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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재판관 군내리 대동회의 권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C010303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길

군내리 대동회 는 한 때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대소사에 대한 최고 의결 기구로서 그 권위와 위엄을 누구도 거부하지 못했었는데, 지금도 군내리에서는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매년 음력설을 지내고 나면 대보름이 지나기 전에 마을 회의를 소집한다. 한 가구에 한 명씩 마을 주민을 참석케 하여 지난 한 해의 결산을 보고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대동회를 이끌어 갈 임원을 선출한다. 임기 2년의 회장, 부회장, 총무와 감사를 선출하고 마을마다 간사를 둔다.

군내리는 마을이 커지면서 5개의 행정리로 나뉘었는데, 이장과 어촌계, 부녀회 등이 행정리별로 나뉘어서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에 대동회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대로 행정리를 통합한 군내리 대동회 단일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을 공동체 단위로 생활해야 했던 과거에는 대동회에서 일단 일을 결정하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었다. 일제시대까지도 부모에게 불효한 자식은 대동회의 결의를 거쳐 등에 북을 지워 치며 마을을 돌게 하였다. 결혼한 사람은 남편이 북을 지고 아내가 북을 치며 돌게 하였다. 파락호라 할지라도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거부하면 마을 공동체에서 추방되거나 더 엄한 벌인 덕석몰이를 당하기 때문이다.

현 군내리 대동회장 전기남도 어린 시절에 불효자가 벌로 북을 치며 마을을 돌던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또 일제 초기에 마을에 나병 환자가 발생하여 성안에 살던 사람을 성 밖의 인적이 없는 지역으로 쫓아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대동회의 중요 행사로 성인식인 관례를 집행하는 일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또 보리타작이나 모내기, 김매기 등의 품삯을 정하던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돌산도에서 가장 큰 마을인 군내리의 품삯이 정해져야만 다른 마을의 품삯도 결정되었는데, 둔전과 죽포의 너른 땅도 방답진 시절부터 군내리 양반과 관리들의 소유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사라졌는데도 군내리 대동회가 전통을 이어 오고 있는 원인을 대동회장 전기남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전통에다 대동회 소유의 건물과 6필지 정도의 임야가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군내리 중심부에 자리 잡은 대동회관은 한옥의 너른 대청마루에 대동회를 기리는 선조들의 글이 담긴 현판들이 전해오고 있어 오랜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전기남은 남외마을 노인회장을 겸하고 있다. 노인회의 연중 가장 큰 행사는 노인잔치이다. 봄과 가을에 열리며, 읍에서 1회에 18만 원이 지원되고 독지가의 기부와 어촌계와 부녀회 등의 도움으로 행사를 치른다. 행사 경비는 60~70만 원이면 족하다. 점심 대접에 이어 좌담회가 열리고 유흥 시간을 갖는다. 마을 청년들과 어촌계, 독지가가 낸 성금으로 치루며, 젊은이들의 마음들이 좋아서 궁색하지 않다. 임원으로 노인회장과 총무가 있으며, 회원은 남자 23명, 여자 30명, 도합 5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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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회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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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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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회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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