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정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묘(祠廟). 경무사는 1684년(숙종 10)에 금계사(琴溪祠)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851년(철종 2)에 중건하면서 경무사라 개칭하였다. 그 후 1877년(고종 14)과 1940년에 재차 중건하였다. 마을 뒷산의 경사지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경무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맞배기와집이다. 건물은...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사우(祠宇). 죽변면 봉평2리 절골과 외골 사이로 뻗어내린 구릉 말단에 있다. 1941년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였고, 고려 후기 충신인 문명공 야은 전녹생(田祿生), 문혜공 뇌은 전귀생(田貴生), 문원공 경은 전조생(田祖生), 매정 선생 전자수(田子壽) 등 사현(四賢)을 모시며 매년 음력 10월 3일 배향한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리에 있는 1868년(고종 5) 구장정사를 철폐하고 세운 유허비. 구장정사는 우와(愚窩) 전구원(田九畹)과 만은(晩隱) 전선(田銑)을 향사하던 정사였다. 1703년(숙종 29)부터 전선을 배향하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구장정사가 철폐되자 유허비를 세워 향사를 대신하였다. 신화리 서당골 옛 구...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당. 울진군 온정면 금천리 신림마을 남쪽 골짜기 안에 위치하고 있다. 금천리 서당은 온정면 일대의 유림에서 힘을 모아 지은 강학소로, 1925년에 건립되었다. 금천리 서당은 산을 등지고 자리 잡고 있다. 동향의 강당이 있으며, 강당의 배면으로 사당을 배치하였고, 강당의 왼쪽에는 동북향의 고직사가 있다...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효자. 아버지의 등에 종기가 나 백약이 무효하자 3개월 동안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완치케 하였다. 또 어머니가 눈이 어두워져서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더니 3년 만에 어머니의 눈이 다시 밝아졌다. 그 후 어머니가 임종하려 하자 변 맛을 보고 하늘에 빌다가 잠시 기절하였는데, 꿈결에 한 노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말하기를 “네 효도에 하늘이 감동하여 상제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덕구리에 건립된 조선 말기 효자 김석하의 정려비. 김석하(金碩河)는 학관(學官)을 지낸 김정윤(金瀞潤)의 셋째 아들로 효성이 남달리 지극하였다. 나이 21세 때 효자 김석하는 모친이 병환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여 정성껏 간호하던 중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서쪽으로 50리를 가면 명약(名藥)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주각양(朱珏陽)이고, 남편은 영양김씨로 김원근(金源根)이다. 평소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시아버지가 7개월 동안 담종을 앓고 있을 때에 늘 종기를 빨아 내었다. 또 시아버지가 우연히 꿩 우는 소리를 듣고 꿩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주씨가 “제 정성으로 어찌 이를 행할 수 있으리오” 하고 탄식하던 중에 독수리...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남양(南陽). 홍응섭(洪應燮)의 딸이며 선비인 안동(安東) 김원진(金源鎭)의 처다.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으며 남편이 병이 들어 위독하자 이것을 자신이 대신할 것을 하늘에 빌었다. 자기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남편의 입에 넣자 병이 나았다. 그러나 남편이 또 다시 병이 들어 결국 사망하였다. 남편과 같이 죽기를 각오하다가 시부모를...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자는 병호(炳浩), 호는 앙모재(仰慕齋).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병이 나면 젖을 먹지 않았고 고기와 과실이 생겨도 먼저 먹지 않고 부모님께 드리고 난 다음에 먹었다고 한다. 연이은 부모의 상(喪)을 당해서는 슬퍼하기보다는 예(禮)를 다 하고 3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효부. 본관은 남양(南陽). 홍광석(洪廣碩)의 딸이며 증동몽교관(贈童蒙敎官) 삼척(三陟) 김철중(金哲中)의 처이다. 평소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고 시어머니가 노병에 고기를 원하자 하늘에 매일 빌었다. 그러던 중 맹호(猛虎)가 노루를 물고 마당에 와서 두고 갔다. 그 고기로 국을 끓여 공양하였고 시어머니가 또 개를 원하자 마침 개장사가 왔기에 개를...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1816년(순조 16)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후 1921년에 중건되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평해구씨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울진군 기성면 황보리 노동마을 뒷산 허리 아래에 서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노동서원의...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고목리 옥계서원(玉溪書院)에 소장된 한적(漢籍). 1740년(영조 16)에 건립된 옥계서원의 소장 도서로서 『송자대전(宋子大全)』 등 한적(漢籍) 104책이 현존하고 있다. 『만향계안(晩香稧案)』, 『옥계당안(玉溪堂案)』, 『후촌당집옥계서류초선(後村堂集玉溪書類抄選)』의 필사본과 『어촌선생문집』 석인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송자대전』이 주류를 이룬다....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산성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유교 사당. 도통사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남대천을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불목이골로 접어들어 고산성의 옛 터에 못 미쳐 위치하고 있다. 1924년 신안주씨(新安朱氏) 울진 문중에서 선조인 문공(文公) 주희(朱熹)의 성덕을 기리고자 영당(影堂) 봉안(奉安) 문제를 논의하였다. 1932...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1671년(현종 12)에 유림에서 창건하였고, 황응청(黃應淸), 황여일(黃汝一) 양현(兩賢)을 봉안하고 명계서원이라 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철폐된 후, 1881년에 향토 선비들이 유지(遺址)에 강학소를 건립하였으며, 1982년에 다시 양현(兩賢)을 봉안하고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우(祠宇). 