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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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吐逸里-鄭夢周- |
영어의미역 | Folk Tale of Toli-ri and Jeong Mongju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1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남경 |
성격 | 지명유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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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정보|임긍 |
관련지명 |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1리 |
모티프유형 | 퇴직하여 편한 여생|해를 토하는 지세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1리에서 토일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토일리와 정몽주 이야기」는 울진읍 읍남1리의 토일리와 정몽주의 후손이 얽힌 지명유래담이다. 정도(鄭渡)는 증조할아버지 정보(鄭保)가 단종사화(端宗士禍)에 몰려 영일로 유배되자, 자기 자신도 “나아가면 위태하니 물러나서 편안히 지냄과 같지 못하다”고 하여 울진에 와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지명이 퇴일리(退逸里)가 되었고, 이것이 와전되어 토일리(吐逸里)로, 나중에는 토일리(吐日里)라 하였다. 읍남1리의 자연 부락 중에서 하토일(下吐日)은 계곡의 하구(下口)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채록/수집상황]
1998년에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렸으며, 2001년에 울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울진군지』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내용]
울진읍 토일리에는 연일정씨(延日鄭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은 본래 정몽주의 후손으로서, 조선조 단종 때 경기도 용인에서 울진으로 와 입향조가 된 정도(鄭渡)의 후손이다. 정도는 단종 때 승의랑부위(承議郞副蔚)의 벼슬을 지내다가 단종사화 때 증조부 정보(鄭保)가 사화에 몰려 경북 영일로 유배됨을 보고 화가 자기에게도 미칠 것을 우려하여 “나아가면 위태하니 물러나서 편안히 지냄과 같지 못하다” 하여 울진에 와서 살게 되었다.
본래 이곳 지명은 퇴일(退逸)이라 불렀으나 그 후 와전되어 토일(吐逸)이라 부르게 되었다. 정도 이후에 예천인(醴泉人) 임긍(林兢)이 입향하여 마을 형성에 가세(加勢)하였으며, 일출(日出) 시의 서광(瑞光)이 해를 토하는 듯한 지세라 하여 마을 이름을 토일(吐日)이라 개칭하였다.
[모티프 분석]
「토일리와 정몽주 이야기」의 기본 모티프는 ‘퇴직하여 편한 여생’과 ‘해를 토하는 지세’이다. 은일(隱逸)은 세상을 피하여 숨는 것이고, 퇴일(退逸)은 ‘퇴직하여 여생을 편안하게 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각종 사화가 발생했는데 그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유배를 가거나 아니면 이를 피하여 숨어 살기도 했다. 「토일리와 정몽주 이야기」는 명철보신(明哲保身)하고자 하는 당시 양반들의 은일이나 퇴일이란 처세술이 담긴 지명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