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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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陽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최연식 |
[정의]
고려 전기에 지금의 영암 지역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
[개설]
해양도(海陽道)는 995년(성종 14)에 전국을 10개 도(道)로 편성할 때 현재의 영암을 포함한 전라남도에 해당하는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단위로서 나주(羅州)·광주(光州)·정주(靜州)·승주(昇州)·패주(貝州)·담주(潭州)·낭주(郞州) 등을 포괄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전라북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강남도(江南道)와 통합되어 전라도(全羅道)가 되었다.
[제정 경위와 구성]
고려가 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태조 23)에 지방행정구역이 정비되어 전국의 주·부·군·현의 명칭이 확정되었다. 이후 995년(성종 14)에 다시 주·부·군·현과 관방(關防), 역참(驛站), 강하(江河), 포구(浦口)의 명칭을 고치면서 전국을 관내도(關內道), 중원도(中原道), 하남도(河南道), 강남도(江南道), 영남도(嶺南道), 영동도(嶺東道), 산남도(山南道), 해양도(海陽道), 삭방도(朔方道), 패서도(浿西道)의 10개 도로 편제하였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와 『동사강목(東史綱目)』에 의하면 이때 해양도는 전라남도에 해당하는 14주 62현을 관할하였다고 한다.
995년에는 10도제와 함께 절도사(節度使)와 도호부(都護府) 등도 설치되었다. 983년(성종 2)에 설치했던 12개의 목(牧)을 군(軍)으로 고치고 절도사를 두었다. 이러한 체제는 당나라의 절도사 체제를 모방한 것으로서 지방 행정에 있어서 군사적인 면이 크게 강조된 것으로 평가된다. 해양도의 경우에는 나주와 승주가 각기 진해군(鎭海軍)과 연해군(兗海軍)으로 바뀌었다. 12절도사와 함께 5도호부도 설치되는데, 해양도에는 서남 해안의 낭주(朗州)[영암]에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되었다. 아울러 지역 여건 등을 고려하여 도단련사(都團鍊使), 단련사(團鍊使), 방어사(防禦使), 자사(刺史) 등이 배치되었는데, 해양도의 경우 담주[담양]에 도단련사, 광주와 패주[보성]에는 자사가 설치되었다. 결국 995년의 지방 제도 정비 결과 해양도는 절도사[나주·승주]·도호부사[낭주]-도단련사[담주]-자사[광주·패주]의 구조를 갖는 행정 단위로 편성되었다.
[변천]
군사적 성격이 강했던 995년의 지방 제도는 시행 10년만인 1005년(목종 8)에 도단련사, 단련사, 자사가 폐지되고 1012년(현종 3)에 12절도사마저 폐지되면서 군사적인 성격이 약화되고 민정·행정적인 지방 체제로 변화하게 된다. 10도제 역시 5도제로 바뀌었는데, 해양도는 전주(全州)·영주(瀛州)·순주(淳州)·마주(馬州) 등 전라북도 지역을 관할하던 강남도와 합하여 전라도가 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도호부-목-지주군사(知州郡使)-진장(鎭將)-현령(縣令) 체제로 정리되었는데, 이에 따라 나주는 절도사에서 목으로 바뀌었고, 같은 절도사였던 승주와 도호부였던 영암은 지군사(知郡事)로 위상이 낮아졌다. 이와 아울러 영암에 위치했던 안남 도호부는 고부, 전주를 거쳐 수주(樹州)로 이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