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역의암과 여기암의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105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소라면사무소에서 덕양시외버스정류장을 조금 지나 도로변 좌측 편에 바위산이 있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역의암을 물으니 들어보기는 했는데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한다. 예로부터 전설이 있는 바위였지만 주변의 지형이 변해서 그런지 전설의 형상을 찾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역의암 밑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정종순 할머니는 역의암을 ‘바구미’라고 했는데 바구미에 대한 전설은 들어보지는 못했고 바구미 밑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정박했었다고 알려주었다.

예전에 배가 정박했다고 하는 지점 가까이의 산자락에 오르니 높이 120㎝ 가량의 ‘행부사이후영세불망비’라 적힌 돌비석이 있고 왼쪽에 높이 100㎝ 가량의 ‘수군절도사신공희택영세불망비’라 적힌 비가 나란히 서 있다. 두 비석은 오랜 세월 동안 풍우에 마모되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는데 지역민들이 세운 부사와 수군절도사의 선정을 기리는 불망비임에는 틀림없다. 이 비석 옆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두 가지 전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역의암(易衣巖) 전설이다. 내용인즉,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퇴각하기 위해서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왜교성에 주둔하고 있던 고니시 유키나가 군에게 이순신 장군이 아군의 병력이 많은 것으로 보이기 위해서 군사들에게 적색·황색·녹색·흑색·청색으로 번갈아가며 군복을 갈아입힌 데서 역의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바위가 기생과 관계있는 바위라는 뜻에서 ‘여기암(女妓巖)’라고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일대는 고뢰농장이 대포간척지를 막기 전까지는 여기암 밑에까지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이 바위까지 쫓겨 온 한 기생이 왜병에게 몸을 더럽히게 되자 이 바다로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 하여 기생의 바위라는 뜻에서 여기암이라는 전설이 생겼다는 것이다. 여기암에 대한 내용은 『강남악부(江南樂府)』와 『중간승평지(重刊昇平誌)』 고적 조에 기록되어 있다.

역의암 또는 여기암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덕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순천 해룡면 신성리에 왜군들이 주둔했던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두 전설이 막연하게 지어진 것 같지는 않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역의암(여기암) 전경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