[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계(文烈公系)와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복야공계(僕射公系)]가 분파된 것으로 되어 있다.
최치원은 12세의 나이로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18세에 빈공과에 급제하여 승무랑 시어사 내공봉(承武郞侍御史內供奉)을 지냈다. 당(唐)나라 말 황소(黃巢)의 난(亂) 때 지은 「토황소 격문(討黃巢檄文)」은 동양 최고의 명문장으로 꼽힌다. 신라에 귀국해서는 시독 겸 한림학사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워 외직을 자청하여 태산(太山)[지금의 태인], 함양, 부성[지금의 서산] 등지의 태수를 지냈다. 그 후 「시무 10조(時務十條)」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않자 난세를 비관하며 전국을 유랑하다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다가 생을 마쳤다. 1020년(현종 11) 내사령에 추증되고 공자묘(孔子廟)에 종사되었으며, 1023년(현종 14)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다. 태인 무성 서원, 경주 서악 서원, 함양 백연 서원, 영평 고운 영당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계원필경(桂苑筆耕)』이 있다.
고려 광종(光宗) 때 태자태사 문하시중을 지낸 최량(崔亮), 성종(成宗) 때 대를 이어 문하시중을 지냈고 「시무 28조(時務二十八條)」를 올린 최승로(崔承老), 현종 때 검교 태부수 문하시랑 최항(崔沆), 충숙왕(忠肅王) 때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최해(崔瀣), 명종(明宗) 때 정당문학을 지낸 최여해(崔汝諧)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다.
조선 시대에도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 동학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개항기의 거유(巨儒)이자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최익현(崔益鉉),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이자 선행으로 잘 알려진 ‘10대 진사, 12대 만석, 400년 보시’의 경주 최 부자 최준(崔浚),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이며 한글 학자인 최현배(崔鉉培) 등과 같은 많은 학자, 명신, 지도자를 배출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씨족이자, 삼한 신라 시대 이래의 전통적 명문거족이다.
[입향 경위]
최덕봉이 조선 후기에 충청도에서 유등면 오교리 오교(梧橋) 마을로 들어왔다. ‘오교’는 세칭 ‘머우 다리’라 불린다.
[현황]
2000년 순창 지역 경주 최씨는 163가구, 42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의 경주 최씨는 유등면 오교리 오교 마을에 24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