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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367
한자 李亨永
영어음역 Yi Hyeongye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면 서정 681
성별
생년 1896년연표보기
몰년 1923년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이형영(李亨永)은 1919년 3·1운동 이전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항일 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경성공업전문학교(京城工業專門學校) 부속 공업전습소 1년생이던 이형영은 경성의학전문학교의 한위건(韓偉鍵)·김형기(金炯璣), 경성공업전문학교의 김대우(金大羽), 경성전수학교의 전성득(全性得)·윤자영(尹滋瑛) 등과 함께 학생 대표로서 만세 운동을 계획·주도하였다.

이형영은 경성공업전문학교 부속 공업전습소 학생 대표로서 동교생들에게 3월 1일 오후 2시 탑골 공원 시위와, 3월 5일 학생 시위에 참가하도록 설득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이형영은 사전 약속대로 탑골 공원으로 나갔다. 그러나 민족 대표들은 갑자기 장소를 바꿔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을 하였다.

이에 탑골 공원에 모인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고, 시위대를 형성하여 시가행진에 나섰다. 이때 이형영은 군중들과 함께 종로(鐘路) 네거리로 진출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5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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