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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이렇게 살았어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E020101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정현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덕양리 하세동 경로당에 가서 옛날 결혼했던 이야기와 신혼 생활에 대해서 물으니 모두들 서로 눈치만 보면서 다른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연세 많은 분들은 기억이 가물거리고 덜 드신 분은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가마 타고 시집갔지. 무슨 놈의 신혼 생활. 매일 일만 하다가 살았지.’였다.

계속 결혼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라대니 한 할머니가 나섰다. 올해(2008년) 67세인 정종순 할머니였다. 18세가 되던 해에 시집을 갔다고 하니 1959년에 결혼한 것으로 짐작된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친정아버지를 찾아왔고 그 이후에도 자주 집에 들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분이 훗날 남편의 외숙이었다고 한다. 남편의 외숙이 외조카를 결혼시키기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어느 날 아버님 하시는 말씀이 ‘너는 막내라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시집가거라.’였다. 할머니는 ‘나이 차가 많으면 고생 덜 하나보다’라고만 생각했다. 혼담이 오가면서 신랑과 신랑 부모들이 신부 집을 방문하였다. 양가 어르신과 당사자들이 함께 자리를 하여 혼사 이야기를 나눈 후 양가 어르신들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지금의 맞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어머님한테 남자가 물으면 대답만 하라고 교육을 받았다. 묻는 말은 거의 애정에 관한 것은 없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기억으로는 남자의 첫 인상이 너무 좋은 데다 얼굴이 잘 생겼다고 한다.

신랑 집에서 사주단자를 보내오고 친정집에서 결혼 날짜를 잡아 보내는 절차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할머니는 알지 못했다. 어느 날 결혼 날짜가 정해지자 식을 올리기 위해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함을 들고 신부 집에 왔다. 마당에 천막을 치고 혼례식을 올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축하객으로 집 마당에 모여 들었다.

신부 집에서 결혼식이 끝나자 신랑과 첫날밤을 보내고 그 다음날 아침을 먹고 시댁이 있는 여수시 소라면 달천으로 신행길에 올랐다. 신행길에는 신랑과 신부, 친정어머니, 언니 그리고 가마꾼과 혼숫감을 나르는 사람이 따랐는데, 신랑은 걸어가고 신부는 가마를 탔다. 가마를 메는 것은 친정 마을 사람들이 해 주었다. 그때 가지고 간 혼숫감으로는 옷가지, 이불, 요강 그리고 이바지였다고 한다.

오후에 신랑 집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시댁 식구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 다음날부터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신랑이 덕양에서 대장간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분가를 해야 했으나 시부모들은 갓 시집온 며느리를 당분간 데리고 있다가 분가시키려고 했다. 시부모가 사는 달천은 어촌 지역이므로 생계 수단이 조개 채취였다.

나이 어린 신부는 해본 적 없는 조개 채취가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이런 생활이 몇 달 이어지다가 결혼한 해에 남편과 함께 분가하였다. 할머니의 신혼 생활에 대한 대답은 ‘처음에 볼 때 신랑이 참 생겼어.’와 ‘신혼 생활은 조개를 채취하고 사는 것밖에 기억이 없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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