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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골의 모래밭 이곡명사(梨谷明沙)는 비행장이었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B010103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서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병호

뱃골은 골짜기에 돌배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또는 배가 계곡 사이로 다니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함)이며, 뱃골 아래 바닷가는 삼호팔경(三湖八景) 중의 하나인 이곡명사(梨谷明沙)인 모래밭이다. 뱃골은 현재 서도리의 중심지인 돌팽이에 마을이 형성되기 전부터 있었던 마을이다. 이곳을 일제는 비행장으로 사용하여 침략 전쟁의 전초기지로 활용했음을 서도 주민 이대춘[73세]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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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골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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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의 밝은 모래

이대춘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42년에 진해 항공대에서 항공대 1개 소대가 파견되었는데 이때 배치되었던 비행기의 종류는 수상기, 전투기, 수송기, 정찰기 등이었으며 현재 녹산 민박집 앞의 바닷가에는 항상 2~3대의비행기가 포탄을 장착한 채로 정박하고 있었다고 한다. 항공대의 숙소는 서도초등학교의 교실 한 칸을 빌려 썼으며 가끔 학생들에게 훈련 장면을 시범해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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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춘 씨

이 항공대는 1944년에 철수를 하고 대신 육군 1개 중대가 들어왔는데 이들은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맺자 같은 추축국(樞軸國)인 일본의 전선도 소련과의 전선에서 이탈하여 관동군을 태평양 쪽으로 이동을 하여 이곳 거문도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부대는 막사를 초등학교에서 변촌으로 이동하였는데 초등학생들은 도로공사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이 부대의 지휘자는 미나미(南) 소위였다고 한다.

거문도는 이에 앞서 곳곳에 방공호를 만들었는데 1935~36년경이었으며 주민들이 동원되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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