몽양사는 효자 전이석(田爾錫), 한재 주필대(朱必大)를 배향하는 사우(祠宇)이다. 1716년(숙종 42)에 창건하였고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유림에서 유허비를 건립하였고, 현존하고 있는 강당이 강학소로 이용되고 있다. 몽양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 지붕은 골기와로...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성이며, 자는 여홍(汝弘), 호는 노번(勞番)이다. 효성이 하늘 끝에 닿듯이 지극하고 학문도 독실하였다. 부모가 병이 들면 항상 대변 맛을 보고 병세를 판단하여 약을 쓰며 병세가 위독하면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입에 넣어 연명케 하였다. 그 후 친상(親喪) 때에는 닭이 백색으로 변하고 묘 주위의 소나무가 황색의 마른 나무가 되니 사람...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 반정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단양전씨(丹陽田氏) 문중의 재실(齋室). 반정재는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봉평2리 반정마을 경문사 앞에 위치해 있다. 반정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계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내부를 4칸의 온돌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온돌방의 전면에는 개방된 퇴간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퇴간마루 전면으...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규항(奎恒), 호는 애월헌(愛月軒). 담암(淡菴) 백문보(白文寶)의 후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세가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 어머니를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나면 항상 대변 맛을 보고 약을 썼다고 한다. 그 후 모상(母喪)을 당하여 3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켰으며 성묘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 구만동에 있는 조선시대 사우(祠宇). 불천사는 1644년(인조 22)에 입사하여 효자 주경안(朱景顔)을 봉안하다가 울진후(蔚珍候) 박한(朴垾)의 주선으로 배공인(配恭人) 울진장씨(蔚珍張氏)를 합사(合祠)하였다. 1947년에 중건하였으며 향사일은 음력 2월 27일이다. 불천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서당.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사동초등학교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서당의 건립 연대나 연혁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때 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동리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중앙에 2통칸의 마루를 두었고, 좌우 양측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
-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에 있는 사우(祠宇). 1955년에 죽변면 화성리 화방동에 있던 양현사(兩賢祠)를 중건(重建)하여 상현사(尙賢祠)라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의 유신(儒臣) 남영번(南永蕃), 유현(儒賢) 해운(海雲) 남계명(南季明),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 삼현(三賢)을 봉안하고 있다. 상현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익공양식 건물로,...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호월리 용저동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터.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계산(溪山) 김수근(金洙根) 양 선생을 배향(配享)한 신계서원이 있었던 건물지이다. 신계서원(新溪書院)은 울진읍 호월리 용저동(龍渚洞)에 있었다. 1749년(영조 25)에 울진읍 신림리에 창건되어 김창흡(金昌翕)의 영정을 봉안하다가, 1826년(순조 26...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청송이며, 참의공(參議公) 심학홍(沈學弘)의 후손이다. 심천범(沈天範)은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더니 3년 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집이 가난하여 고기잡이와 나무하는 일로 아버지 공양을 지성으로 하였다. 아버지가 두 어깨에 신경통을 앓아 수저를 들지 못하고 누워 있으므로 부축하여 일으키고 음식을 대접하는 등 정성...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에 살던 효부. 본관은 강릉(江陵). 아버지는 최석육(崔錫育)이고, 남편은 청송심씨로 심천범(沈天範)이다. 평소 시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고 남편을 존경하였다. 시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스스로 머리를 빗지 못하므로 매일 세수를 시키고 머리를 빗어 주었다. 또 시아버지가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최씨는 집에서 기르는 개[犬]에게 부탁하기를 “내가 너를 기...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명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묘(祠廟). 문창후(文昌候) 최치원(崔致遠)과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을 배향(配享)하는 사묘(祠廟)이다. 1888년(고종 25)에 유림에서 창건하였고, 최치원의 유상(遺像)을 봉안하였으며 1925년에 최익현의 진영(眞影)을 추배하여 향중에서 음력 10월 10일에 향사하고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1...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흥.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안구(安耈)이다. 안응준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나이 7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자 자기의 무명지를 끊어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넣었으나 효험이 없었다. 다시 손가락을 끊어 피를 입에 넣고 곁에 앉아 기다렸더니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가 살아났다. 그 후 성인이 되어 분가해...
