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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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幹會靈巖支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기훈 |
[정의]
1927년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설립된 신간회 소속 지회.
[개설]
신간회는 1927년 2월 공개적 정치 활동과 좌우익 협동 전선의 필요에 공감한 사회주의자들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연계하여 결성하였다. 이후 각 지방마다 신간회 지회가 설립되었다. 신간회 영암 지회는 1927년 8월 결성되어 각 지역마다 분회를 두고 지역 상황에 맞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신간회 영암 지회의 설립 목적은 신간회 전체의 강령에서 드러나듯 민족적 대표 기관을 표방하면서 개량주의를 배척하고 민족의 이익과 해방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변천]
신간회 영암 지회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27년 8월 20일 결성되었으며 김민규(金敏奎)가 회장, 김상학(金相鶴)이 부회장을 맡았으며 한동석(韓銅錫), 하헌훈(河憲勳), 최헌(崔憲), 손길조(孫吉祚), 조치환(曺致煥)이 총간사를, 하헌훈, 신민섭(申敏燮), 이순명(李順明), 최기동(崔基東)이 상무 간사를 맡았다. 신간회는 분회를 설립하는 한편, 조직에 참가한 사람들이 각 분회에서 지역에 적합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총간사 한동석은 영암 분회장을 맡으면서 청소년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1929년 12월 22일 조직을 개편하여 위원제를 채택하고 신학균(申鶴均)이 위원장, 조사원(曺士元), 김준현(金俊鉉), 조만암(曺萬岩), 한동석, 하헌동 등 18명이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한동석은 검사 위원장을 겸하였고 신학균이 전국 대회 대표[조사원이 후보]를 맡았다. 최기동, 한동석, 조사원 등 영암 청년회에서 활동하던 인물들 중 다수가 신간회에 참여하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간회 영암 지회는 분회를 조직하고 영보와 구림 지역에서 청소년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순회 강연에 참여하는 정도 외에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의의와 평가]
1920년대 좌우로 분열된 민족 운동을 통합하여 일제에 대항하는 공동 전선을 수립하였다는 점에서 신간회의 의의는 매우 크다. 신간회 영암 지회도 1930년대 영암 지역의 활발한 민족 해방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