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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충사[개신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750
한자 三忠祠-開新里-
이칭/별칭 삼충려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삼충사 삼충려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939년 - 삼충사 삼충려 훼철
개축|증축 시기/일시 1945년연표보기 - 삼충사 건립
현 소재지 삼충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압읍 개신리 107번지
성격 사당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1칸
관리자 영암군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에 있는 현대의 사당.

[개설]

1919년 세 명의 충신을 기리기 위해 삼충려(三忠閭)를 창건하였는데 1939년 훼철(毁撤)되었다. 광복 후에 다시 삼충사(三忠祠)를 세우고 박광춘(朴光春)[1550~1608]을 주벽으로 박광년, 박계원을 배향하였다.

박광춘의 자는 해화(海華), 호는 읍천(挹川), 본관은 밀양이며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이지함(李之涵)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공양 군수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진주에서 이순신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여 공을 세워 선무원종일등훈(宣武原從一等勳)에 책록되었다.

박광년(朴光年)[1552~1621]은 박광춘의 아우로 자는 여중(汝中), 호는 월계(月溪)이다. 임진왜란 때 평양에서 임금의 어가를 호위하였으며, 권율의 휘하에서 군공(軍功)을 많이 세워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등록되고 금곡사에 배향되었다.

박계원(朴繼元)[1567~1615]의 자는 수만(壽萬), 호는 월파(月坡)이며, 박광춘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부장(部將)으로서 권율을 따라 기공(奇功)을 세워 활과 말을 하사받았다. 관직은 군자감 첨정(軍資監僉正)이며 선무원종훈(宣武原從勳)에 등록되었다.

[위치]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107번지에 있다.

[변천]

1919년 삼충려가 창건되고 1939년 훼철되었다가 광복 후에 다시 ‘삼충사’로 명칭을 바꾸어 세웠다.

[형태]

맞배지붕이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현황]

밀성 박씨의 후손들이 해마다 삼충사를 방문해 선조들에게 참배하고 있으며, 2013년 현재 영암군에서 삼충사를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나라를 위해 싸운 충신들을 위해 삼충사를 지어 배향하는 모습을 통해 영암 군민의 충절을 느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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