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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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玄圃里祭儀遺蹟 |
영어의미역 | Hyeonpo-ri Ceremonial Remain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희돈 |
[정의]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있는 삼국시대 제의 유적.
[개설]
울릉 현포동 고분군이 있는 이 일대는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며, 울릉 남서동 고분군과 비슷한 형태를 보여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의 울릉도 부분에는 이 지역에 석장 20여 기와 탑이 있는 사찰 터가 있다고 적혀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이곳에 촌락 기지 7개소와 석물, 석탑 등이 있었다고 한다. 울릉 현포동 고분군 일대에는 사찰 터가 전해져 오는데, 과거 국립박물관에서 이 지역을 조사했을 때 초석(礎石)과 기와 등의 뚜렷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단지 입석 모양의 자연 석주 네 개만 서 있을 뿐이었다.
[위치]
현포동 10-1호 고분에서 서쪽으로 약 50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석주 네 개가 불규칙적으로 박혀 있고, 이중 두 개는 부러져 있으며, 나머지 두 개도 넘어져 있거나 약간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다. 피트 내부의 바닥 앞면에는 다량의 천석과 할석들이 노출되어 있으며, 이 사이에서 토기편들도 출토되었다.
피트의 북쪽에서는 세 개의 기둥 구멍[柱穴]이 조사되었는데, 동서를 축으로 열을 이루며 등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쪽의 기둥 구멍부터 주혈 1, 2, 3이라 이름 붙였는데, 각각의 크기는 주혈1이 폭 25㎝, 깊이 38.5㎝이고, 주혈2는 폭 42㎝, 깊이 21.5㎝이며, 주혈3은 폭 35㎝, 깊이 56㎝ 정도이다.
기둥 구멍 내부에는 점성이 약한 황갈색 사질토가 채워져 있었다. 피트 남쪽에는 석확형 구조물이 조사되었으며, 크기는 폭이 57㎝ 정도이다. 전체적으로 둥글며 가운데 부분이 반원 모양으로 깊게 패여 있고 바닥은 투공(透孔)되어 있다.
이 석확형 구조물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기둥 구멍 한 개가, 동쪽에는 상부가 파손된 석주 한 개가 노출되었는데, 그 하부는 석주를 세우고 천석으로 보강한 흔적이 확인된다. 또 피트 중앙에서는 부러진 석주 한 개가 더 확인되었다. 이 남쪽의 기둥 구멍을 주혈4로, 석주를 석주5로 이름 붙였다. 주혈4의 크기는 폭 43㎝, 깊이 30㎝ 정도이다.
피트 내부에서 조사된 주혈들은 형태로 보아 석주를 박기 위한 석주혈로 추정된다. 조사 당시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많은 수의 석주가 이곳에서 뽑혀져 나갔다고 한다. 또 석주5의 하부 구조는 석주를 박고 천석으로 보강한 것이다. 따라서 주혈 1, 2, 3, 4는 석주를 박았던 석주혈인 것으로 보인다.
[현황]
현재 많은 석주들이 뽑혀 나갔고, 부러졌기 때문에 원상을 확인할 수 없으나,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 조사한 결과 현재 드러나 있는 석주 외에도 석주를 박았던 기둥 구멍과 부러진 석주들이 노출되었다. 따라서 이 일대에는 현재 드러나 있는 석주보다 더 많은 수의 석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시굴 조사를 한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따르면 석주들은 현포리 일대에서 탁월한 입지를 가지며, 조사된 유구의 구조로 보아 일반적인 주거, 또는 분묘 유적이기보다는 특수한 용도의 유구로서, 제의 유적과 같은 특수한 기능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을 과거 분묘로 보거나 사지로 보았던 입장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은 시굴 조사라는 제한된 성격과 함께 조사 면적이 좁아 전체적인 유적 성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추후 구체적인 시굴 조사나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한반도 주변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석주열 제의유적에 대한 정확한 범위와 성격을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