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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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大一 |
이칭/별칭 | 양현(良炫),취암(翠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범호 |
[정의]
개항기 순창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양현(良炫), 호는 취암(翠庵). 아들은 강린(姜璘)이다.
[활동 사항]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강대일(姜大一)은 1871년(고종 8)에 출생하였다.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며, 천성이 인자하고 재덕(才德)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지조(志操)가 고결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을 살았다. 학문에 전념하여 크게 성취하였으며, 특히 문장이 탁월하여 주변 마을에서 많은 칭송과 흠모를 받았고, 배우고 따르고자 하는 무리가 많았다. 1901년에 강대일은 순창군 팔덕면 용산리 무이산(武夷山) 기슭에 정사를 짓고 취암 정사(翠庵精舍)라고 이름하였다. 취암 정사가 있던 팔덕면 용산리는 조선 후기 진주 강씨 강회덕이 들어와 이후 자손이 세거하여 온 곳이다. 강대일은 기우만에게 수학하였는데, 스승이 죽자 스승의 영정을 봉안하고 조석으로 정성을 다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아들 강린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정사가 있던 자리에 사당을 세웠는데, 1971년 준공하여 무양사(武陽祠)라 하고 기정진(奇正鎭)·기우만(奇宇萬)과 함께 강대일을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