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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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振宗 |
이칭/별칭 | 효선(孝善),신재(新齋),문암(文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형성 |
[정의]
조선 전기 순창에서 유배 생활을 한 문관.
[가계]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효선(孝善), 호는 신재(新齋)·문암(文巖). 증조할아버지는 김지(金地), 할아버지는 김성경(金成慶), 아버지는 판관인 김보(金俌)이다. 어머니는 사용(司勇) 최계강(崔繼江)의 딸이다. 처는 영천 부수(靈川副守) 이언윤(李彦倫)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진종(金振宗)[1496~1557]은 1496년(연산 2) 출생하였고, 학행이 고명하고 충절이 높았으며, 행실은 견실하고 확고하였다. 1518년(중종 13)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었다. 1525년(중종 20) 식년시 생원 1등으로 합격하고, 152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이후 주서(注書), 정언(正言), 경성 판관(鏡城判官)을 역임하였다. 1541년 홍문록(弘文錄)에 오른 뒤 이듬해 교리(校理)와 부응교(副應敎)를 거쳐 헌납(獻納)이 되었다. 헌납으로 있을 때 이기(李芑)의 거칠고 음험함을 규탄하여 이기가 깊이 원망을 하였지만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당시 사람들이 그를 두렵게 여겼다.
1545년(인종 1) 일본 국왕 사신 선위사(日本國王使臣宣慰使)를 역임하였다. 전적(典籍)으로 재임 중이던 1545년 명종이 즉위하였을 때 을사사화가 일어나 파직되었다. 향리인 선산으로 돌아가다가 전라도 태인(泰仁)[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으로 유배되었으며, 1547년(명종 2) 순창으로 이배(移配)되었다. 순창의 쌍치면 적곡리에서 11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가 1557년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존경을 받았으며, 사신(史臣)은 학문이 순수하고 바르며 충효의 큰 절개가 있다고 하였다. 1570년(선조 3) 신원(伸冤)되어 직첩(職牒)을 돌려받았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창림리에 있는 송산 서원(松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