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000347
한자 華星農場
영어공식명칭 Hwaseong Far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화성농장 개장
이전 시기/일시 1914년 - 화성농장 전주에서 익산으로 이전
준공 시기/일시 1914년 - 화성농장 화성농장 지부 설립
최초 설립지 화성농장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지도보기
성격 농장

[정의]

대한제국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백남신·백인기 부자가 설립한 농장.

[개설]

백남신이 관청에 물자를 조달하고 내장원의 외획을 담당하면서 부를 축적하고, 그 자본으로 토지를 매입해서 설치한 농장이다.

[건립 경위]

백남신은 1897년 전주진위대의 향관(餉官)[한말 육군 각 부대의 급여출납·예산결산·식량관리 등 경리업무를 전반을 담당한 회계관]으로 임명되어 전주진위대의 군량 및 월료(月料)[월급] 등을 담당했다. 또한 전주진위대는 전라북도 각 군에서 획급[분할해서 나눠줌]받은 공의(公錢)[지세]로 군량미를 구입해 조달했다. 군량이라는 점 때문에 구입우선권의 특혜를 국가로부터 보장받았으며 또한 시가보다 싸게 구입할 수도 있었다. 백남신은 관부 물자 조달과 외획[조세를 국고에 납부하기 전 탁지부대신이 군수로 하여금 조세를 제3자에게 인도하라는 명령] 과정에서 획득한 막대한 부를 주로 고리대와 토지에 투자했다.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백남신은 소유한 토지를 바탕으로 화성농장을 설립하고 농업경영에 주력했다.

[변천]

백남신이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하던 초기에 소유한 토지는 전라남도·전라북도의 경계를 넘어 경상북도·충청남도·강원도·황해도에 걸쳐 있었다. 무차별적 매수로 인해 소유 토지가 전국에 흩어져 있어 관리에 어려움이 많아지자, 1908년 무렵부터 농장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화성농장과 소작료수납소(小作料收納所)를 설립하고, 분산된 토지를 정리해서 그 주변으로 집중시켰다. 이러한 토지 정리와 농장형태로 전환을 위해 전담 관리인으로 일본인들을 영입했다. 화성농장 본부는 처음에 전주 팔달정에 두었는데, 1910년대 후반에 이리[현 전라북도 익산시]로 옮겼다. 그 이유는 1914년 호남선과 지선 군산선이 완공되어, 호남선과 군산선의 분기점에 위치한 이리가 미곡의 집하와 수송에 편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농장 명칭을 ‘화성(華星)’이라고 정한 시기도 본부를 이전하는 1914년경으로 보인다. 화성농장 지부는 1911년 전주 창덕면 수계리[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수계리]와 이리[현 전라북도 익산시]에, 1914년 부안[현 전라북도 부안군]에 신설했다. 화성농장의 소유지는 완주군을 비롯한 전라북도 각 군에 분포되어 있었다.

[현황]

1936년 당시 화성농장은 답[논] 1,483정보[14,707㎡], 전[밭] 2,203정보[21,848㎡], 합계 3,686정보[36,555㎡]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직원 17명, 사음[마름] 55명, 소작인수 4,700여 명에 이르는 대농장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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