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788
한자 興國寺四天王像
영어의미역 Four Deva Kings Statues of Heungguk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천왕상
제작시기/일시 조선 후기
소장처 흥국사 지도보기
소장처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소유자 흥국사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흥국사 영취교 앞 천왕문 내 사천왕상.

[개설]

사천왕상은 천왕문 안에 있다. 사천왕은 자신의 권능으로 악을 정화하고 선을 유도함으로써 정법의 유통과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제석천 수하의 무장들이다. 동방은 악신(惡神)과 건달파(乾達婆)를 권속으로 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남방은 귀신 구반다(鳩槃茶)를 권속으로 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이다. 서방은 룡족(龍族)의 우두머리인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사천왕의 수장격인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까지 4尊으로 구성되었다.

[변천]

흥국사 천왕문의 초창시기에 관한 기록은 없다. 순조 5년(1805)에 기록된 「흥국사천왕중수개채기」에 벽파와 용운 승려 등이 중수하고 단청을 입혔다는 기록이 있다. 천왕문 건물이 오래되어 낡아 1805년에 중수하고 다시 단청을 입혔던 것이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1805년 이전부터 천왕문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흥국사에서는 1645년에 정문을 신축하고, 1646년에 봉황루를 건립하였다. 이런 불사로 미루어 이 시기에 천왕문이 건립되었으리라 추정된다.

17세기 중기의 특징인 앙서의 끝이 사절되어 있으며 아직 연봉이 장식되지 않은 고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 봉안된 4구의 사천왕상은 매우 거대한 소조상이다. 흥국사 「천왕문사천왕상홍교중창기」에 의하면 1982년에 새롭게 보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천왕상은 1636년에 조성한 화엄사사천왕상과 많이 닮아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1645~1646년에 사천왕문을 건립하면서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형태]

흥국사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건물 너비는 17.8평이며 가구는 무고주5량으로 중앙 어칸은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좌우 협칸에는 금강책을 가설하고 내부에 사천왕상을 좌우 2체씩 봉안하고 있다. 건물의 기단부는 막돌기단으로 중앙 어칸 앞쪽에 3단의 계단을 가설하였다. 초석은 다듬지 않는 덤벙주초를 놓고 그 위에 민흘림의 원주를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창방을 가로 걸치고 벽체는 중방과 하인방을 걸친 토벽이다.

공포는 이익공계이다. 기둥머리를 십자형으로 파내어 창방을 가로로 걸치고 세로로 초익공을 교차시켜 돌출시켰다. 초익공은 앙서형이며 이익공은 수서형이다. 마치 다포계의 공포 같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둥 사이에 길게 가로로 걸친 창방 위에는 화반을 올렸다. 화반은 좌우에 소로를 놓아 장여를 받고 있다.

건물 내부는 미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대들보 아래에는 초익공과 이익공을 합쳐 보아지로 표현하였다. 동자주 상부에도 살미와 첨차를 교차하고 살미와 첨차는 초각하였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되는 연등천장으로 용마루와 처마가 수평에 가깝다. 지붕의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너새 밑에는 “ㅅ” 자 모양의 박공널이 있으며 중앙에는 박공널을 연결시키는 꺽쇠가 있다. 공포의 결구수법은 간략하여 주심포계에 가깝고, 제공과 첨자의 결구법은 다포 형식을 따르고 있다. 측면은 창방머리와 외목도리 주심도리 종도리와 장여를 길게 빼내 건물 측면의 공간을 넓게 해 풍판을 달았을 때 공기유통을 원활하게 하였다.

흥국사 천왕문 내부에 봉안된 사천왕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이다. 소조는 내부에 쇠나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새끼를 칭칭 감아 대강의 형태를 만든다. 그 위에 고운 진흙을 덧입혀 세부를 표현하는 것이다. 소조는 목조에 비하여 경비가 적게 들기 때문에 임란 직후에 조성된 거대한 불상이나 사천왕상은 경비 절감 문제로 소조를 선택했다. 화엄사 사천왕상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아 1645~1646년에 천왕문을 건립하면서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흥국사 천왕문 어칸 좌우 금강책 안에는 4체의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무릎을 구부리고 양발을 약간 벌리고 의자에 앉아있는 의상(倚像)니다. 머리에는 보살처럼 각종 화문으로 장식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머리는 상투형으로 틀고 족도리처럼 장식을 조그맣게 하였다. 보발은 귀 중앙을 감싸고돌아 어깨 위에서 좌우로 여러 갈래로 갈라져 바람에 날리고 있는 모습이다. 얼굴은 방형으로 눈썹의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가고, 미간에 힘을 주어 주름살이 표현되었다. 눈은 동방지국천왕(東方地國天王)상만 위로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반개한 눈이다. 나머지 존상들은 눈을 둥글고 크게 부릅뜨고 있어 험상궂은 표정이다. 코는 모두 주먹코이며 콧등에 주름이 잡혔다. 입은 서방광목천왕은 일자로 다물고 동방지국천왕은 윗니 2개만 드러내놓았다. 남방증장천왕은 윗니를 모두 드러내고 북방다문천왕은 윗니와 아랫니를 모두 드러내고 있다. 이의 표현에 따라 입술의 모습도 각각이다. 수염은 동방지국천왕은 가늘고 작게 위쪽과 아래쪽에 조금씩 표현되었다. 이에 비하여 옆에 있는 남방증장천왕은 구레나룻까지 표현된 털보형이다. 북방다문천왕은 입 주위를 돌아가며 삐죽삐죽 몇 개 나있다. 서방광목천왕은 수염 없이 깔끔하며 귀는 크고 목은 매우 짧고 굵게 표현되었다.

동방지국천왕은 오른손으로 비파(琵琶)를 연주하고 비파의 목 뒤로 왼손을 표현하였다. 1628년 조성된 순천 송광사나 1636년에 조성된 구례 화엄사의 지국천왕은 흥국사상과 동일한 모습이다.

남방증장천왕은 보검(寶劍)을 잡고 있다. 오른팔을 어깨 높이로 쳐들고 칼끝이 왼발의 허벅지 아래로 내려진 칼집을 잡고 있다. 왼손은 허벅지 중앙의 좌측면으로 내려가는 칼 끝 부분을 잡고 있다. 서방광목천왕은 오른손으로 작은 용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왼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린 모습이다. 북방다문천왕은 오른손으로 끝이 위로 향한 당(幢)의 중간을 잡고 있다. 왼손은 손바닥 위로 보탑을 받들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 보탑은 없다.

[의의와 평가]

천왕문 안에 사천왕상이 만들어지는 사찰 대부분이 임진왜란 때 의승군의 주둔지였다. 이로 미루어볼 때 사천왕상은 호국의 개념과 연계하여 살펴볼 수 있다. 흥국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의승병의 주둔지로 승병 훈련소였다. 호남 지방 의병·승병 항쟁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사찰이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