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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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尤庵宋先生- |
영어의미역 | Folk Tale of Jaetgol and Song Si-yeol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2리 |
집필자 | 김남경 |
성격 | 설화|민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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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송시열|전선(田銑) |
관련지명 |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2리 |
모티프유형 | 융숭한 대접|시를 쓴 부채로 보답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2리에서 잿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잿골과 우암 송선생 이야기」에서 잿골은 북면 부구2리 마을의 옛 이름이다. 잿골은 흥부역(興富驛)이 있던 교통의 중심지로서 사람과 문물의 왕래가 잦은 요지였으며, 부구2리의 흥부장은 ‘어물, 소금시장’으로 유명했다. 흥부장은 해산물과 소금의 유통을 담당한 특수상인 집단인 이른바 ‘바지게꾼[선질꾼, 일종의 부보상]’이 조직적으로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채록/수집상황]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내용]
우암 송시열 선생이 1671년 거제도로 유배를 당하여 가던 중 울진군 북면 부구리 ‘잿골’ 역소에서 관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그 때 북면 신화리 화동(花洞)마을에 살던 선비 만은공(晩隱公) 전선(田銑)이 우암 송선생을 찾아와 융숭히 접대하였다. 이에 선생은 갖고 있던 부채에 손수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시는 “푸른 바다의 깊이가 깊어도 만은공 전선의 정에 비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티프 분석]
「잿골과 우암 송선생 이야기」의 기본 모티프는 ‘융숭한 대접’과 ‘시를 쓴 부채로 보답’이다. 거제도로 귀양을 가는 죄인에게 지방 선비인 전선이 대접을 잘 하자, 송시열은 감격하여 부채에 시 한 편을 지어 주었다고 하는 유명 선비와 관련된 민담이다. 우암 송시열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최고의 성현으로 추앙받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