-
경상북도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평해손씨 재실. 영모재는 후포면 후포리에서 평해읍으로 가다가 다툼고개를 넘기 전 좌측편 골짜기 안에 위치하고 있다. 평해손씨(平海孫氏) 종중에서 140여 년 전쯤 국도 7호선 맞은편의 산 경사지에 건립한 것을 해방 이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외삼문(外三門)과 영모재, 숭덕전(崇德殿)을 일직선상으...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덕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영해박씨와 효녀 조낭자의 비. 열녀 영해박씨는 영해인(寧海人) 박상하(朴尙夏)의 딸로, 창녕(昌寧) 조명룡(曺命龍)의 처이다. 남편의 병환을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시키자 그 행적이 알려져 1749년(영조 25) 정려를 명받았다. 조명룡의 딸 조낭자는 16세에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어머니의 병을 완치시킨 사실이 알려져...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암서원(雲巖書院)은 1826년(순조 26)에 기성면 노은동(魯隱洞)에 건립되어 김제(金濟), 손순효(孫舜孝)를 봉안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 1964년에는 서원 유생들의 주창으로 구인리(邱仁里)에 이건하였다. 1995년 10월에 서원의 보수와 평삼문 개축이 이루어지고 담장을 설치하였다....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사(精舍). 울진군 북면 신화리 새말마을에서 200m 가량 남쪽으로 내려간 다음, 서쪽으로 난 좁은 길에서 조금 올라간 산비탈에 있다. 울진 신화리 구장정사는 우와(愚窩) 전구원(田九畹)과 만은(晩隱) 전선(田銑)을 모시는 서원이었다. 1868년(고종 5)에 서원이 철폐되자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향사...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옥계동에 있는 조선 전기 향교. 울진향교는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옥계동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울진향교는 1484년(성종 15)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월변동에 건립된 후 1697년(숙종 23) 고성리 성저동으로 옮겼다가 1872년(고종 9)에 다시 읍내리 옥계동으로 이축하였다. 한국전쟁 때 대성전 및 서재를...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울진향교의 대성전. 울진향교는 조선 1484년(성종 15) 읍내리 월변동에 건립된 후 1697년(숙종 23) 고성리 성저동으로 옮겼다가, 1872년(고종 9)에 다시 읍내리 옥계동으로 이축하였다. 6·25전쟁 때 대성전 및 서재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이 전소된 후 1979년에 명륜당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198...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월계서원은 울진장씨의 관시조인 매계(梅溪) 장말익(張末翼)과 그의 8세손인 판서 장양수(張良守) 양현(兩賢)을 배향하고 있다. 1856년(철종 7)에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 향내 사림들의 장계(狀啓)에 의하여 월계사(月溪祠)가 창건되었고, 1862년(철종 13)에 예조의 관문승원예에 의하여 월계서원이라 이...
-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서 전개된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학문 또는 종교. 울진은 지리적으로 본래 강원도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1963년에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현재는 평해와 합병되어 있으나, 본래는 조선시대까지 별개의 군이었다.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개편에 따라 평해와 울진이 합쳐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두 지역을 현재의 울진으로 함께 묶어...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금매리 몽천서원 터에 있는 우암 윤시형의 유허비. 우암 윤시형의 유허비 터인 몽천서원은 윤시형과 윤사진(尹思進)을 배향하기 위하여 1693년(숙종 19)에 창건되었고, 1797년(정조 21)에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철폐되면서 서원 터에는 삼조어비각만 남아 있었는데, 후손과 유림이 몽천당을 재건하여 유덕을 기리게 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지역에 살던 효부. 본관은 김해(金海).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학규(金學奎), 남편은 파평윤씨로 윤용기(尹龍璣)이다. 17세에 시집 와서 시부모를 지성으로 섬기고 남편을 공경하였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병이 들어 비둘기 고기를 먹고 싶다 하였다. 김씨가 비둘기 고기를 구하러 나갔다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돌아오는데 숲에서 하늘을...
