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583 |
---|---|
한자 | 靈巖泰澗里-峰古墳 |
이칭/별칭 | 자라봉,자라뫼,조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747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장대훈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1년 -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행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1년 9월 27일 -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 전라남도 기념물 제190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 전라남도 기념물 재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 대한 문화유산 연구 센터에서 발굴 조사 시행 |
소재지 |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747 |
출토 유물 소장처 | 대한 문화유산 연구 센터 -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 698-2 |
출토 유물 소장처 | 한국학 중앙 연구원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50 |
성격 | 고분 |
크기(높이,지름) | 35.6m[전체 길이]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영암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입석 마을에 있는 고대 고분.
[개설]
영암태간리(靈巖泰澗里)자라봉고분은 호남 지방에 분포하는 전형적인 왜식(倭式) 고분 양식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쪽 반은 거의 사각형을 이루고 뒤쪽 반은 둥근 모양을 이룬 무덤] 중에서도 만든 시기가 가장 빠르다고 보고된 고분이다. 최근의 발굴 조사 결과 6세기 초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발굴 조사 결과 석실(石室) 안에서 나온 개배(蓋杯)[뚜껑]라든가 주구(周溝)[무덤 주위를 빙 두른 배수로]에서 출토된 병과 사발, 개배 등으로 볼 때 무덤을 만든 시기는 6세기 초기나 전반 무렵으로 파악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위치]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입석 마을 747번지에 위치한다. 서쪽에 태산봉과 동쪽에 있는 구릉 사이에 형성된 곡간 평지의 논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자라봉·자라뫼·조산’ 등으로 불린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1년 발굴 조사에서는 전방 후원형 고분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매장 주체부인 돌방무덤만 확인하고 부장 유물들을 수습하는 수준에 그쳤었다.
이후 2011년 재발굴을 통해 자라봉 고분에 대한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전면 발굴이 시행되었는데 조사 결과 분구(墳丘)[봉분]는 광주 명화동, 월계동 1호·2호 전방후원분과 신촌리 9호분, 고흥 안동 고분, 무안 덕암 고분 등지에서 확인되는 이른바 복발형에 가까운 공법으로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자라봉 고분은 시신을 안치하는 봉분은 둥글게 만들고, 전면에는 방형 기단, 혹은 제단을 조성한 전방후원분 양식이라는 점이 확실해졌다. 2011년 조사를 통해 무덤의 축조 시기와 축조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확보되었다. 돌방무덤에서 나온 개배, 병과 사발 등으로 볼 때 무덤을 만든 시기는 6세기 초기나 전반 무렵으로 파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은 1991년 자라봉 고분을 발굴한 한국학 중앙 연구원이 제시한 4세기 무렵이라는 주장보다 200년 정도가 늦은 것이다.
[형태]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은 시신을 안치하는 봉분은 둥글게 만들고, 그 전면에는 방형 기단, 혹은 제단을 조성한 전방후원분 양식이라는 점이 확실해졌다. 이 고분을 현지에서는 공중에서 내려다본 평면 형태가 마치 목을 내민 자라를 닮았다 해서 자라봉 고분이라 일컫는다. 나아가 원형 봉분과 방형 기단 주변으로는 배수로와 무덤 경계를 표시하는 도랑 비슷한 시설인 주구를 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주구는 폭이 넓은 곳은 6m에 달하며 최대 깊이는 1.8m에 이른다.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은 둥근 부분과 네모난 부분을 갖춘 장고분(長鼓墳) 형태를 띠고 있다. 분구의 장축 방향은 남북인데 후원부를 북쪽에, 전방부를 남쪽에 두었다. 후원부의 가운데에서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石室墳]이 확인되었는데, 벽면을 할석과 괴석으로 쌓아 올렸다. 천장은 5매의 납작한 판석으로 덮었고, 바닥은 작은 돌을 깔았다.
분구의 규모는 전체 길이 35.6m, 후원부는 남북 직경 23.3m, 동서 직경 20.2m, 높이 5m이고, 전방부는 남북 길이 12.3m, 너비 7.4m, 높이 2.3m 정도로 후원부에 비해 전방부가 상대적으로 낮고 작게 축조되었다. 석실은 평면 형태가 동서 방향으로 장축을 마련한 장방형으로, 길이 3.26m에 너비 2.36m 안팎이며 높이는 1.85m로 드러났다.
[출토 유물]
1991년 발굴 조사에서는 매장 주체부인 돌방무덤을 확인 조사하는 수준에 그쳤었다. 이때에는 돌방무덤 내부는 이미 도굴되었으나 귀고리, 구슬, 철부, 쇠낫[鐵鎌], 짐승 뼈 등이 출토되었다.
2011년의 발굴 조사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삼국 시대의 제사 목기 100여 점과 원통형 토기가 출토되었다.
[현황]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은 2001년 9월 27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9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2011년 자라봉 고분은 발굴 조사가 완료된 후 정비 복원되어 이후로 행정 당국의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2011년 발굴 조사에 따르면 현존하는 영암태간리자라봉고분의 외형은 후대에 상당한 변형이 이루어진 것이 확인되었으며 실제 고분 규모는 전체 길이가 48m에 이르렀음이 밝혀졌다. 또한 분구 높이가 4.6m에 이르는 거대한 고분을 축조하는 데 사용된 백제인의 토목 기술과 공정 내용에 관한 전모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고분 주위로 둘러진 도랑 조사를 통해 당시의 장례 제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100여 점 이상 출토되고 있다. 특히 제사 토기인 원통형 토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어 백제와 영산강 유역 그리고 일본과의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