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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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男根石 |
이칭/별칭 | 좃바위,미륵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형준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음기가 센 마을의 음기를 누를 목적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남자 생식기를 닮은 선돌.
[개설]
남근석은 여근곡이 있는 곳에 세워지는 게 일반적이다. 남근석은 고대 국가에서 남성을 상징하는 심벌이었고, 여근곡의 명칭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선덕 여왕 조에 처음 등장한다. 여근곡은 산세가 마치 여근 지형을 닮아서 생겨난 명칭이다. 여근곡의 태동은 통일 신라 시대 풍수 비보 사상을 배경으로 하나, 남근석은 대체로 마을 입구에 인공적으로 세워지는 특징이 있다.
[남근석의 유형]
남근석은 두 유형이 있다. 인공적으로 남자 생식기를 조형한 남근석과 자연적으로 남자 생식기를 닮은 남근석이 있다. 남근석은 대체로 여근곡과 대치되는 곳에 음기를 누를 풍수 비보 목적에서 세워지는 게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 순창군 팔덕면 산동리의 남근석을 들 수 있다. 산동리 남근석은 여근곡 지형의 마을 앞 입구 쪽에 위치하여 여근곡의 기운을 눌러 줄 목적에서 세운 선돌이란 점에서 이의가 없으나, 실제 남근석의 입석 표면에는 연꽃, 연봉, 연잎이 조각되어 있다. 산동리 남근석은 남근석보다는 연봉석이라고 불릴 만한 조형 입석이다. 음기를 누를 목적에서 세운 것은 분명하지만 발기된 남자 생식기와는 거리가 먼 연봉석으로 만들어 세운 조형 입석이란 점에서 문화사적 의의가 있다.
[남근석의 기능]
남근석은 대체로 발기된 상태의 모습으로 조형성을 갖춘다. 발기된 남근석은 힘[정력]의 상징이다. 지기가 센 터를 강하게 눌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풍수 비보란 지기가 센 곳은 눌러 주고 허한 곳은 보비한다는 논리이며, 풍수지리의 여건을 살펴 다양한 방식의 비보책이 차용되었다. 전통적으로 자연 마을은 취락을 조성할 때 풍수지리를 살폈고, 마을이 들어설 곳의 배산 임수를 살피고 취락의 택지를 하게 된다. 취락의 조건은 좋으나 풍수지리에 결함이 있으면 풍수 비보의 장치를 한다. 그러한 비보책 가운데 하나가 남근석을 세우는 일이다.
남근석을 세우는 곳은 여근곡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주산이 여자의 하복부를 닮은 지형을 여근곡이라 부른다. 마을의 산세와 지형이 여근곡을 닮은 형국일 때 음기를 눌러 주기 위하여 여근곡과 대칭되는 마을 입구에 남근석을 세운다. 이와 같이 음기를 누를 목적으로 세우기 때문에 힘 있게 발기된 모습이 일반적이다. 순창군 풍산면 상촌리에 세워진 남근석이 대표적이다. 상촌리 교량 공사를 하던 중 교각 아랫부분에서 남근석 3기가 출토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보기 좋은 남근석을 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것으로, 자연석으로 남근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남근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풍수 비보석과 관련이 없는 남근석도 있다. 민간 신앙 또는 전설과 관련하여 남근 형상의 목각이 만들어지고, 남근석을 세우는 공원도 조성되고 있으나 순창군에 세워진 남근석은 모두 풍수 비보석으로서 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