-
조선 후기에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신흥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이가동의 효행을 기념하는 비. 이가동의 자는 후립(厚立)이며, 경주인으로 이제현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대인(李大仁)으로 통덕랑에 증직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들었을 때는 빙어와 설순을 어렵게 구하여 약으로 사용하였고, 한겨울에 산딸기를 구하여 부모에게 올려 효험을 보았다. 또한, 부모가 돌아가...
-
조선 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자 자기의 다리를 베어 피를 내고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넣어 수개월을 연명케 하였다. 또한, 아버지가 병이 들자 하늘에 빌면서 자기의 몸을 대신할 것을 원하였으며, 자기의 열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넣어 수개월을 더 살게 하였다. 부모가 별세한 후 3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키며 참신 한 켤레로 상(喪)을...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사건(士建), 호는 고산(古山). 할아버지는 청파(靑坡) 장만시(張萬始)이고, 아버지는 장응채(張應彩)이다. 장동유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과의 우애도 돈독하였다. 일찍이 아버지의 상을 당해서는 효를 다하지 못하였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여막을 짓고 묘를 지켰다. 현몽(現夢)으로 샘을 파...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부. 본관은 울진(蔚珍). 아버지는 장병주(張秉柱)이고, 남편은 현풍곽씨(玄風郭氏)로 곽종목(郭鍾穆)이다. 18세에 곽종목에게 출가하여 가난한 살림에도 길쌈을 하며 가사를 돌보고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1910년 한일 병합으로 주권을 잃자 독립운동을 하고자 하는 남편 곽종목의 뜻을 따라 서간도(西間島) 유하현(柳河縣) 구산자(溝山子)로 이주하...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울진(蔚珍). 자는 성보(聖甫). 아버지는 흡곡훈도(歙谷訓導) 장응철(張應哲)이다. 장서린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어릴 때에 부친상을 당해 손색없이 상례를 다하여 3년 동안 죽을 먹었으며 홀어머니를 지극히 보살폈다. 외출하면 밤중이라도 꼭 집에 돌아왔고, 때로는 호랑이가 데려다 주는 기이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현감(縣監) 장귀석(張貴碩)의 후손이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항상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모친상을 당하여 아침저녁으로 성묘를 하였고, 아버지가 병으로 눕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담해(痰咳)로 고생을 할 때에는 눈 속을 헤쳐 다람쥐 구멍에서 밤을 구하여 이것을 약으로 써서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달성(達成). 아버지는 서덕태(徐德泰)이며, 남편은 장진혁(張振赫)이다. 남편이 5년간 병석에 누워있을 때, 오목주 화사판을 얻어 술에 담가서 계속 복용토록 하여 병이 나았다. 또 남편이 뇌종병이 들어 사경에 이르자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는데, 이에 감응하여 종기가 완치되었다고 한다. 1643년(인조 21)에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
조선 말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받들었으며, 그의 형제 또한 뜻과 몸을 같이하여 부모를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이 들면 항상 변의 맛을 보고 병세를 판단하여 약을 썼고, 병이 위급하면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 수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여막을 치고 묘를 지켰으며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성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건립된 조선 말기 전병모·전술모 형제의 효자비. 전씨형제 효자비는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화구마을의 전병모·전술모 형제의 효자비이다. 전술모의 자(字)는 문칙(文則)이며, 호는 송은(松隱)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사서(沙西) 전식(全湜)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전종복(全宗復)이다. 전술모는 경전과 역사책에 능하고 글을 잘...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에 건립된 조선 중기 전이석·주필대의 효행을 기리는 비.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후망마을 마을회관 옆 몽양사(蒙養祠) 뒤편에 있는 전이석(田爾錫)과 주필대(朱必大)의 효성을 기리는 유허비(遺墟碑)이다. 