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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363
한자 尹亨淑
영어음역 Yun Hyeongsuk
이칭/별칭 尹血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창무리 4통 5호
성별
생년 1900년연표보기
몰년 1950년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1919년 3월 6일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서정희(徐廷禧) 등은 전라남도 광주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및 수피아여학교(須彼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과 협의하여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 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 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주도자들은 계획에 따라 광주교(光州橋) 밑 천변에서 수백 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천변을 따라 시장으로 진출하여 시위대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이곳을 출발하여 서문통(西門通)을 경유하여 우편국 앞에 이르러 왼편으로 돌아 본정통(本町通)으로 행진하였다.

이 때 누문리(樓門里) 방면으로부터 농업학교 학생 등 수백 명의 시위 군중이 합세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하였다. 당시 전라남도 순천 매산여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 수피아여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중 윤형숙(尹亨淑)도 조옥희, 이봉금, 하영자 등 동료 학생 20여 명과 함께 시위 대열에 참가하여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행진하는 도중 일본 헌병대가 출동하여 해산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자 헌병들은 실탄 사격을 감행하며 무자비한 탄압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일본 헌병 1명이 선두에 있던 윤형숙의 왼팔을 군도로 내리쳤다. 팔이 잘린 윤형숙은 잠시 땅에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 오른팔로 태극기를 집어 들고 크게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 광경을 목격한 군중들은 비분강개하여 더욱 격렬하게 항거하였다. 윤형숙은 중상을 당한 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04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02.04 오류수정 왼팔 → 오른팔 오류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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