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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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潘南郡 |
이칭/별칭 | 반나부리현,반남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변남주 |
[정의]
통일 신라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을 비롯하여 나주시 반남면에 있었던 행정 구역.
[개설]
반남군은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한 뒤 반나(半那)로 고쳐 대방주(帶方州)의 영현으로 삼았다. 757년(경덕왕 16)에는 반남군으로 승격되어 영암 지역의 야로(野老)[금정면]와 곤미(昆湄)[미암면]의 두 현을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반남군 치소의 주산(主山)은 자미산(紫薇山)이다. 반남은 고려 삼별초(三別抄)의 난 때 여몽 연합군의 김방경 장군 등이 전진 기지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관련 기록]
『대동지지(大東地志)』 나주목 고읍 조를 보면, “반남은 남쪽 40리에 있다. 본래 백제의 반나부리현이었는데 당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반나로 고치고 대방주에 딸린 현으로 하였다. 신라 경덕왕 16년에 반남군으로 고치고 야로와 곤미 두 현을 거느리게 하였다. 고려 초에 반남현으로 강등되었다가 현종 9년에 나주에 병합되었다[潘南南四十里夲百濟半奈夫里唐滅百濟改半那爲帶方州領縣新羅景德王十六年改潘南郡領縣二野老昆湄高麗初降縣顯宗九年來屬].”라고 하였다.
[내용]
2011년 발굴 조사 결과 자미산성 내부에서 다수의 건물 터와 함께 성문 터, 성벽 터와 삼국 시대 백제부터 고려 시대까지 사용되던 토기와 기와, 도자기 등 유물이 출토됐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반남의 서쪽은 지금은 육지화되었으나 당시에는 바다로 배가 정박하던 해상 포구였다. 왕건은 반남현 포구에 이르러 적의 경내에 첩보망을 늘여 놓았다. 1273년(원종 14)에 김방경은 제주도의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하여 군사들을 훈련하여 수군 만여 명을 거느리고 흔도, 홍다구와 더불어 반남현 포구에 주둔하였다. 제주로 떠나려 하였으나 각 도(道)에서 온 전선들은 모두 바람에 까불리므로 전라도에서 온 160척만을 가지고 떠났다. 이와 관련하여 자미산의 서쪽 언덕에는 군대가 주둔하였다는 ‘둔전(屯田)등’이 있다.
[변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