전이석은 담양인(潭陽人)으로 호는 송암(松菴)이며 자(字)는 주경(周卿)이다. 경은(耕隱) 전조생(田祖生)의 후예로 통정대부...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치극(致極), 호는 신묵재(愼黙齋). 봉예공(奉禮公) 전진(田晋)의 후손이다. 전택오는 7세에 아버지 상(喪)한 이래로 어머니를 정성으로 섬기었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처 김씨와 함께 일주일 동안 북두칠성에 기도를 올려 효험을 보았다고 하며, 어머니 등창에 종기를 돋아났을 때에는 입으로 빨아내어 완치하였다...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담양(潭陽). 호는 묵암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 전효선(田孝先)이다. 평소 어버이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울진 동쪽을 순시하다가 그의 집에 들러 효행에 감복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주었다. “관동 지역에 부임하여 효행과 청렴을 듣고 지금 이곳에 오니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네. 여막에 살고 인분...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녀.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아버지는 조명룡(曺命龍)이고 어머니는 영해박씨(寧海朴氏)이다. 조명룡의 딸 조낭자는 결혼 전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위중해지자 몰래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어머니에게 먹이고 쾌유를 기도하여 10시간 후에 어머니가 회복되었다. 1750년(영조 26) 조정에서 정려(旌閭...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여우(汝愚)이다. 아버지는 참봉(參奉) 주세홍(朱世弘)이고, 어머니는 곽씨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나라에 충성스러워 문정왕후(文定王后), 인순왕후(仁順王后), 명종(明宗), 의인왕후(懿仁王后), 선조(宣祖)가 죽었을 때 각각 3년 동안 상을 치르며 죽만 먹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단을 쌓고 7년 동안 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자는 정보(正甫), 호는 치암(致庵). 아버지는 지평(持平)을 역임한 주경안(朱景顔)이다. 주명기는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전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항상 옆에서 보살폈다. 노병(老病)에는 붕어죽이 가장 좋다는 말을 듣고는 매일 붕어죽을 해 주었는데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그물을 놓아 붕어를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열녀. 남재학(南載鶴)의 딸로 19세에 신안주씨(新安朱氏) 주병즙(朱秉楫)과 혼인하였다. 25세 때 남씨의 남편이 고혈압으로 반신불구가 되자, 궁핍한 살림에 1남 1녀의 가족을 돌보며 5년 동안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였다. 결국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마을 사람들은 열부의 도를 다한 남씨를 칭송하였다. 이에 1939년 3월 남씨는 울진군으...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신안(新安). 지평(持平) 주경안(朱景顔)의 후손이다. 주종검은 외출을 하고 있을 때에도 어머니에게 이상이 있으면 그 징후가 나타났다고 한다. 한번은 삼척에 유숙할 당시 밤에 문득 깨어 보니 눈물로 이불이 다 젖어 있어 이상하게 여겨 집으로 와 보니 어머니가 설리병(泄痢病)을 앓고 있어 약을 써서 병을 낳게 하였다. 또 한번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에서 활동한 열녀. 전재남(田在南)의 딸로 신안주씨(新安朱氏) 주진구(朱鎭九)와 혼인하였다. 전씨는 어릴 때부터 어버이를 정성으로 공경하였으며, 시가에서는 시부모와 남편을 공손히 섬겼다. 그러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애통해 하며 상례를 정성껏 치르고 음식을 전폐하였으며, 매일 새벽 남편의 묘소에서 곡(哭)을 하였다. 전씨의 시어머니가 음식을...
-
경상북도 울진에 살던 효부. 본관은 담양(潭陽). 아버지는 전병겸(田炳謙)이고, 남편은 신안주씨로 주형중(朱衡中)이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매사에 지각이 있고, 성품이 곧으며 지조가 있었다. 출가하여서는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을 잘 받드니 이웃과 마을에서 부덕(婦德)이 있다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에 남편이 출타하여 돌아오지 않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에 살던 열녀. 본관은 울진(蔚珍). 아버지는 장전(張悛)이고, 남편은 사재감첨정 주호(朱皥)이다. 임진왜란 때에 부부가 같이 고읍성을 지키다가 1593년 8월 남편 주호가 먼저 왜적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왜적이 장씨의 가슴을 만지니 두 가슴을 손수 칼로 잘라내어 땅에 던지고 왜적을 꾸짖고 자결하였다. 왜적이 경탄하여 그 징후와 상태를 기록하여 여러 죽...
