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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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泳穆 |
영어음역 | Min Yeongmok |
이칭/별칭 | 원경(遠卿),천식(泉食),문충(文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상규 |
[정의]
조선 후기 천수환 사건 시 독판교섭통상공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원경(遠卿), 호는 천식(泉食). 민달용(閔達鏞)의 아들로 민태용(閔泰鏞)에게 입양되었다.
[활동사항]
1871년(고종 8)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81년(고종 18) 이조판서로 승진하였으며 곧이어 군무변정기연사당상(軍務邊情譏沿司堂上)과 한성부판윤에 올랐으며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나서 개화주의자인 박규수(朴珪壽) 등과 같이 서양의 기술 도입과 개국통상의 유용성을 강조하였다.
1883년(고종 20)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가 되어 전권대사로서 조영(朝英) 및 조독수호조약(朝獨修好條約)을 조인하였다. 또한, 동년 1월 일본과 부산구설해저전선조관(釜山口設海底電線條款)을 체결하였으며, 6월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과 해관세칙(海關細則)·일본인어채범죄조규(日本人漁採犯罪條規)·조선국간행리정약조(朝鮮國間行里程約條) 등을 조인하였다. 그리고 8월 인천일본조계조약(仁川日本租界條約)을 체결하였다. 1884년(고종 21)에는 일본 서리공사 시부리다나[島村久]에게 공함(公函)을 보내어 일본 선박 천수환(天壽丸)의 선장이 울릉도장과 결탁하여 울릉도에서 목재를 밀반출한 사건에 대해서 항의하였다.
민태호(閔台鎬)·민영익(閔泳翊)·민응식(閔應植)과 함께 민영목은 이른바 사민체제(四閔體制)를 구축, 권력의 핵심인물로 부각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1884년(고종 21) 12월 갑신정변 때 김옥균 등 개화당 인사들에 의해 조영하(趙寧夏)·민태호 등 수구당 요인과 같이 경우궁(景祐宮)으로 입궐하다가 참살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