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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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주요 도로, 철도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고려시대의 역참 제도를 보면 경주를 중심으로 대구와 영천, 동해안의 영덕, 평해 일대를 연결하는 경주도(慶州道)의 23개 역 가운데 영덕에는 주현역(酒垷驛), 남역(南驛), 영해에는 병곡역(柄谷驛), 적용역(赤冗驛) 등의 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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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에 있는 대구지방검찰청 산하 행정기관. 대구지방검찰청 영덕지청은 대구지방검찰청 산하에 있는 행정기관이다. 대구지방검찰청은 법무부에 소속되어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전역의 검사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본청[대구광역시, 영천시, 경산시, 칠곡군, 청도군 관할]과 8개 지청[서부·안동·경주·포항·김천·상주·의성·영덕], 2개 지방경찰청[대구지방경찰청·경북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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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에 있는 대구지방법원 산하 사법 기관.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은 대구지방법원 산하의 사법 기관이다. 대구지방법원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전역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 본원과 본원이 관할하는 4개 시·군 법원[경산·영천·청도·칠곡], 8개 지원[서부·안동·경주·포항·김천·상주·의성·영덕]과 15개 시·군 법원, 1개 등기국과 16개 등기소를 두고 있다. 영덕지원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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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사용되는 사투리적 특징. 경상북도 영덕 지역은 경상북도 하위 방언권 중에서 대구·포항·영천·청도·영천·경산·고령·성주군·칠곡·군위·청송과 같이 동남부 지역 말에 속한다. 또한 동해안 어촌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어민의 생활과 직접 관련을 지을 수 있는 다양한 어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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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전파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이다.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신라는 527년(법흥왕 14) 불교를 공인하였다. 영덕군은 637년(선덕여왕 6)에 유금사(有金寺)가 창건되면서 불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20여 종단에서 73개의 사찰을 운영하고 있고, 전통 사찰 2개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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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태백산맥을 무대로 의병 활동을 펼친 영덕 출신 의병장 신돌석 이야기. 신돌석(申乭石)[1878~1908]은 영덕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6~1908년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이끌었다. '태백산 호랑이'는 신돌석을 풍자화한 이름이다. 신돌석은 태백산맥 여러 곳에 요새를 두고 탁월한 지휘력과 전투력으로 일본군 수비대를 여러 차례 격파했던 민족의 영웅이다. 축지법으로 신출귀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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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인량리에 정착한 영천이씨 하연공파(賀淵公派) 이중량(李仲樑)[1504~1582]의 종택이다. 이중량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공간(公幹), 호는 하연(賀淵)이다. 아버지는 이현보(李賢輔)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권효성(權孝誠)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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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장육사에 있는 조선 전기 불상.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盈德莊陸寺乾漆觀音菩薩坐像)은 고려 조에 판사를 지낸 백진(白瑨)이 영해부사와 부민들의 시주로 태조 이성계와 왕비(王妃) 및 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1395년(태조 4)에 조성하였다. 1989년 4월 10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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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이유와 이사민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영천이씨(永川李氏)는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한다. 영덕군 입향조는 이유(李儒)[?~?]와 이사민(李士敏)[1552~?]이다. 이유의 후손은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대지리 등지에 세거하고, 이사민의 후손은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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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오두환(吳斗煥)[1881~1909]은 순국 당시 29세였기에 1881년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대서면(大西面) 궁기동(宮基洞)[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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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해 지역에 부임한 문신. 윤긍(尹兢)[1432~1493]은 처향인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의 교수(敎授)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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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윤팔룡(尹八龍)[1872~1943]의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북내면 관동(冠洞)[지금의 영덕군 지품면 삼화리]이며, 1908년 체포 당시 3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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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이봉술의 이명은 이학산(李鶴山)이다. 본적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외남면(外南面) 상회동(上晦洞)[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회리]로 체포 당시 2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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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원직(李元直)[1597~1672]은 17세기 무렵 경상도 영해도호부 일대에서 정치·사회 활동을 전개한 재야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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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천이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이종근(李宗謹)[?~?]은 단종(端宗)[재위 1452~1455]이 폐위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영덕으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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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이화춘(李華春)[1572~1655]의 본관은 영천(永川), 초명은 종인(宗仁), 자는 덕부(悳夫)·회원(晦元), 호는 천재(川齋),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증조부는 부사용(副司勇) 이지형(李枝亨), 조부는 생원(生員) 이학(李鶴), 아버지는 공조 정랑(工曹正郎) 이여우(李如瑀), 어머니는 유원지(兪遠之)의 딸 기계유씨(杞溪俞氏)이며,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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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 개창부터 1876년 개항 이전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영덕·영해 지역은 해안에 자리하였으므로 해산물과 제염(製鹽)이 성행하여 영남 북부 내륙지방의 어염물(魚鹽物) 공급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해로(海路)를 통한 함경도, 강원도 지역의 조세 곡물을 운반하는 경유지로 그 경제적인 효과도 컸다. 반면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았기에 동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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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정맥을 계승한 경상북도 영덕군의 학자 이현일의 이야기. 이현일(李玄逸)[1627~1704]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인량리(仁良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나랏골 본가에서 태어났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1590~1674]의 7남 3녀 중 3남이다. 재령이씨 영해파(寧海派)는 이현일의 고조부인 이애(李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