-
1831년(순조 31) 울진현에 있던 무월동의 마을 규약. 1704년(숙종 30) 송재(松齋) 장만년(張萬年)은 진사 장겸(張謙)의 11세손으로 태어났다. 예의와 행실이 바르고 근검 절약하여 선인들의 유업을 굳게 지키면서 자수성가하여 1740년경 울진읍 호월리 227번지[호월1길 45-8]에 현 기지(基地)를 택해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술좌진향(戌座辰向)으로 16간...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진지역에 살던 효부. 본관은 평해(平海). 아버지는 황영하(黃永河)이고, 남편은 강릉최씨로 최진곤(崔鎭崑)이다. 시아버지는 절름발이이고 남편은 간질병 환자로 가세가 몹시 가난하였으나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시어머니가 임종을 눈앞에 두었을 때 손가락을 끊어 피를 받아 먹였으며, 남편을 위해 단(壇)을 만들어 하늘에 비니 마을 사람은 물론 인근 마을에서도 칭송이...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고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당(堂). 충효당에 봉안된 효자 주경안은 20세 때 부친이 학질에 걸려 중태에 빠지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불에 태워 술에 타서 마시게 하였고, 나이 60세 때 노부(老父)가 종기로 오랫동안 고생하자 엄동설한에 기도를 올려 지렁이를 구해 즙을 만들어 종기에 발라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석단(石壇)...
-
경상북도 울진군의 충신·효자와 효부·열녀. 예로부터 사회의 기본 윤리로 존중되던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을 가리킨다. 신라시대부터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에 정문과 정려를 세워 포장하였는데, 고려시대를 거쳐 유교적 교화를 강화하였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더욱 확장되었다. 울진 지역에서도 충·효·열의 행적이 있는 인물이 많다....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에 있는 고려 후기 향교건축.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읍사무소 뒤편 산비탈에 위치하고 있다. 평해향교는 1357년(공민왕 6)에 저전(楮田) 반월산(半月山) 아래에 지었다가 1407년(태종 7)에 군수 김한철(金漢哲)이 송릉동(松陵洞)으로 이건하였다. 당시에는 명색이 향교였을 뿐 완전히 정비되지 못하였다. 이후 계속하여...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평해리 평해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의 향교 건축물. 평해향교 대성전은 1357년(공민왕 6)에 저전(楮田) 반월산 아래에 창건되었으나 1407년(태종 7) 군수 김한철(金漢哲)에 의해 송릉동으로 이건된 평해향교의 대성전이다. 이때까지 향교의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1470년(성종 1) 대성전을, 1474년(성종 5)에 명륜당을 건립함으로써...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호는 치재(恥齋). 판서(判書) 홍연(洪璉)의 후손이다. 부모상에 예를 다하였다.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킬 때에 수달이 쫓겨 와서 구조를 요청하는 듯하였는데 과연 잠시 뒤에 나무꾼이 뒤를 쫓아왔다. 이때 홍상은 이 짐승은 사람에게 해로운 날짐승이 아니니 돌려보내라 일렀다. 또 꿩이 무릎 밑으로 날아들자 쓰다듬어 놓아 보냈다. 마을 사람이 그를 인...
-
조선시대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해(平海). 참봉(參奉) 황성(黃誠)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황명손(黃命遜)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빙어를 구하니 하늘이 감동하였다고 한다. 부모상 6년 동안 여막을 짓고 묘를 지키며 애통해 하였다고 한다. 장수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제수받았다. 유림에서 정부와 어사에게 효행의 행장을 올려 『삼강록(三綱錄)』에 기...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효자. 황응문(黃應文)의 아들 황연은 9세 때에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여 자기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어머니의 입에 넣어 쾌유하게 하였다고 하며, 그 후 어머니가 다시 병이 들자 노루를 잡아 그 고기를 약으로 써서 효험을 보았다고 한다. 1693년(숙종 19)에 정려(旌閭)되었다.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오곡리 웃실마을에서 남쪽으로 구릉을...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울진 출신의 학자·효자.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청지(淸之), 호는 대해(大海). 아버지는 목사(牧使) 황우(黃瑀)이다. 1552년(명종 7)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다. 독서와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하였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어 도를 닦으며 즐겼고, 학문을 깊고 세밀하게 연구하였다. 장원서별좌(掌苑署別座)로 있을 때 나라에서 학문과 인품을 훌륭히 여겨...
-
1677년 울진현령 오도일이 만든 향촌 교화를 위한 절목. 평해 소곡서당의 건립과 관련하여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은 기존의 사설 서당이 누추하여 증설을 지원하였고 향촌을 교화하기 위한 조항과 서당에 관한 벌칙 조항 및 여러 제재 조항을 만들었다. 울진과 평해의 문풍 쇠잔과 인재의 고갈을 타개하려는 명분을 내세워 만들게 되었다. 「훈사절목」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