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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선창의 비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A0401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호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마을에서 일어났던 학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순사건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8년 4월 제주도에서 단선단정에 반대하는 제주 4·3사태로 무장 봉기가 발생하여 유격전화되자 정부에서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제14연대를 급파하기로 했다.

이에 14연대 소속의 지창수·김지회 등 좌익계 군인들이 중심이 되어 1948년 10월 19일 제주도 출동을 거부하고 친일파 처단, 조국 통일 등을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곧 경찰서와 관공서을 장악하고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여수·순천을 순식간에 휩쓴 뒤 곧바로 광양·곡성·구례·벌교·고흥 등 전라남도 동부 5개 지방을 장악해 나갔다.

그런데 초기 진압 작전에서 반란군에게 밀리자 정부는 여순 지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광주에 설치한 반군토벌전투사령부의 지휘로 제2여단과 제5여단 예하의 5개 연대를 투입하여 소탕 작전을 벌여 나갔다. 정부군은 결국 미국군사고문단의 지휘 아래 동원 가능한 모든 군대와 박격포, 장갑차, 경비정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였고 여순 지역 탈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진압 과정에서 초토화 작전으로 많은 양민 등 2,500여 명이 숨졌다.

잔류 반란군은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본격적인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50년 2월 그 추종자들이 대부분 소탕되어 호남 지구에 내려졌던 계엄령이 해제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숙군이 단행되어 좌익계와 광복군계를 포함한 모든 반(反) 이승만 성향의 군인들이 제거되었다. 이러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여수 도서 지역에서도 사건이 벌어졌다.

안도의 가장 아픈 역사 가운데 하나가 진압군인 5연대 김종원에게 주민들의 학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학리 명 아무개의 무고로 인한 것이었다. 명 아무개는 당시 일본인에게 물려받은 정치망(오시끼)을 하고 있었는데 1948년 법이 제정되어 어장을 어협조합으로 이양하라는 정부의 명에도 불구하고 어장을 계속하자 주민들이 어장을 강제로 철거하게 되었다.

명 아무개의 고발로 주민들이 군부대에서 영창을 살게 되는 갈등 속에서 진압군이 여수에 진주하게 되자 명 아무개는 여수로 가서 안도에 좌익이 많다고 무고하였다. 김종원을 비롯한 5연대가 당시 여수에서 부산을 오가던 여객선 동일호를 타고 와서 해군의 함포 사격 엄호하에 안도에 상륙하여 주민들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집결시켰다.

김종원은 노인, 어린이, 여자, 청년 등으로 분류한 다음 인민군을 찾아내라며 두들겨 패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한종일[당시 24세]을 사살하였다. 한종일은 ‘아무 죄도 없고 일본 군대까지 끌려갔다 온 내가 왜 죽냐’며 안심하고 끌려 나갔다. 그러나 김종원 대위는 사형 집행을 명했으나 명을 받은 병사는 차마 조준 사격을 못하고 허공에다 공포를 쏘았다.

김종원은 일본도를 빼서 칼등으로 병사의 목을 치자 그 병사는 놀라서 도망가고 다른 병사가 사살하였다. 한종일을 사살한 후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이종섭과 김기정을 우체국 옆에서 사살하였는데 이 중 이종섭은 좌익 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들은 40여 명을 결박한 다음 안도 선창으로 끌고 갔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병사들이 김종원 대위 몰래 결박을 풀어 도망가게 하여 희생자를 크게 줄이기도 했다. 김종원은 선창에 집결한 청년들을 다시 분류하여 11명을 처형하는데, 제일 먼저 김부영[당시 23세]을 처형하려고 하자 김부영은 한참 동안 억울함과 처형의 부당성을 주장하다가 총에 맞아 죽으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크게 외쳤다고 한다.

안도의 경우 좌익이 많지 않았다는 증거는 안도인민위원회 위원장(백○○-심장리)과 부위원장(오○○-유송리)이 모두 외지 사람들이었고 간부들 역시 사상과는 거리가 먼 나이 많은 노인들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김부영은 군산해양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으로 젊은이들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고 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한편 초등학교에 집결해 있던 주민들 가운데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인 김영심은 구령대에 올라가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하여 주민들이 따라서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는 것은 안도 젊은이들의 사상적 경향의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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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선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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